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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Oct 20. 2023

올바른 반성문

‘물러나는 방식으로’ 완전히 후퇴하지 않기



      

형식의 변화는 균질화에 저항하는 한 방법이다.

-금정연 



         

임신, 출산, 육아와 관련된 여러 편의 글을 쓰며 내가 겪은 고통에 대해 묘사하고 부당하다 느낀 사회와 제도에 윽박지르고 다른 엄마와 아빠들에게 호소하기도 했지만, 결국 한때 스스로 엄마라는 역할에 높은 기준을 세우고 모성의 고정관념에 젖어있기도 했던 나를 생각한다.      


가사와 육아 노동의 평등과 분배를 주장했으면서도 남(편)이 하는 걸 못마땅해하고 ‘내가’ 해야 직성이 풀리고, 누군가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모성이라 불리는 일들을 몸소 실천했던 그러면서 억울해했던 나를 되돌아본다. 어쩌면 내가 ‘엄마’라는 역할의 암초일지도 몰랐다.     


아이를 낳고 밀려드는 집안일 속에서도 더 깨끗한 집을 유지하지 못해 불만이었고 극심한 손목 관절 통증으로 고생하면서도 매일 삼시세끼 다른 종류의 이유식을 직접 만들려고 낑낑댔고 ‘엄마니까’ 나도 ‘이 정도는 해야지’ 속박했던 초창기 엄마인 내가 있었다. 그 의욕과 실천은 타인과 본인, 사회와 개인의 합작품일 것이다.      




“주부니까 당연히 그 정도는 해야지”

“엄마라는 사람이 그러면 되나?”

“그냥 집안일이나 하고 애나 보는 거지 뭐...”     





이런 말들은 남성의 입에서 나오는 것만큼이나 여성, 무엇보다 엄마의 말과 생각이 되는 것이 더 위험하다. 소위 말해 여자의 적이 여자가 되는, 여성 스스로가 그 역할을 평가 절하하고 퉁치는, 여성의 가사와 육아 노동이 계속 여성의 안에서만 맴도는 일들이 줄어들어야 한다.     


물론 오래된 남녀 불평등, 엄마라는 역할에 과한 의무감을 갖게 한 사회적 분위기와 요구, 엄마의 희생이 마치 전통처럼 이어진 관습이 먼저 잘못됐다. 그건 맞다. 그릇된 선행이 현재의 과오를 만든다.     


 


여성의 가사와 육아 노동이 계속 여성의 안에서만 맴도는 일들이 줄어들어야 한다





그다음은 평등의 확장과 의무감의 해제를 위해서 엄마가, 여성이 다른 방식을 시도하고 내려놓는 방법으로의 도모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마라는 역할의 범위를 다시 설정하고, 모성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돌봄 노동의 가치를 스스로 먼저 인정하며, 대안을 찾고 나누고 요구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나도 잘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제 잘해보려 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했던가. 떠나지 않고 남아 절을 리모델링하는 것도 가능하다. 골조 자체를 바꾸기 어렵다면 그 위에 새롭게 디자인하며 새집처럼 다시 짓고 싶다. 그 안에서 잘 살아보고 싶다.     




‘힌트는 의외의 방향에서 왔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는 ‘물러나는 방식’으로 육아와 타협한 엄마들이 꽤 있었다.

...

자신은 육아와 맞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하며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고 시도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건 신나는 일이다.’     


<우리는 서로를 구할 수 있을까 > - 정지민          





이런 타협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한다.  







   

이제 엄마인 나도 엄마라는 틀에서 벗어나 변화된 시대에 맞는 생활양식과 제도를 위해 실천할 수 있는 행동과 절충에 대해 고민한다. 예컨대 일종의 ‘아빠의 엄마 되기’ ‘엄마의 아빠 되기’와 같은 일들도 행해보고 ‘엄마인 내가 엄마가 아닌 시간’도 만들어 가면서 말이다.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있었지만 엄마가 되니 먼저 마음이 기운 것도 있었다. 이제 그 치우쳐진 마음을 바로 세우며 가라앉은 쪽에 흙을 채워 평평하게 살기 위해 애쓰려 한다.


고르고 탄탄한 엄마로서의 삶은 우리 모두의 가능한 미래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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