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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Dec 30. 2022

2022년은

한 해는 그렇게 흘러간다.

얼마 전 청탁받은 원고의 시작을 이렇게 썼다.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하루는 길고, 월급날을 고대하는 한 달은 먼 것도 같은데, 한 해는 또 이렇게 훌쩍 지나갔습니다. 더 이상 넘길 수 있는 달력은 남아 있지를 않고 ‘또 이렇게 1년이 가는구나!’ ‘또 이렇게 나이를 먹는구나!’ 싶죠.     



그래. 또 한 해가 지나간다. 나는 ‘2022년은’이라는 제목을 먼저 써놓고 1년짜리 숙제처럼 글을 쓴다. 


휴대폰 달력 앱을 켜고 올해 1월부터 적혀있는 일정을 쭉 한 번 살펴본다. 1월엔 누구나처럼 운동을 등록했다. 2월엔 도수치료를 받고 전문 상담센터에 다니기 시작했다. 3월엔 선거가 있어서 밤새 개표방송을 했었고, 4월엔 엄마를 모시고 대학병원에 갔다. 5월엔 엄마의 자궁적출 수술과 내 생일이 있었고, 6월엔 제주도 여행도 다녀왔다. 7월부터 10월까지 피티와 수영과 출근과 수많은 일이 반복됐다. 11월 다시 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했고 당분간 읽기와 쓰기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후 일과 운동을 반복했다. 다행인 건 정신과 약이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고 나의 체력은 조금 올라왔으며 그만큼 아이를 더 잘 돌볼 수 있게 됐다는 거다.  


   

31개월 된 아이가 말한다. “나는 엄마가 좋아!” 아이의 단순하고 명료한 고백 앞에 깊게 생각해 본다. 나도 엄마가 된 내가 좋을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엄마도 은유의 엄마라서 좋아.” 딸 아이의 이름은 ‘은유’다.

  

나에겐 은유를 키우는 삶을 비유할 수 있는 단어와 표현이 없다. 그 문장을 쓸 수 있을 때는 아이가 성인이 되었거나 내가 많이 늙었을 때일 것이다. 엄마는 갑자기 되어 아이의 성장과 함께 계속 이어지다가 쇠퇴하면 놓을 수 있는 것일까. 늙은 나도 엄마일 테니 이제 ‘엄마’라는 그 이름은 내 성처럼 이름 옆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 단단히 붙어있어라. 나는 엄마로도 굳건히 살 테니까. 노력할 거니까. 은유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아이를 키우는 건 동시에 나를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이젠 알게 되었다.  







   

정신과 선생님이 말했다. 모든 병은 살려고 한다고. 몸살도 암도 걸리면 누구든 약을 먹고 치료받으며 살려고 한다고. 유일하게 죽으려고 하는 게 우울이라고. 나는 정신과 약을 먹고 운동을 하고 일을 하고 반복하며 이제 우울로부터 살려고 한다. 우울은 죽으려고 하는 거니까 계속 살려고 하면 결국 우울이 아닌 게 되겠지. 이것이 올해 내가 가장 잘한 일이자 제일 큰 업적이다.      


스트레스는 어디에든 있고, 피곤과 무기력, 불안과 걱정은 주기적으로 찾아오고, 세상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어지럽지만, 그 속에서도 무탈한 하루와 버텨낸 한 달, 인내하고 반복한 열두 달이 모여 1년이 되었다. 한 해는 그렇게 흘러간다. 모두의 웃음과 눈물, 한숨과 안도, 낮과 밤과 함께.      


자 이제,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무모한 긍정과 넓은 시선으로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할 때다. 고생했다고 다독여 주고, 또 고생해 보자고 다짐하며 2022년을 보내고 2023년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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