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코딱지 꼬꼬마 둘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중 나온 엄마가 보이자 투우장의 소가 돌진하듯 엄마를 향해 열심히 달려왔다. 귀여운 녀석~ 나도 두 팔을 벌려 힘차게 달린다. 마주한 우리는 가슴을 맞대고 서로를 꼭 끌어 안았다. 품에 쏙 들어온 작은 녀석, 요작은 녀석이 여러모로 나를 움직이게 한다.
엄마를 만난 기쁨도 잠시, 학교에서 속상했던 일을 토로하기 시작한다.
"엄마 체육시간에 4반이랑 줄다리기를 했는데요, 4반 애들이 우리반 애들보다 한명 적다고 맨 뒤에 선생님이 같이 줄다리기를 해서 우리반이 졌어요. 이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아요?"
체육시간 반 대항으로 줄다리기 시합을 했던 모양이다. 아이의 학급의 학생 수가 한 명 더 많아서 다른반 선생님이 투입이 되서 시합이 이루어진 것 같았는데 내가봐도 이건 아이가 너무 속상한 일이다.
"그래? 정말 속상했겠다.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던 줄다리기네." 아이의 생각에 공감하며 답했다.
"엄마 공정과 공평이 달라요?" 무심코 답한 나의 대답에 아이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공정과 공평에 대해 이런저런 정황한 설명과 예시를 들어 설명해주었고 아이는 공정과 공평의 차이를 이해했다. 그날 저녁 아이는 자신의 일기장에 '공정도 공평도 사라진 줄다리기'라는 제목으로 일기를 썼다. (일기장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검사하고 답변을 달아주신다)
다음 날 아이는 선생님이 자신의 일기장에 달아주신 답변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또 다시 속상한 마음을 토로했다. 아이는 불공정하고 불공평했던 줄다리기 시합을 치르고 속상한 마음을 적은 일기였는데 선생님의 답변은 즉슨, '공정하고 공평하게 시합을 진행하려면 남녀의 비율, 몸무게 차이 등등을 고려해서 시합을 해야하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체크해서 진행할 수 없으니 그냥 재미있는 줄다리기 경험을 했다는 생각하고 만족하자'는 답이었다.
'잉? 이게 무슨 말이지?' 선생님에 답변에 내가 든 생각이었다. 아이는 선생님의 생각을 수용할 수 없다며 아무리 그래도 선생님은 어른인데 선생님이 함께 시합하는것은 당연히 안되는거 아니냐고 말했다.
아이에게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할까. 한참을 망설였다. 이번에도 역시 이런저런 장황한 설명들로 선생님을 오해하지 않도록 달래주었다.
과연 선생님의 답변처럼 모든 상황을 하나하나 고려할 수는 없으니 즐거운 경험이었다 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아이가 불만을 가졌던 것처럼 나 역시도 이건 납득되지 않는 일이었다.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다른 반의 아이를 한명 더 투입을 하던가 아니면 아이들의 의견을 묻고 힘든 친구를 쉬게하고 진행할 수 도있지 않았을까? 선생님이 투입이 된 일은 아이들에게 매우 불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일어난 오늘의 한 사건으로 아이들은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생각하게 되었을까? 아이들의 사고에는 어떤 생각들이 내재되었을까? 덜컥 겁이 났다. 학교뿐만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하는 모든 순간 무심코 내뱉는 어른들의 말이나 행동에 아이들은 세상을 배우고 나름의 세계를 형성한다.
선생님의 말대로 이이가 불편했던 상황에서 선생님을 답변을 읽고 그대로 수용하게 되었다고 한다면...이러한 일들이 일상에서 반복된다면... 아이는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게 될까?
어른이 되고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생각을 나눈다. 그 안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나아가 사회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보다는 자신은 힘이 없다며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우리가 몸담은 사회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공평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구나가 평등하고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도록 고민하고 노력해야한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부당한 것에 대해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정과 학교의 문화도 고민해봐야 한다.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나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문화, 모든 이들의 의견이 차별없이 수용되는 문화, 잘못된 생각이나 의견도 수렴하고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보듬어주는 문화. 가정과 학교에서 그리고 사회에서의 이러한 경험들은 당당하고 소신있는 아이로 자라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불편했던 아이의 작은 사건으로 인해 우리의 문화를 돌아보고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나는 어떤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어쩔 수 없다는 일을 나는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나의 작은 한걸음이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고 성장이 되는 걸음이길 기대해본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피너츠 머그 세트 저 < 수탉과 독재자 >
진정한 자유와 용기는 무엇일까? 그림책 속의 또 다른 세상을 통해 우리의 사회를 빗대어 보고
그 안에서 진정한 자유는 무엇이고 용기는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마련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