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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Nov 04. 2023

우울이 산후를 만나면

아픈 엄마가 아닌 건강한 엄마로 살아가기


좋은 엄마란, 완벽한 엄마가 아닙니다.

그러나 자책하는 엄마도, 포기하는 엄마도 아닙니다.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임신과 출산을 넘어 육아라는 ‘대서사’를 겪고 있는 나는 깊은 산후우울증을 앓았다. 수많은 굴곡을 지났고, 이제 내 우울은 증세라기보다 가끔 찾아오는 기분이 되었다. 묻어두며 울지 않고 꺼내어 말하고 쓸 수 있게 되었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씩 다행히 우울은 줄어들고 있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는 경험만큼 좋은 것도 없어서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이제야 이 세계를 겨우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길을 가다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 중에 배가 볼록한 임신부와 유모차를 끌고 가는 엄마, 아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누군가의 모습이 더 눈에 들어온다. 내가 겪은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과 겪어야 할 시간을 먼저 살아본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존경이 생겼다. 그래서 보탬이 되고 싶고 도움을 받고 싶기도 하다. 이 글은 임신해 출산을 앞두고 있거나 출산해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쓰는 활자로 된 마음이다.          





내가 겪은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과 겪어야 할 시간을 먼저 살아본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존경이 생겼다.








2021년에 발표된 한 신문사 설문조사에 따르면 출산 후 산후우울증을 포함한 우울감을 경험한 여성은 75.1%로 나타났다. 2020년 기준 국회보건복지위원회의 자료에도 보면 보건소에서 산후우울증 고위험군으로 판정받은 산모는 8,291명으로 2년 전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출산한 여성 10명 중 2명은 산후우울‘증’을 앓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수치는 실제를 다 담아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정도와 기간의 차이일 뿐 대부분의 여성은 아이를 낳고 우울감을 느낀다. 내 주변 모든 이들도 그랬다. 그런데 아직도 여전히 산후우울증을 제대로 치료받은 산모는 드물고 ‘우울하다’ 이야기하는 것조차 꺼려진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이성복 시인의 시구처럼 모두 우울을 품고 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게 여전한 현실이다.


그냥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너무도 흔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자신마저도 부정하고 싶은 증상. 아마도 유별, 예민, 이상(異常)이라는 인식이 우울이란 단어 앞에 여전히 따라붙어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모두 우울을 품고 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게 여전한 현실이다





우선 산모는 일종의 환자라고 생각한다. 자연분만이건 제왕절개건 처음 여성의 몸에 수정란이 착상해 배아에서 태아로 열 달의 발달과정을 거쳐 배 밖으로 나오기까지 엄청난 신체 변화와 증상, 고통을 거친다. 출산 후 호르몬 변화와 함께 인대와 관절은 다 늘어나 있고 회음부 손상 혹은 개복으로 인한 통증 등으로 일상생활을 하는데도 어려움이 많다. 똑바로 걷거나 앉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될 줄은 나도 몰랐다.     


그런 상태에서 신생아 돌봄이라는 일생일대의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나 또한 갓난아이를 안고 집에 처음 왔을 때 느꼈던 감정은 행복과 환희가 아니라 허둥지둥과 우왕좌왕이었다. 이 작고 여린 생명체 앞에서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당황스럽고 걱정돼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내 목숨을 걸고 새 목숨을 만난 엄마는 출산으로 지친 몸으로 힘이 하나도 없는데 갓 태어난 생명 앞에 가장 힘을 내야 하는 시기를 맞이한다. 2, 3시간 간격으로 먹이고 끊임없이 우는 아이를 안고 달래고 보살피느라 엄마는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고 쉬지 못한다. 눈을 뗄 수 없고 곁을 떠날 수 없는 아이 앞에서는 제대로 볼일을 보는 일도 어렵고 밥 한 끼를 챙겨 먹는 것과 현관문을 열고 밖에 나가는 것도 어렵다. 집이 감옥 같이 느껴진다. 먹고, 자고, 싸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조차 충족이 잘 안 되는 하루하루가 반복된다.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느라 엄마는 먹지 못하고 씻지 못하고 자지 못한다. 집에서 가장 더러운 건 내 몰골 같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내 커리어를 위해 일하고 돈 벌고 사회 속에서 관계 맺고 인정받고 활동했던 한 여성은 한순간 이 모든 움직임과 교류가 끊어져 버린다. 세상과 단절된 느낌을 받는다. 무엇보다 지금의 이 상태가 계속될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인다. 다시 일할 수 있을까? 다시 예전으로 몸도 마음도 회복할 수 있을까? 아이를 낳고 잘 살아가야 하는데, 잘 살 수 있을까 의심하게 된다. 아프고 힘이 들고 막막해서다.     





