- 은강과 희락, 그리고 차희의 이야기 2
아이의 맑고 투명한 눈에서, 차희는 자신의 그 시절을 떠올렸다.
처음 커플 매니저라는 직업을 선택했을 때. 대학 졸업을 코앞에 앞둔 시점이었다. 동기들은 저마다 제 꿈을 좇아, 혹은 취업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어쩐지 차희는 그런 시간과는 무관한 일상을 지내고 있었다. 특별히 무엇을 성취해야겠다는 욕구도, 어떤 일을 해내야겠다는 마음도 들지 않았기에.
그래서였을까. 차희를 설레게 하는 말은 이랬다.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한 나튜뷰 채널. 출연한 걸그룹 아이돌 멤버에게 이런 질문이 던져졌다.
“연습생 시절이 참 혹독했을 텐데,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을 거고요. 어떻게 극복했어요?”
그녀의 대답은,
“이거 아니면 죽는다, 였어요.“
이거 아니면 죽는다라니. 세상에 이렇게 가슴 떨리는 말이 또 있을까. 단 한번의 인생에서 나를 미치게 하는 일을 만난다는 게 가능이나 할까. 그런 일이 나한테도 일어날까. 나는, 만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복잡해진 채 지하철 플랫폼에 들어선 때였다. 플랫폼 안, 광고판에 결혼정보회사의 광고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사랑의 레시피, 온담(ON:DAM)에서 완성해보세요“
콩닥콩닥. 카피 문구를 읽은 차희의 심장이 조금씩 뛰더니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찾았다. 나를 미치게 할, 그것.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 ‘좋은 대학’ 그러니까 인서울 안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토익 토플을 거의 만점 가까이 받았어도. 각종 자격증까지 보유했지만. 차희는 전혀 설레지 않았다. 이것들이 결국 내 인생에 가져다주는 건, 결국 허울 좋은 겉치레뿐이니까. 물론 겉치레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삶을 조금 더 유연하고 편하게 할 수는 있으니까.
아무래도 기준이 안 되는 그 누군가에 비해 취업 문턱을 넘기가 조금은 더 수월하겠고. 연봉이 조금 더 많겠고. 이렇게 직장에 잘 적응 해나간다면 어느 정도 능력도 인정 받을 거고. 그렇게 ‘살아가는’ 부류가 되어 가겠지. 하지만 이런 일상은, 적어도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지 않는 인생기록이다. 그래서 뭐. 그렇게 살고나면. 대체 내 시간에는 뭐가 남는 건데.
차희는 다시 한번 결혼정보회사의 카피 문구를 바라보며 읊조렸다.
"사랑의 레시피, 온담(ON:DAM)에서 완성해보세요"
그리고 석 달이 지났을 무렵. 차희는 온담(ON:DAM)의 신입 커플 매니저가 되어 있었다. 선임을 따라다니며 커플 매칭의 일들을 직접 보고 정리하며. 인연에 대한 막연한 감정이 걷히고 정말 결이 잘 맞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나 짜릿하고 황홀할 수가 없었다.
커플 연결이 되어 결혼에까지 골인하는 인연을 볼 때마다 그녀가 숨 쉬듯 나지막이 곱씹는 문장이 그러했으므로.
'사랑은, 맛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을 때부터는 직접 몇몇 회원들을 관리하며 매칭을 해보기도 했다. 처음이라 실수도 많았지만, 또 자신이 매칭한 커플이 결혼으로 가정까지 꾸리게 되었을 때, 알 수 없는 묘한 설렘과 몽글한 솜사탕 같은 달달함이 못내 속살을 간질이기도 했다.
누구의 명언인지는 몰라도, 이 문장은 차희에게 적중했다.
[즐기는 자는, 천재도 이길 수 없다]
윤차희가 하면 커플 매칭, 95%. 이 일에 대한 성취감은 차희를 웃게 했고, 가슴 먹먹하게도 했고, 조금은 씁쓸하게 했으며. 그리고 '살게'했다.
이렇다보니 업계에서는 이미 명실상부 최고의 커플 매니저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는 각종 매스컴에서도 연달아 섭외 요청이 쇄도했다.
이런 시간이 흘러 어느덧 10년.
차희를 ‘살게 했던’ 뜨거움이, 사그라졌다. 무색해졌으며 덧없어졌다.
그리고 오늘. 이런 윤차희의 덧없는 일상에의 이상한 아이와의 만남.
모든 것이 이상하게만 흘러가는 오후이지만, 어쩐지 싫지만은 않았다. 환경과 배경, 조건에 의해 짜맞춘 만남. 정해진 결혼식, 그러다 오늘 같은 파혼의 상황을 만나는 상황. 자신의 일상은 이런 것의 궤도라고.
하지만 희락을 만난 짧은 이 순간. 그 시절의 속살거리는 살가운 것들이 소록소록 떠오르고 있었다.
“저 이모 TV에서 봤어요! 커플 만들어주는 걸로 되게되게 유명한 이모, 맞죠?”
차희의 얼굴이 웃을 듯 말 듯 애매한 얼굴이 되었다.
