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아내 찾기)
아내는 잠버릇이 고약한 편이다. 코를 고는 건 기본이고, 이상한 버릇 중 하나는 바로 이불을 돌돌 제 몸에 감아버리는 것이다. 마치 돌돌 말린 이불이 핫도그 빵이고, 아내의 몸통이 중앙에 꽂힌 소시지 같은 모양으로 말이다. 본인은 자고 있는 동안 일어나는 일이니 아내 스스로는 제 잠버릇의 심각성을 크게 체감하진 못하며 살았다. 그렇다고 아내가 자신의 잠버릇에 대해 전혀 몰랐던 건 또 아니다. 가끔 친구들에게 본인의 잠버릇을 전해 듣곤 설마~ 하면서도 여러 명의 공통된 진술에 오? 하고 어렴풋이 인지는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결혼 전까진 특별한 경우가 아니곤 줄곧 혼자 잠을 잤으니 스스로의 잠버릇에 대해 고민할 일은 별로 없었다. 특별히 이불을 둘둘 마는 버릇도 이상한 버릇일 순 있어도 '못된' 버릇은 아니었다. 누군가와 한 이불을 공유하기 전까진 말이다.
결혼을 하고도 가을이 오기 전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아내가 아무리 이불을 돌돌 말아가도 그게 남편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몸에 열이 많은 남편이 여름에 이불을 덮고 잘 리 만무했다. 문제는 9월에 들어서며 아침 공기가 쌀쌀해짐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ㅡ너가 이불 돌돌 말아서 다 가져가는 거 알아?
어느 날 남편이 말했고, 아내는 일단 부인했다. 매번 잘 때마다 몸을 돌돌 굴려 이불을 모두 가져간다는 게 본인이 생각해도 이상했고, 심지어 수고스럽게까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남편의 위와 같은 항의(?)는 아침마다 반복되었지만 아내는 진지하게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오히려 남편이 오버하며 장난을 친다고만 생각했다. 이런 아내가 남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게 된 계기는 다른 곳에 있었다.
어느 새벽, 아내는 몸을 뒤척이다 잠깐 잠에서 깼다. 근데 그때 본 장면이 꽤나 충격이었던 거다. 남편의 말처럼 아내 자신은 이불을 온몸에 돌돌 말아 뚱뚱한 애벌레 같은 모양을 하고 있고, 남편은 몸을 한껏 구부린 채 그런 아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장면을 보고 만 것이다. 아내가 견고하게도 이불을 말았던 지라 남편은 이불속으로 침투할 공략점도 찾지 못한 채 이불 덮기를 포기하고 잠이 든 상황이었다. 반팔 잠옷이 추웠는지 허리를 구부려 팔뚝 맨살을 양다리 사이로 넣어 감싸고 있던 남편의 모습은 마치 어미를 잃은 불쌍한 새끼곰 같았다.
아내는 충격을 받았다. 남편의 말이 정말 사실이었다니! 별로 넓지도 않은 침대에서 도대체 얼마나 재주껏 굴러다녀야 이불을 온몸으로 둘둘 말아버릴 수 있는 거지? 아내는 불쌍한 남편의 옆태를 내려다보며 지금껏 남편의 말을 귓등으로 들어온 것을 반성했다. 그리곤 몸에 말려 있던 이불을 반듯이 펴 남편의 온몸에 덮어주었다. 그렇지만 습관이란 게 참 무서워서 아내는 그러고도 매일 저녁, 이불 돌돌 말기 스킬을 멈추지 못했다. 결국 이 이야기는 남편용 가을 이불을 새로 구매하는 것으로 시시하게 마무리되었다. 물론 남편에게는 전혀 시시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아내의 잠버릇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건 아닌데 이야기가 많이 샜다. 애초에 글을 쓰려했던 이유는 아내가 오늘 꾼 꿈을 기록하려 함이다. 잠버릇도 잠버릇이지만 아내는 거의 매일 밤 꿈을 꾸는 편이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정신이 들자마자 눈도 뜨지 않은 채 남편에게 꿈의 내용을 말하는 버릇까지 생겼는데, 그래서인지 꿈에 대한 기억이 훨씬 오래 지속되는 것 같다고 아내는 생각했다. 아내가 오늘 꾼 꿈의 내용은 다음와 같다.
꿈에서 아내는 다른 남자와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다. 그런데 어떤 연유인지 아내는 지금의 남편과도 이성적인 관계가 있었나 보다(불륜!!!). 아내는 (현실 남편이지만 꿈에서는 남편이 아닌) 오빠를 보더니 '나는 오빠를 위해서는 모든 걸 포기할 수 있어!!!'라는, 주말드라마 속에서나 나올법한 대사를 던지곤 고민에 빠졌다. (꿈속) 남편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느냐, 아니면 모든 걸 포기하고 갈 수 있는 오빠(현재 남편)에게 가느냐... 고민을 했다고는 하지만 꿈속 아내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갈 수 있는 오빠에게로 이미 향하고 있었다.
남편은 아내의 꿈 얘기를 전해듣더니 아내에게 너는 도대체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냐 물었다. 아내 스스로도 그게 궁금했다. 잠에서 완전히 깬 아내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갈 수 있는 '그' 오빠와 지금 함께 살고 있음에 안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이불만은 포기하기 어려웠나 보다. 그래도 본인의 범행 현장을 목격한 뒤부터 아내는 새벽에 종종 깨어 남편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다시 잠이 들곤 한다. 가을 이불을 배송받기 전까진 반복될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