다시 일할 수 있을까?
다시 예전으로 몸도 마음도 회복할 수 있을까?
아이를 낳고 잘 살아가야 하는데,
잘 살 수 있을까?






신생아를 키우는 시간은 마치 출구 없는 원을 무한히 도는 것 같았다. 아이를 안고 세상과 고립된 느낌. 그 원을 따라 우울이라는 테두리가 쳐진다. 우울이 산후를 만나면 갓 태어난 생명이 기쁨이 아닌 절망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산후우울 앞에 엄마는 이 우울을 드러내거나 치료하기보다 감추고 그냥 견딘다는 것이다. 다들 잘 키우는데 나만 유별난 것 같아서, 모두 새 생명 앞에 웃고 행복해하고 축하해 주는데 그 앞에서 슬픔과 고통과 우울을 얘기하는 게 어려워서, 당연히 이렇게 버텨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도 내 우울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꺼내기까지 천장과 벽을 보며 울고 삶보다 죽음을 더 많이 생각했던 수많은 낮과 밤이 있었다.  

 






  

신생아를 키우는 모든 가정의 상황과 환경은 다 다르다. 독박육아를 원해서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 번씩 조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어도 손자 손녀를 키워줄 의무가 있는 건 아니고 멀리 살거나 각자의 사정에 의해 도움받지 못할 수 있다. 산후도우미는 비용이 들고 영원히 쓸 수 없다. 또 내가 아이를 낳을 때 내 친구와 지인도 함께 다 같이 아이를 낳지 않는다. 다 같은 시기에 결혼하지 않는 것처럼. 시대는 달라졌고 편리해진 것도 어려워진 것도 동시에 늘어났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신생아 육아’는 살아오면서 제일 아프고 지친 상태에서 제일 난이도 높은 일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렵고 기운 빠지고 포기하고 싶기도 하고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사람의 상태에 따라 그 정도가 더 깊어질 수 있다. 그러면 도움받고 치료받아야 하는 것이다. 나아질 방법을 남편과 가족 혹은 맘 터놓을 수 있는 누군가 그리고 전문의와 함께 찾아야 한다.     


산후우울증과 관련해서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말했다. ‘우리가 우울증 상태에서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이기 때문에 아이를 사랑할 수도, 아이와 교감할 수도 없게 되어 버린다’고. 그러니 나는 아이를 갓 낳은 산모에게 찾아오는 우울감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우울증으로 번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편도 가족도 그리고 본인 자신도 그 힘겨움을 인식하고 알아채고 이해하며 나아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어떤 상태인지 서로 묻고 답하고, 육아를 분담할 수 있는 실질적인 수단을 마련하고, 필요하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상담과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시대는 달라졌고 편리해진 것도 어려워진 것도 동시에 늘어났다.      


   



지금도 어느 집 안에서는 아이를 안고 울고 있을, 흐르는 시간과 무관하게 홀로 우울을 안고 멈춰 있을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내가 지나온 우울의 시간을 뒤돌아본다. 울기만 하는 건 우울의 가장 대책 없는 대책이었다. 아이는 선명하게 축복이고, 기쁨이고, 사랑이지만 그 과정에는 더 뚜렷한 고통과 통증과 눈물이 있었다. 본인도 주변인도 그 괴로움을 유별나다, 예민하다, 이상하다 여기지 않아야 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산후우울증에 걸렸다고 해도 그것은 여러분이 엄마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도 말했다.     


우리는 모두 아픈 엄마가 아닌 건강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 엄마도 아이도 새롭게 주어진 생을 함께 잘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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