“나를, 본 적이 있구나.”
“네! 저 오늘 소원 이루어졌어요!!”
“네 소원이 뭐였는데?”
“이모 만나는 거요! 이제 우리 아빠도 행복해질 수 있잖아요!”
희락의 맑은 눈을 마주하고 있던 차희의 시선이 천천히 이영에게로 옮겨졌다. 차희의 시선 속에서 할 말을 읽은 이영이 입술을 움직였다.
“가끔은 괜찮지 않을까요? 어딜 둘러봐도 틀에 짜맞춘 것 같은 일상에서의 작은 일탈, 같은 거니까."
차희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희락을 보는 이영의 눈매가 곱게 휘어졌다.
아이의 말에, 차희의 얼굴이 복잡하게 물들었다. 하지만 희락의 시선이 어찌나 착 달라붙는지,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기어이 이 질문을 하게 되는구나.
“꼬마야. 그러니까... 음... (잠시 말을 고른다) 그래, 너한테는 지금 아빠만 있고, 엄마가 없다는 거지?”
끄덕. 희락의 고개가 아래위로 천천히 한번 움직였다가 제자리를 찾는다. 동그마니 뜬 아이의 두 눈에 진심의 빛이 어렸다.
“음. 꼬ㅁ...”
“희락이에요! 제 이름. 은. 희. 락.”
아이가 빠르게 제 이름을 또박또박 힘주어 말한다. 씩씩한 희락의 모습 보며 옅은 숨을 내쉰 차희가 다시 입을 뗐다.
“그래 희락아. 혹시, (잠시 또 말을 고른다) 음... 이건 좀 어려울 수도 있는데. 아빠랑 엄마가...”
이혼, 이라는 두 음절이 이렇게나 어려웠던가. 차마 이혼이라는 단어를 뱉을 수 없어 진땀을 빼는 차희였다. 그녀의 이런 마음을 읽은 듯 희락이 똘망하게 대꾸했다.
“이모. 아빠는 이혼 같은 거 해본 적도 없어요. 결혼도 안 해봤는걸요? 그리구 제가 태어난 거는, 아빠가 그랬는데요. 제가 생겼을 때 너무 기뻤대요. 그래서 꼭 만나구 싶었대요. 제 이름을 희락이라고 지은 것도 제가 생기고부터 기쁘고 즐거운 일이 많아서였대요.”
“아. 그렇구나.”
미혼부. 아이의 아빠를 명명할 수 있는 수식이었다. 고작 7살짜리 아이의 입에서 이혼이니 결혼이니 이런 단어들을 듣게 될 줄이야. 그나저나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전혀 모르는 걸까. 어째서 아이가 직접 엄마를 찾는 거지. 설마. 엄마가 세상을 떠난 걸까?
“희락아. 이, 모가.. (어쩐지 이모라는 발음이 영 어색하다) 음.. 하나 더 궁금한 게 있는데.”
“네! 뭐든 물어보세요!!”
기다렸다는 듯 아이가 반가운 음성을 자아냈다. 아이의 잔잔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또다시 ‘그 남자’가 떠올랐다. 꽃들에 둘러싸여 있는 해사한 그 얼굴이.
올곧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차희의 얼굴에서 희락은 한 줄기 희망을 본 것만 같았다. 어쩐지 이번에는 아빠에게 꼭 여자친구가 생길 것만 같은 그런 빛.
“이모. 우리 아빠 돈도 잘 벌어요. 막 엄청엄청 부자는 아닌데요, 가난하지 않아요. 그래서 여자친구 생겨도 고생 안 시켜요.”
푸흡. 차희의 입에서 마침내 웃음이 터졌다.
“희락아. 너 그런 말은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요즘 유치원에서는 스피치 같은 것도 가르쳐주니?”
“아~ 우리 아빠가 그랬어요. 저랑 외식하러 고깃집에 갔을 때, 희락이가 분명 고기가 더 먹고 싶은데, 아빠 눈치 보느라 고기를 못 시켜 먹는 상황은 안 만들고 싶댔어요. 아빠는 돈이 딱 그만큼만 필요하댔어요. 더 많이도 말구, 더 모자라게도 말구요. 그리구 지금 그 정도 돈은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걱정말라고 했는걸요?”
두 눈을 반짝이며 작은 입술을 자분자분 움직이는 아이가 사랑스러워 보였다. 도대체 아이 아빠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때였다. 첫차 안으로 맑은 드림캐처 소리가 훅- 밀고 들어왔다.
“은희락.”
낮은 음성이, 차희의 귓전에 짙게 배어들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옮긴 곳에, 쏟아지는 햇살 사이로 검은 실루엣이 드리워져 있었다. 검은 인영이 발걸음을 떼자 서서히 그 모습이 드러났다. 차희는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금세 알아차렸다. 그 남자다. 해사한 미소가 퍽 잘 어울리는 남자. 이따금씩 제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와 환하게 웃고 있는 그 남자.
차희의 입술이 저도 모르게 천천히 벌어지더니, 미처 손 쓸 새도 없이 툭 튀어 나온 한 마디.
"혹시, 연애 안 하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