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부하는 이유
띵동! 금요일 오전 알림 메시지가 울렸다. 대학원 성적 장학금이 입금되었다. 세상에 살다 보니 장학금을 받는 날도 온다. 초등학교 이후 늘 공부도 못하고 수능도 엉망이라 대학도 제때 못하고 취직을 했었는데 그런 내가 성적 장학금을 받다니 정말 정말 정말 기뻤다.
언제나 공부에 목말라 있었다. 공부를 하고 싶었고 잘하고 싶었다. 책을 읽고 싶었고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난 늘 학교에서 공부를 못하는 아이였다. 그런 내가 재수를 하고 싶다는 말은 엄마에게 결코 꺼낼 수 없는 일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늘 가슴 한편에 공부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그래서 뒤늦게 방송대에 진학했고 퇴근 후에는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하나씩 내 힘으로 공부해 이뤄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하루는 박사과정에서 같이 공부하는 선생님이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학교 다닐 때는 공부를 못했다면서 왜 지금은 잘해? “
한바탕 크게 웃고는 선생님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나는 대학 입시에 적합한 아이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는 학원에서 맞으면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무서워서 답을 무작정 외우니 시험을 잘 봤고 공부를 잘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학교 공부는 내가 읽은 시와 문학작품에서 내 생각과는 다른 답을 찾아야 했다. 이후 학교 교육에 대해 환멸을 느꼈고 공부에 대한 흥미가 사라졌다. 저절로 점수는 좋을 수가 없었고 수능까지 망쳐버렸다. 결국 나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가 되었고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다.
그런 내가 방송대를 가기로 결심을 하면서 중간고사의 논술 시험이 너무 재미있었다. 이론을 바탕으로 나의 생각을 적어 내려 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그러나 기말고사는 객관식이라 또 점수는 별로였다. 나는 암기하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그래서 오늘날 대학입시 교육이 나와는 정말 안 맞았던 것 같다.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가기로 결정했다. 대학원 수업은 어렵지만 즐거웠다. 새로운 공부를 하고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들과 생각을 나누고 글로 표현하는 수업.
어느덧 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지난 시간을 생각하면 신기하고 내가 대견하다. 앞으로 논문이라는 커다란 산이 남아있지만 천천히 꾸준하게 공부해보려고 한다.
문득 나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뭘까? 수많은 이유들이 있었지만 궁극적인 이유는 한 가지로 귀결된다.
노회찬 의원이 말한 것처럼 같이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유한 사람들만 학원을 다녀서 배울 수 있는 교육이 아닌 독서, 철학 교육을 통해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도 책을 읽고 사유하는 일을 배울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꼭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독서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철학하는 과정을 통해 사유하며 성찰하고 온전한 인간으로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나의 작은 발걸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한다.
장학금을 받고 외할머니, 엄마, 아버님, 어머님, 남편, 아이들에게 모두 용돈을 드렸다. 누군가는 그 돈을 등록금으로 쓰지 왜 다 드렸다고 하지만 나의 공부를 위해 배려하고 애써준 고마운 가족들이다.
내가 가족들에게 용돈을 드린 이유는 내가 공부하는 이유와 같다. 내가 장학금을 받아서 다 같이 기쁘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외할머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눈시울을 붉히셨다. 그렇게 잠도 못 자고 공부해서는 할머니 용돈을 줬다며, 너를 진즉에 좀 더 열심히 가르쳤다면… 하면서 미안해하셨다.
그렇지만 그 시절 우리는 너무 어려웠고 엄마는 최선을 다했다. 내가 공부를 못했던 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만약 엄마가 나를 더 많은 학원을 보내고 사교육에 열을 올렸다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나는 더욱 공부에 환멸을 느끼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나로 인해 기뻐하는 가족들을 보니 너무 기뻤다. 고마운 사람들. 앞으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고 나아갈지 고민해 본다.
결국 내가 공부하고 나아가는 이유는 나만 잘 살고 내 자식이 잘 사는 세상이 아닌 다 같이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바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