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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해 Jan 11. 2023

이렇게 말하면 돼요?

그래 그렇게 말하면 되는거야

 독서 강사 3년 차. 다행히 운이 좋아서 아직까지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독서 논술 강사로 아이들을 만나다가 우연한 기회에 삼성에서 후원하는 꿈 장학재단 프로젝트에 합류하면서 한글 수업도 진행하게 되었다. 프로젝트 당시 서울시에 소재한 지역아동센터에서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만나서 한글 수업을 1년 동안 진행했다. 한글 지도는 처음이라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4~5개월 전부터 교수님이 보내주신 논문을 읽고 일주일에 한 번씩 회의도 하며 공부했다. 읽고 쓸 줄 안다고 누구나 한글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공부하면서 새삼 깨닫게 되었다.    

  

 1년 동안의 프로젝트가 끝난 후 함께했던 지역아동센터와의 인연이 이어져 센터장님의 제안으로 초등 2학년 아이의 한글 지도를 하게 되었다. 사전 검사 결과 아이는 유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상황으로 발음도 매우 부정확했다. 받침이 없는 단어들은 그나마 읽지만, 단순 모음 이외에는 자음의 이름값도 혼동하며 어려워했다. 아이의 현재 수준과 상황도 걱정스러웠지만, 무엇보다 아이의 부모님이 더욱 걱정이었다. 아이가 한글을 모르는 것에 대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오히려 한글 수업을 해야 한다는 센터장님의 제안에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곤 하셨다. 그러나 다행히 대면 상담을 하면서 검사 결과를 말씀드리고 아이의 상황과 지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하니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이셨다.      


 아이와 수업을 시작하면서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나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동문서답을 했고 생각을 묻는 질문에는 전혀 답하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자신의 생각은 한 문장도 써 내려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긴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운데 쓰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아이의 거부에도 물러서지 않고 꾸준하게 생각을 물을 결과 현재는 단어로 생각을 표현하는 정도까지 왔다. 장하다.      


 눈이 많이 내린 다음 날 수업이었다.      


“민호(가명)야 어제 눈이 많이 왔는데 우리 민호는 뭐했을까?”

“선생님 저는 눈사람을 만들었어요, 근데 눈사람을 아빠가 발로 찼어요!”     


아이가 애써 공들여 만든 눈사람을 차버린 아빠.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저런 민호가 많이 속상했겠다. 민호 마음이 어땠어?”

“어땠어요.”

“응? 아빠가 눈사람을 발로 차서 민호 마음이 어땠어?”

“네..어땠어요”     


아이는 마음이 어땠냐는 나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말한 끝에 말만 반복해서 답을 했다.      


 “민호가 그럴 때는 어땠어요. 라고 하기보다는 속상했어요, 슬펐어요, 화가 났어요. 같이 민호의 마음을 이야기 해주는 거야.”

 “아... 속상했어요.”

 “그래 그렇게 말하는 거야. 그리고 민호는 아빠가 눈사람을 발로 차서 속상했잖아. 그러면 아빠한테 열심히 만든 눈사람을 발로 차면 속상해요. 하지 마세요! 라고 말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그렇게 민호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게 정말 중요한 거야.”     


 아이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아빠 하지 마세요! 싫어요! 이렇게 말해요?”하면서 나에게 질문을 했다.


“그래 민호가 바로 그렇게! 아주 멋지다. 그렇게 앞으로 네가 속상하거나 싫을 때는 그렇게 내 마음을 전하는 거야.”     


 아이는 그동안 몰랐던 것을 새롭게 알았다는 듯이 위, 아래로 머리를 크게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속상한 마음을 전하는 방법을 몰라 늘 마음속에 답답하고 억울함이 가득했던 아이가 안타까웠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가 정성스럽게 만든 눈사람을 깔깔 웃으면서 발로 차버린 아빠는 어떤 마음으로 그런 행동을 했을까. 너무 화가 났다.      


 이후 아이는 수업 시간에 종종 자신이 어려운 순간마다 어떻게 행동하고 말해야 하는가를 물어왔다.      

“선생님 엄마가 공부 못 한다고 저보고 밖으로 나가래요~ 그럼 어떡해야 해요?”

“민호야 그럴 때는 어떡하면 좋을까?”

“할머니네 가요. (할머니 댁은 같은 건물 1층)”

“민호가 많이 속상하겠다. 그럴 때는 엄마 저 선생님이랑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라고 말씀드려보는 건 어떨까?”

“엄마 나 공부하고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 돼요?”

“그래 민호야 엄마가 공부 못 한다고 혼내면 그렇게 말해. 그렇게 말했는데도 엄마가 뭐라하고 민호가 힘들면 다시 선생님한테 말해줘 선생님이 엄마한테 이야기해줄게.”

“네 선생님”     


 아이는 그렇게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는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수업 초반에는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을 어려워하며 함께 놀이하던 상황에서조차 수동적이었던 아이였으나 시간이 거듭될수록 자신의 세상 속으로 나를 이끌었고 서서히 감정을 토해내며 도움을 청했다.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한글 지도를 위해 아이를 만났지만, 글자 하나는 익히게 된 일도 매우 중요했으나 무엇보다 나를 기쁘게 했던 것은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억울한 마음을 호소할 수 있게 된 모습의 변화가 나를 더욱 기쁘게 했다.


 그동안 아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이가 만든 눈사람을 웃으며 발로 걷어차는 아빠, 공부를 못 한다며 머리를 때리고 나가라고 소리치는 엄마. 부모에게조차 따뜻함을 느낄 수 없었던 아이는 자신이 몸담은 세상을 어떻게 그리고 있었을까?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서현 작가의 <눈물바다>


 주인공 아이는 학교에서 선생님께 혼이나서 속상하고 억울하다. 집에 왔지만 두 공룡은 싸우고 있고, 저녁밥을 남겨서 여자 공룡에게 혼나는 아이. 잠자리에서 아이는 펑펑 눈물을 흘린다. 아이가 흘린 눈물은 점점 차올라 바다가 되고 바다에 빠진 사람들을 보니 미안하지만 왠지 모르게 후련함을 느낀다.


 힘들 땐 울어도 괜찮아. 너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해봐.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어렵다. 아이와 함께 읽으면서 교사, 부모의 감정을 이야기해주고 아이의 감정도 함께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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