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쏙쏙이 사진 업로드는 쏙쏙 엄마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퇴근길 버스 안, 아내는 친구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결혼 후 군인인 남편을 따라 갑작스레 부산에 내려간, 고등학교 시절부터 절친한 동네 친구였다.
'사진을 보냈습니다.'라는 카카오톡 알림을 보자마자 아내는 설마, 싶었다. 다급히 메시지를 열어 본 아내의 예상은 적중했다. 바로 쏙쏙이가(친구 아기의 태명) 세상 빛을 본 것이다.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신생아가 오른쪽 볼에 보조개가 들어간 채 씨-익 웃고 있는 사진을 보노라니 아내는 양쪽 입꼬리가 올라가면서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무슨 신생아 주제에 이렇게 여유 있게 웃고 있으며, 머리카락은 왜 이리 북실북실하고, 벌써부터 한쪽만 들어가는 저 살인적인 보조개는 뭐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아내는 아기의 얼굴에서 친구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게 신기해 작은 휴대폰 화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ㅡ 너랑 닮았다!
ㅡ그치, 남편만 닮은 줄 알았는데 나랑 더 비슷한 거 같아.
ㅡ아냐, 너랑 진짜 많이 닮았어! 보자마자 너 닮았다고 생각했어.
ㅡ쏙쏙이 우리 오빠 닮은 듯?
친구 얼굴을 빼닮았는데 아들이니 친구의 친오빠 얼굴이 보이는 것도 말이 된다 싶었다. '그럼 나중에 내가 아들을 낳으면 남동생 얼굴이 보이려나? 그건 좀 징그러운데'하고 아내는 생각했다.
ㅡ크크 쏙쏙이가 남잔데 너를 닮았으니까 너희 오빠 닮았나 보다.
ㅡ유전자의 신비야. 남편만 닮았으면 서운할 뻔했어.
친구의 출산일이 가까워 온 것 같아 아내가 안부 문자를 보냈던 것이 불과 일주일 전이다. 친구는 '이제는 언제 나올지 몰라'라고 대답했었다. 예정일은 9월 29일인데 현재 37주째라서 지금부터는 언제고 나와도 된다는 말이었다. 그랬는데 딱 일주일이 지난 퇴근길에서 아내는 이렇게나 갑작스럽게 쏙쏙이의 보조개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아내는 친구에게 언제 태어난 거냐 물었다. 친구는 대답 대신 출생일과 출생 시간, 성별 등이 적힌 종이 한 장을 찍어 보냈다.
엄마: 000, 아빠: 000 / 왕자님 (3.01kg) /2020년 9월 16일 오후 2시 44분
아내가 사진을 받아보기 세 시간 전이었다. 세 시간 전 친구는 아기를 낳았고, 그와 동시에 친구가 낳은 '그' 아기인 쏙쏙이가 세상에 첫 발을 내디뎠다. 빨라도 어제 정도였겠거니 생각했던 아내는 불과 세 시간 전에 아기를 낳고 사진을 찍어 보내준 친구의 민첩함에 감동했다. 동시에 상태가 괜찮으니 빨리 소식을 전해줄 수 있었겠단 생각이 들어 조금 안도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친구는 유도분만을 시도했는데 아기가 내려오지 않아서 결국 제왕절개를 했다고 했다. 아내는 잠시 머릿속으로 칼자국이 간 친구의 배를 상상했다.
어떤 위치에 어떤 모양으로 났는지도 모르는 칼자국을 상상하며 아내는 이상하게도 고등학교 삼 학년이었던 친구를 떠올렸다. 조그마한 입으로 항상 뭐든 맛있게 잘 먹는 친구였다. 좁은 책상 위 급식판 여러 개를 이리저리 포개어 가며 마주 보고 급식을 먹던 시절, 친구는 유난히도 마지막까지 식판을 깨끗이 비웠다. 반에서 짓궂었던 한 남학생은 친구에게
ㅡ00이는 식판을 핥아먹냐?
라고 놀릴 정도였다. 식판을 핥아먹냐는 말이 그렇게도 웃기고 공감이 됐던지, 친구와 함께 밥을 먹던 무리는 친구가 쌀 알을 한 톨이라도 남길라치면 그걸 가리키며 이건 왜 안 먹냐며 장난을 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아내는 깨끗이 비워진 친구의 식판과 친구 배에 난 칼자국을 나란히 떠올렸다.
