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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진 Jun 02. 2021

새 학기 첫 날

MZ 딸에게 쓰는 꼰대 아빠의 이야기 18 – 새 학기 단상

  새 학기 첫날은 두어 시간 일찍 학교에 간다. 문구점에 들러서 문구를, 그중에도 붉은색 1.0 밀리미터 유성 볼펜을 신경 써서 고른다. 조심스레 종이에 써 본다. 글씨를 많이 써야 해서 필기감과 손목의 피로도가 중요하다. 전투에 나서며 병장기를 살피는 기분이다. 


  복도를 마주 오는 학생들과 인사를 나눈다. 첫 수업. 어색하고 궁금하고 호기심 나고, 귀찮고 피곤하고 짜증 나고, 그 외의 수많은 이야기를 담은 눈동자 백여 쌍이 내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낯섦과 어색함이 나를 더 긴장하게 한다. 지금 그들은 내게 무엇을 배울 것인지보다 시험과 점수가 더 관심 있을 것이다. 시험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하니 환호한다. 그 대신 개인 과제 여섯과 팀 과제 넷을 할 것이고 과제는 각 10점, 제출한 보고서는 붉은 펜으로 검토해서 그다음 주에 돌려줄 것이며, 기한이 지난 보고서는 받지 않는다고 하니 환호는 한숨으로 바뀐다.


  한 학생이 손을 들어 팀 과제 점수는 어떻게 줄지를 묻는다. 팀원 모두 같은 점수를 받게 될 것이라고 했더니 대부분 팀원은 수고하는데 무임 승차하는 일부 학생이 있어서 불공평한 결과가 될 것이라며 이의를 제기한다. 여러 학생이 동의한다. 팀원 각자의 참여와 기여를 가중치로 적용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해 봤으나 불충분하다고 한다. 공헌과 가중치를 정확하게 계산하기 어려워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다는 그들의 논리와 주장은 정확하고 고슴도치의 털처럼 날카롭다. 그러나 내게는 성적 증명서의 한 줄 기록이 중요하며 점수에 맞추어 자신의 참여를 조절하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아무래도 이번 수업에서 도우며 성장하는 경험을 나누어보려 한 나의 계획은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열 개 모두 개인 과제로 하기로 했다.


  수업이 마치면 학생들은 구슬이 튀듯 사방으로 흩어지고 또 다른 한 무리가 모여든다. 그들은 걸음이 재다. 젊어서 바쁘고 돈이 없어서 바쁘고 하는 일이 많아서 바쁘다. 경쟁의 긴장과 취업의 압박으로 남의 일에 신경을 줄이고 손절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면서도 지구촌과 환경오염, 자연보호, 사회문제에 관심이 높은 것은 그들의 내면이 아직도 선한 증거다. 


  퇴근길, 도시는 종종거리는 젊은이들로 붐빈다. 저기 내 딸도 가고 있다. ‘전공은 신경 쓸 것 없어. 어떻게든 은하철도 열차에 타야 안드로메다까지 갈 수 있는 거야.’ 저들 중 여럿은 지난밤 중얼거리며 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수십 통을 오늘 하루 돌렸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서 한 번 더 좌절할 것이다. ‘그러더라도 하루살이로 살면 안 된다. 멀리 봐야 해. 청춘은 아픈 거야. 지금 힘들어도 참고 다시 일어나서 내가 하라는 대로 해 봐.’ 속으로 그렇게 말을 하다가 흠칫, 놀라 멈추었다. 혹시 지금 내가 꼰대의 복제 본능을....


  되짚어 보니 내 생각과 가장 비슷한 학생의 대답과 보고서를 더 평가하고 점수를 주었다. 학문과 세상 속에서 발견하고 깨닫게 하기보다는 내 말과 생각 속에 머물고 눈치 보고 짐작하며 내 생각과 방법을 따르게 했다. 입으로는 반역적이 되라고 하면서 눈으로는 눈치껏 내게 맞추면 이익이라며 손익계산의 기법을 훈련시켰다. 그것들을 배운 그들의 삶과 세상이 나아졌을까. 지식과 지혜는 물과 같아서 그것으로 의사는 약을 만들어 아픈 이를 치료하고 독사는 독을 만들어 사람을 죽인다는데, 배운 지식과 지혜로 그들은 약을 만들었을까 독을 만들었을까. 이어지는 질문과 번민으로 어지러운 한 학기를 마쳐 갈 무렵, 글 하나를 만났다.    

 

  ‘틀림없이 클 것이다. 나무를 키우는 것은 하느님의 일이므로 나의 책임은 아니다. 나는 다만 나무가 크리라는 믿음만 가짐으로써 족하다 – 중략 – 크는 과정에서 병들지 않으면 좋은 열매를 많이 맺을 것이다. 하느님은 물론 병들지 않게도 하실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나무를 키우는 사람이 책임질 일이다.’ (정진권, 묘목설 중에서)     


  머리와 마음에 죽비를 맞은 듯했다. 

  방학에 짧은 여행을 했다. 입담이 구수한 가이드는 이동 중에 영화를 보여주듯 목적지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로 내 마음에 세트장을 세웠고 주인공이 되어서 걸어 다니게 했다. 함께 한 모두 자기들만의 여행을 만들며 즐거워했다.


  다시 학기를 시작하는 날이다. 우리 교육은 사람을 활짝 펴게 하지 못하고 잔뜩 주눅 들게 했다는 법정 스님의 지적이 마음을 누른다. 가르치는 일이 학문과 지식 세계 여행을 안내하는 일이라면 이번 학기에 나는 어떤 가이드가 될 수 있을까. 두어 시간 일찍 학교에 도착해서 문구점에 들러 문구와 볼펜을 꼼꼼히 골랐다. 나무는 하느님이 키운다고 속으로 되뇌면서 그 여행 연장들을 쓰다듬었다. 복도를 마주 오는 학생들의 인사가 오늘따라 더 감사하다.


                                                                                                                                <2021.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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