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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Dec 17. 2018

폭염도 막지 못한 아버지의 노동

“소금 퍼먹으며 일한다"는 아버지, 가슴이 미어진다


‘폭염 속 작업하던 60대 건설근로자 사망’  

   

최악의 폭염이었던 지난여름. 기사 제목을 보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클릭해 보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기사 제목에 ‘60대’라는 나이가 적혀 있지 않았다면 나는 끝내 저 기사를 읽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저 뉴스가 아니다. ‘60대’와 ‘사망’이라는 두 단어를 뺀다면 뉴스가 아닌 내 아버지의 이야기다. 나의 아버지는 ‘폭염 속 작업하는 70대 건설근로자’였다.     


아버지는 평생을 건설현장에서 근무하며 하루치의 목숨을 담보로 노동을 하고 일급으로 계산되는 월급을 받아 50년을 넘게 일 해오셨다. 그 목숨 값으로 딸내미인 내가 자라났고 아버지는 늙었다. 1년 중 쉬는 날은 한여름 장마철 폭우나 한겨울 폭설이 내리는 며칠뿐. 아버지의 달력에는 일요일이 1년에 7번 정도 될까? 평일로 가득한 날들이었다.


그렇게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건설현장으로 나가셨다. 그 노동은 강도와 빈도수가 점점 줄어든 채 일흔이 넘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평생을 해 온 유일한 일이었고, 일흔이 넘은 남은 여생에도 그 일 외에 다른 일은 생각할 수도, 할 수도 없는, 위대하면서도 지독한 경력이다.    

  


하지만 1년에 몇 번 되지 않는 휴일 사유에 ‘폭염’은 없었다. 폭우와 폭설은 공사자재와 일 자체에 영향을 주는 일이라 어쩔 수 없이 쉬어야 하는 것이었지만, 폭염은 아버지만 참는 다면 꾸역꾸역 할 수 있는 일이라 쉬어야 하는 이유에 해당되지 않았다. 매년 여름, 아버지는 밥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한 달에 3,4kg씩 체중이 줄었다.

     

2018년 여름. 111년 만에 최악의 폭염이라고 했다. 40도 가까운 한낮의 최고기온. 온열질환자는 4500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48명에 이른다. 이건 분명 자연재난이다. 이런 정도의 폭염은 당연히 아버지의 인내와 노력과 고통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생계가 걸린 일이고, 뭐랄까 자신의 평생 습관과 소용(所用)이 걸린 일이기에, 아버지는 여전히 폭염을 휴일 사유에 넣지 않으셨다.      




얼마 전 경기도 양평에 있는 5층짜리 빌라 건설현장의 소일거리 전화를 받고 여지까지의 삶이 그랬듯, 새벽 4시 연장을 챙겨 집에서 두 시간이 걸리는 현장으로 나가셨다. 새벽에도 30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 속에 8kg 가까운 연장 가방을 어깨에 짊어지고 나가 그렇게 점점 뜨거워지는 35도 37도 38도의 공기 속에서도 여전히 아버지는 일을 하셨다.     


“아휴. 말도 마라! 소금을 포대자루로 갔다 놓고 퍼먹으면서 일한다.”     


폭염 속 건설 노동자에게는 수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염분이다. 아버지는 그 염분 보충마저 저렇게 극단적으로 하셔야 겨우 버틸 수 있는 것이구나. 생각해 보니 여름철 엄마는 항상 국과 반찬을 좀 더 짜게 하셨다. 너무 짜다는 나의 투정에 “니 아빠는 여름에 더 짜게 먹어야 돼.”라고 말하셨는데 엄마는 본능적으로 알고 계셨던 것 같다.     


나는 차마 상상으로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그날 밤 펑펑 울며 밤을 지새웠다.      


“아빠. 제발 일 나가지 마세요. 그러다 아빠 진짜 큰일 나요. 제발 집에서 쉬세요.”

“응 괜찮아. 쉬엄쉬엄 일 하면 돼.”     


아무리 느리게, 아무리 조금씩, 아무리 여유를 부리며 일 한다 해도 폭염 속 막노동이다.     




계속되는 살인적인 폭염에 주요 건설사의 공사현장도 멈췄다 하고, 국토부에서도 여러 기관에 공문을 보내 낮 시간대 작업을 중단하거나 연기하라는 통보를 내렸다고 한다. 아버지도 요즘은 오전 작업만 하고 12시에 퇴근을 하신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본인의 건강보다 오후 작업을 하지 못해 반 토막 나는 본인의 일급에 더 걱정이 많으시다.      


생계와 삶이 걸린 문제들은 배려와 행정으로도 풀 수가 없다. ‘작업시간 단축’ 딱 거기까지 만이다. 그 단축시간만큼 줄어드는 일급까지는, 그 일을 생업으로 하는 노동자 외에는 미치지 않는 생각일 것이다.      


아버지라고 폭염에 왜 쉬고 싶지 않으실까. 자식이 아무리 용돈을 드려도, 나라에서 공사를 멈춰도, 본인의 건강보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훨씬 중요한 아버지는 40도의 폭염 속에도 뜨거운 연장을 차마 내려놓지 못한다.  


에어컨을 틀어놓고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딸은 절대 보상해 드릴 수 없는 ‘무엇’ 일 것이다.


가슴이 미어진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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