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해주 Mar 08. 2019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아

 나는 만나는 남자친구를 집에 소개하는 걸 좋아했다. 상대가 잘났든, 못났든 그것보다 내가 지금 어떤 사람을 만나고 있고 어떤 연애를 하고 있는지 엄마에게 보여주길 곧잘 했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나의 '상대들'을 '아들'이라고 칭하며 잘대해주었다. 이런 그림들이 연출되는 상황에 짜릿한 쾌감이 들어 나는 좋아했던 것이다. 내가 사랑받고 있는 딸이라는 걸, 여느 모녀보다 사이가 좋다는 걸 드러내고 싶은 어떤 인정욕구가 내게는 있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연출해보이고 싶은 나의 욕구일 뿐, 우리 모녀는 그닥 사이가 좋은 관계가 아니다.

 엄마는 종종 내게 '남자에 미친년'이라는 표현을 썼다. 엄마의 욕구에 충실한 딸이 아니었을 때, 엄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딸이었을 때. 정확히는 내가 장녀로서의 집안의 어떤 대소사를 책임져야 하는데 그걸 하지 않아 충돌이 일어 갈등이 클라이맥스에 다달았을 때 그랬다. 벌어지는 문제와 아무런 관련도 상관도 없이 나는 그저 '남자에 미친년'이 돼 버렸다. 내가 남자에 미쳐 있느라 가족이 뒷전이라는 표현이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억울했다. 분했다.  그래서 어떤 날은,


 "그래! 나 남자에 미쳤어. 그래서? 과년한 딸이 연애도 못하는 병신이었으면 좋겠어, 엄마는?"

바락바락 분풀이를 해대기도 했고,


 "엄마 내가 미안해. 진짜 미안해. 화 풀어 엄마. 응?"

어떤 날은 대죄인마냥 고개를 숙이기도 했고,


 "엄마가 그래서 속이 상했구나. 내가 엄마 마음 알아. 엄마 많이 아팠겠다."
상처 받은 엄마의 마음을 읽어주려 부단히도 애를 썼다.

 나는 엄마가 나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다. 엄마도 지금 외할머니한테는 딸이니까. 누구보다 내 마음을 잘 알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착각이란 걸 깨닫는 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사력을 다해 엄마에게 내 감정을 드러내며 나는 남자에 미치지 않았다, 고 외쳐댔지만 나의 이런 가상한 노력에도 엄마는 변함이 없었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했다. 엄마의 기억장치가 고장이 난 게 아닐까. 분명 그럴 것이라고. 엄마는 내가 잘했던 건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딸과 트러블이 생길 때마다 엄마의 기억 장치는 딸이 못했던 것만, 엄마에게 상처가 되었던 것만 끄집어내는 식이었으니까.



 6월, 여름으로 들어가는 초입의 어느 날. 장장 5년여의 연애를 끝낸 나는 상하고 지친 마음을 위로 받고자 시골 집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이꼴, 저꼴 다 보기도 싫고 서울에 우두커니 혼자 남겨져 있는 상황도 싫고. 이래저래 마음 달랠 길이 없어 그냥 무작정 상주로 가는 기차를 타버렸다. 집으로 가는 길은 평온하기도 하고, 어쩐지 마주하기 싫은 상황을 대해야 할 것도 같은 불안함도 함께 실려 갔다.

 기차에서 내려 역 밖으로 나오니 엄마가 차를 대기하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30분 내내 우리 모녀는 특별한 말이 없었다. 엄마는 그저 담배를 두어 대 빼어 물고는 피웠을 뿐이다. 그 담배가 그날 따라 왜 그리도 싫은지, 신경질 섞인 말을 뱉었다.


"엄마, 담배 좀 그만 피우면 안 돼? 토할 거 같아 진짜."

운전하던 엄마가 슬쩍 내 쪽을 흘겨보더니,


 "너는 어째 그렇게 남자 보는 눈이 그렇게도 없냐. 어휴, 멀쩡하게 낳아놓으면 뭘 해. 헛똑똑이 짓은 다 하고 다니..."

 "아, 지긋지긋해!! 진짜. 그만 좀 해. 그만 쫌! 엄마는 지금 이 꼴로 온 딸을 보면서도 그런 말을 하고 싶어?!"

"야, 너 왜 자꾸 나한테 담배 끊으라고 그러는데? 내가 니 엄마라서? 엄마면 그래야 하냐? 너, 나 부려먹지마. 너만 귀한 딸인 줄 아는가 본데, 나도 딸이거덩?"

두서없는 엄마와의 대화 속에서 나는 세게 뒤통수를 한 대 갈겨 맞은 것 같은 당황스러움과 가슴을 훅 후벼파는 것 같은 먹먹함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엄마가 딸인 내 마음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 절대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앞서 생각했던 나의 '이런 생각'이 문제였고, 착각이었다.

 내가 사력을 다해 엄마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자 한 것처럼, 엄마도 온 힘을 다해 내게 마음을 전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문제가 엄마에게 있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문제는 나였다.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내 마음.

 엄마와 난 그저 다른 인격체일 뿐이었다. 그 다른 인격체를 존중하고 인정해야하는 걸 몰랐던 거다. 그저 엄마와 딸, 이 관계의 틀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 엄마를 내 식대로 우겨넣으려고만 했다. 나는 엄마를 하나의 사람, 여자, 그리고 나와는 다른 어떤 인격체로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엄마에게 나는 그렇게 존중받고 대우받길 바랐으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다른 엄마들과 나의 엄마를 비교했다. 사실 엄마가 담배를 끊길 바라는 마음도 엄마의 어떤 건강의 문제라기 보다 그저 담배 피는 엄마가 창피했을 뿐이었고, 엄마의 솔직하고 직설적인 성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기 보다 누군가에게는 혹시 모를 막말로 비춰질까봐 숨기기 바빴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것도 온 힘을 다해, 진심으로. 문득 엄마의 짙은 외로움이 배꼽 밑 단전까지 전해져왔다. 나는 그 짧은 대화에서 비로소 내 마음이 제대로 보였다.

 엄마가 내게 했던 '남자에 미친년'은 어쩌면 엄마가 내게 전하는 속상함과 딸에 대한 사랑은 아니었을까. 어디다 내놓아도, 멀쩡하게 낳아놓은 내 딸이 뭔가 밑져보이게 행동하는 것만 같고, 만나는 상대에게 더 사랑받았으면 좋겠는데. 그 상대가 내 딸을 더 사랑했으면 좋겠는데. 어쩌면 저 딸년이란 건 엄마 마음 따위는 알아주지도 않고 그걸 상처라고 바락바락 온 힘을 다해 거부했으니 말이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서 노력 중이다. 나의 엄마를 온 마음으로, 내 인생 가운데로 받아들이는 노력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엄마는 담배 피우는 여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