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베짱이
지방에 사는 특권이랄까?
지금 텃밭에는 상추, 대파, 쪽파가 잘 자라고 있다. 심는 시기를 좀 놓치긴 했지만, 마늘과 양파도 까만 비닐 아래에서 잘 자라고 있다.
내가 농사를 짓기 전에는 밭에 씌워진 검정 비닐이 다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플라스틱 쓰레기라는 말을 함부로 했다. 하지만 씨앗을 뿌리고 여름을 지나 보면서 알게 되었다. 잡초는 너무나 강력한 번식력으로 내가 원하는 수확물을 모두 집어삼킨다는 것을.
부끄럽게도,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은 농사용 폐 검정 비닐이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는 재료로 만들어지길 바랄 뿐이다.
잠자리에서 뒤척이다가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텃밭으로 왔다. 아직은 새벽이라 농사용 창고에 불을 켜고 의자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집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새벽 별이 보였다.
텃밭에는 하얀 달빛도 내려앉고 있었다.
두툼한 파카를 입고 있는데도 차가운 새벽공기가 나를 에워쌌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앉아 텃밭을 쳐다보고 있는데, 두통이 점점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런 상념에 잠기면서 우두커니 앉아 보온병에 담아 온 커피를 부어 마신다.
‘왜 이 작은 텃밭에만 오면, 기대하는 성취를 이루지 못해 조급해하는 내 마음이 진정되는 걸까?’
라는 생각에 마음을 집중하고 있는데, 어느새 새벽이 가고 아침이 밝아온다.
새벽에는 조용하기만 했던 텃밭에 까치 우는 소리와 아침 햇살이 퍼진다.
그러면 나도 이미 차가워진 커피를 내려놓고 움츠렸던 어깨를 편다.
그리고 장갑을 끼고 잡초를 뽑으러 텃밭에 쭈그려 앉는다.
즐거운 마음으로.
주말농장, 텃밭, 두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