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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Dec 29. 2018

자식은 항상 부모보다 늦다.

겨우 가늠해 보는 부모의 시간들

부모에 대한 나의 짐작은 항상 늦고 예상보다 초라하다.     


나는 자라나며 한 번도 엄마가 가족들이 모두 나간 후 혼자 집에서 어떻게 밥을 먹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아빠가 일터에서 어떤 시간들을 보낼지 짐작해 본 적이 없다. 자식이 부모의 보이지 않는 시간들을 헤아리기 시작하는 건 부모의 곁을 나와 혼자 밥을 먹어보고 돈을 벌어보기 시작하면서부터가 아닐까?   

  

하지만 그것조차 짐짓 가늠해 볼 뿐 모두 내가 없었거나, 어렸거나, 몰랐을 시간들이다.   



엄마의 밥상을 마주했던 그 날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대학 졸업 후 첫 사회생활. 매일 아침 바쁘게 나가버리는 딸을 위해 뭐라도 갈거나 섞어 먹였던 엄마. 매일 저녁 퇴근 후 지쳐 들어오는 딸을 위해 찌개를 끓이고 반찬은 꼭 종류별로 3가지 이상 내주었던 엄마. 어느 날 출근 후 몸이 너무 좋지 않아 어쩔 수없이 조퇴를 하고 집에 일찍 들어가게 되었는데, 문을 열어보니 엄마는 찬밥에 물을 말아 김치 하나를 놓고 허공을 바라보며 씹고 있었다. 엄마의 밥상에는 찌개도 그릇도 젓가락도 없었다. 그 찬물에 만 밥마저 내가 아침에 남기고 간 것이었으리라. 


엄마는 그렇게 평생을 남편과 자식을 위해 한가득 밥을 차리고 자신에게는 그저 한 가지로만 허기를 채웠다. 내가 집을 나선 후 집안에 있을 엄마를, 집안에서 혼자 매일 그렇게 밥을 먹었을 엄마를, 상상으로라도 나는 짐작해 보지 못했다. 나는 자주 밥을 남겼는데 그 밥은 항상 갓 지은 따뜻한 밥으로 돌아왔다.      



아빠의 출근길을 마주했던 그 날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내가 아침에 눈을 뜨면 아빠는 항상 없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도, 더 일찍 일어나도, 아빠는 여전히 출근을 한 후였다. 그렇게 아빠는 내가 일어나면 집에 없는 사람이었다. 보통의 삶의 패턴을 가진 사람들에게 새벽 첫차는 특별한 일이나 사정이 생기지 않는 이상 잘 타지 않게 되는 일이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였고, 대학시절 편입 공부를 하겠다고 굳은 마음을 먹고 학원을 다니게 됐을 때 첫 지하철을 타게 되었다. 알람 3개를 맞춰놓고 겨우 눈을 떠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 허겁지겁 지하철역으로 뛰어 들어가 첫차를 겨우 탔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건너편 의자에 아빠가 앉아있었다.


 이른 새벽 첫차를 나는 겨우 탔는데 아빠는 매일 탔다. 나에게 아빠는 그저 일찍 출근하는 사람이었지 그‘일찍’이 첫차였는지는 생각으로라도 짚어보지 못했다. 나는 아빠가 집을 나서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아무리 조숙하고 철이 일찍 든 나였지만 부모 앞에 일찍은 아무것도 없다.  후회는 말 그대로 항상 뒤늦게 오는 감정이어서 도저히 앞으로 오는 법이 없어서, 너무나 늦게 부모의 일상을 알아차리며 뉘우칠 뿐이다.      


내가 눈으로 마주하기까지 엄마는 몇 번의 허기를 ‘겨우’ 채웠고, 아빠는 몇 번의 첫차를 ‘으레’ 탔을까?


자식은 항상 부모보다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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