ㅡ00아, 더 이상 먹을 거 없어~~
빈 식판을 가리키며 주위에서 아무리 놀려대도 친구는 꿋꿋하게 반찬 양념이며 부스러기 같은 것들을 설거지 하는 것마냥 긁어먹었다. 배에 칼자국을 가진 엄마가 된 친구를 마주하니 그때 깨끗이 식판을 비우던 친구의 모습마저 삶에 대한 성실함으로 다가오는 건, 아내가 아직 임신과 출산의 경험이 없어서 일까?
아내의 결혼식날로부터 일 년 전 유월, 친구는 5년 연애한 동갑내기 남자 친구와 결혼식을 올렸다. 아내는 온몸을 던져가며 친구가 던진 부케를 받았다. 이번에도 친구는 한 발짝 먼저 새로운 생명을 품었고, 배에 칼자국을 가진 엄마가 되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역할들에 대수롭지 않게 적응해가는 친구를 보며 모든 것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아내는 일종의 부러움과 존경심을 품었다.
아내는 아직은 뭐가 필요한 지 모르겠다는 친구를 채근해가며 무엇이 필요한지 재차 물었다. 꼭 친구에게 필요한 출산 선물을 하고 싶단 마음에서였다. 튼살 크림도 생각했고, 비타민도 찾아보았지만 친구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 같았다. 얼마 후 친구가 보내 준 것은 다름 아닌 손목 보호대, 였다. 임신 중일 때도 손목이 너무 아팠는데 출산 후에는 더 아파진대서 걱정이라고 친구는 말했다.
ㅡ00이가 손목 보호대가 필요하대~
아내는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손목 보호대를 주문하며 옆에 누운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응? 출산을 하면 손목이 아픈가? 왜 아프지?라고 물었고 아내는
ㅡ그 뭐냐.. 출산하면 막 뼈 마디 마디가 벌어지구 그런다고 하잖아...아닌가?
하며 어디선가 대충 주워들은 얘기를 내뱉다 출산한 여성의 몸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한 스스로를 마주했다. 출산한 여성의 몸은 아내 엄마의 몸이기도 했고, 남편 엄마의 몸이기도 했다. 남편의 엄마는 두 번, 아내의 엄마는 무려 4번이나 경험했던 그 몸 말이다.
아내는 바로 유튜브를 켜 ‘출산 후 신체 변화’를 검색해보았다. ‘출산 후 바로 나타나는 어마어마한 신체 변화들(오로, 젖몸살, 가슴 처짐, 튼살, 체중, 머리 빠짐 등등!) 그리고...?’라는, 제목도 무시무시한 영상이 가장 상단에 보였다. 아내와 남편은 12분가량 되는 영상을 나란히 누워 나름 진지하게 시청했다.
출산 후엔 배에 힘을 주는 게 어렵거나, 불안해서 또는 복부가 늘어져 장의 활동이 줄기 때문에 변비가 생기기도 한다. 산모의 80%는 산후 탈모를 겪고 있다. 머리카락이 너무 우수수 빠져도 당황하거나 스트레스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스트레스받으면 더 빠진다(어쩌자구???) 젖이 도는데 모유 수유를 안 할 경우 젖몸살을 심하게 앓을 수 있다. 출산 후에는 몸이 심하게 붓는데 정도가 심한 경우는 살을 눌러도 살이 다시 안 올라오기도 한다. 모유수유를 하지 않아도 임산과 출산만으로도 가슴의 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시적인 변화이지만 출산 후에는 잇몸 혈관이 얇아져 잇몸이 쉽게 붓거나 피가 나기도 한다. 등등....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머리카락이 더 빠지는 잔인한 악순환이라니.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단 유튜버의 단호한 말투에 아내는 벙쪘다. 영상을 보면 볼수록 아내는 과연 자신도 엄마라는 존재가 될 수 있을지 두려웠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너무나도 신비롭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여성이 치러야 하는 대가가 혹독하게만 느껴졌다. 아내는 무시무시한 제목의 유튜브 영상을 친구에게도 공유했다. 혹시나 친구도 자신처럼 모르고 있을까 봐, 미리 알고 준비하고 관리해야 한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상을 보내고나서 아내는 아차 싶었다. 친구는 그 영상을 보며 어떤 감정을 느끼고 무슨 생각을 할까? 혹시나 너무 무섭고 억울해 엉엉 울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