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난, 네 엄마잖아...
'엄마'의 사전적 의미는 '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어머니’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엄마와 어머니의 개념적 정의는 다르다고 볼 수 있겠다. 헌데 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되는 상황은 어떤 상황일까? 질문을 던져본다.
우선 '격식'의 사전적 정의를 다시 알아보자. 격식은 '격에 맞는 일정한 방식'이라고 정의한다. 여전히 해소가 되지 않는다. '격'의 개념은 무엇인가? '주위 환경이나 형편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분수나 품위'라 일컫는다. 심지어 한자도 '격(格):격식 격'이다. 세상에...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분수나 품위는 무엇이란 말인가? 도무지 답을 내릴 수 없다.
어쨌든 '어머니'보다는 좀 더 편안하게 부를 수 있는 존재를 말하는 것 같다. 근데 사실 '어머니'라고 부른다고 안 편한 것도 아닌데...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해 계속 불편하다.
복잡다단한 개념들을 뒤로하고 분명한 것은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머니'보다는 '엄마'로 불리고 싶다는 것이다. 나 역시도 국어사전에서 명시하는 개념과 같이 아이들에게만큼은 편안한 엄마이고 싶으니까.
장황한 개념들은 미뤄두자. 난 왜 엄마라는 개념과 역할에 집착하는가?
요 며칠 꼬꼬마 코딱지 4학년 둘째 녀석이 감기에 걸렸는지 연신 기침을 하고 콧물을 훌쩍였다. 엄마~를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도 평소와 달리 거칠게 느껴졌다. 코가 막힌다며 유튜브에서 '막힌 코 뚫는 방법'을 찾다가 호전되지 않자. 결국 두루마리 휴지를 돌돌 알아서 양쪽 콧구멍에 끼워 넣고 체념 한 듯 멍한 표정을 짓는 녀석. 이 놈의 감기를 어찌 쫓아낼 수 있을까!!
새벽에는 기침이 심해져 밤새 뒤척이는 아이가 안쓰러워 매일 습도를 체크하고 약과 물을 챙겨주었다. 기침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함께 누워서 등을 도닥이고 쓸어주었다. 3일째 되는 날 역시 아이는 기침을 하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날도 역시 아이 옆에 누워 등을 토닥이고 쓸어주고 있었다. 조금 편안해진 아이는...
"엄마 저 때문에 제대로 잠 못 주무셔서 죄송해요."
뭐라고? 막 잠이 들려던 참이었는데 아이의 말에 잠이 달아났다. 아이의 말이 고맙고 대견스러웠지만 이내 또 슬픈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왜 아픈 자신보다 엄마가 잠을 못 자는 것을 더 미안해하는 걸까? 고작 11살인데... 아이의 말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려 밤새 잠을 설쳤다.
나는 아이에게 편안한 엄마이고 싶었는데 아이는 그렇지 않았던 걸까? 난 엄마이고 싶었는데 아이에게 나는 어머니였던 걸까? 엄마든 어머니든 아플 때는 아프다고 칭얼거릴 수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너무 냉정했던 걸까? 어쩌면 아이는 별생각 없이 내던진 말일 수도 있지만, 엄마 또는 어머니인 나는 아이의 말이 내내 맴돌았다.
"그런 말이 어딨어. 난 네 엄마잖아..."
아이는 이내 기침을 멈추고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참 배려 깊고 따뜻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철부지 11살 녀석이 아픈 순간에도 엄마를 걱정하고 배려한다는 게 속상했다. 어쩌면 너의 배려는 나를 향한 마음의 거리는 아닐는지...
큰 아이를 낳고부터 이따금씩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엄마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엄마는 어떻게 아이와 연결되었는지 등등. 사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은 내릴 수도 없고 저마다 생각이 달라서 주관적인 답을 내릴 수밖에 없다.
다만, 나는 어떤 엄마인가? 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사전적 의미의 엄마, 사회가 규정하는 엄마, 세계가 그리는 엄마의 모습이 아닌, 아이가 그리는 엄마의 모습 무엇이고 엄마인 내가 아이를 품는 모습은 어떠했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아픈 자신보다 엄마를 걱정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과연 어떤 엄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지 고민해 본다.
어떻게 엄마라는 존재를 규정할 수 있을까.
새삼 어린 시절 엄마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아가, 아픈 거 엄마 다 줘~"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노부미 저, <엄마가 유령이 되었어!>
어느 날 교통사고로 하늘나라에 간 엄마. 아이는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슬퍼하던 어느 날, 꿈에 나타난 엄마와 세상 여행을 하며 서서히 엄마의 죽음을 인정하게 된다. 누구보다 죽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슬픈 사연이 온전히 전해지는 따뜻한 그림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