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다음 단계가 온다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건너가듯,
자기에게서 또 다른 자기로 건너가려는 사람이 있다.
-《모월모일》, 박연준
“사람들이 우울증은 마음을 굳게 먹고 다스리라고 하죠? 마음 다스리는 거 없어요. 정신과 의사 30년 해보니 너무 잘 알아요. 의지와 마음을 다스리는 게 아니라 의사의 처방을 받아 약으로 치료해야 하는 거예요. 우울은 치료가 완전히 가능한 병이에요.”
오랜 경험을 지닌 누군가의 확신에 찬 말은 나를 살게 하고 치료 옆에 붙은 ‘완전히’라는 부사는 희망 그 자체였다. 나는 동네 정신과에 방문해 의사에게 이 말을 들었던 이날부터 ‘우울은 치료가 완전히 가능한 병’이라는 말을 마음속에 적어 부적처럼 지니고 다녔다. 매일 아침 9시 알람을 맞춰놓고 6개월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항우울제를 챙겨 먹었다. 기필코 우울에서 최대한 멀어지려는 진짜 노력을 했다. 대부분 약은 처방전이 있으면 먹을 수 있었지만 항우울제는 다짐이 있어야 삼킬 수 있었다.
손을 베면 바로 지혈을 한 후 연고를 바르고 단단히 밴드도 붙였다. 배가 더부룩할 때면 매실차부터 소화제까지 챙겨 먹었고 머리가 아프면 두통약을, 감기 기운이 느껴질 땐 쌍화탕부터 종합감기약까지 얼른 마시고 삼켰다. 집 근처 병원과 눈앞에 보이는 약국에 서둘러 들어갔다. 그런데 왜 항우울제는 2년 넘게 지독하게도 아팠으면서 먹어야겠다고 마음먹기와 목구멍으로 넘기기가 그렇게도 힘들었을까? 다른 약은 빨리 다 먹고 얼른 낫고 싶었으면서 이 약은 최대한 안 먹고 낫고 싶어 했을까? 다른 약은 용법과 용량을 지켜 식후 30분 착실하게 복용했으면서 이 약은 먹으려다가도 안 먹고 몇 번 먹다가도 말고 태만하게 무시했을까?
아마도 항우울제는 마치 먹으면 안 되는 약처럼 여겼던 것 같다. 이 약을 먹으면 내가 정말로 우울증 환자가 된 것 같아서. 인간인 나는 몹시 아프고 우울할 수 있어도 엄마가 된 나는 우울증이면 안 될 것 같아서. 무엇보다 사람의 감정이 어찌 새끼손톱의 절반보다도 작은 알약 하나로 조절이 될까 싶었다. 그러면서도 그 작디작은 약 하나가 내 몸속에 퍼져 큰 영향을 미칠까 봐 두려웠다. 약 앞에 너무 복잡하고 예민했다. 그만큼 우울은 길게 이어졌다.
우울의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가장 먼저 나는 약부터 먹을 것이다. 의사의 말처럼 의지와 마음이 아닌 처방과 꾸준한 복용으로 해결할 것이다. 약 먹고 울고 약 먹고 자고 약 먹고 우울해할 것이다. 항우울제를 안 먹어도 보고 부단히 먹어도 보니 잘 알겠다. 성실한 모든 행위는 품이 들지만 확실한 결과를 반드시 보여준다.
하지만 나도 예외 없이 실패와 부작용이 있었다. 나에게 맞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맞는 약을 찾기까지 세 군데의 상담센터를 거쳤고 네 명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만났다. 24시간을 꼬박 잠들어 있었던 약의 부작용과 오랜 무기력증, 우울증의 재발을 겪었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매일 우울이 쏟아져 ‘반드시 흘러야 하는 강물처럼’* 울었던 나는 우울할 때 제일 필요했던 건 바로 확신이었다.
이 우울이 끝나리라는 확신. 내가 이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나는 그 확신과 믿음이 내가 마음먹어야 하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적어도 우울한 사람에게 그런 마음은 가장 먹기가 어려운 일이므로 타인이 마음먹게 반드시 도와줘야 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내가 경험하고 생각하는 좋은 의사란 설명을 자세히 해주는 의사다. 약의 작용과 부작용 그리고 정확한 용법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항생제, 진통제, 소염제 이런 것들은 익숙하지만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정신신경용제, 신경안정제와 같은 것들은 낯설고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이 기준에 따라 운이 나쁘게도 좋은 의사를 처음에 만나지 못했고 운이 좋게도 좋은 의사를 네 번 만에 만났다.
세 곳의 상담센터와 정신건강의학과를 거치고도 우울이 재발했을 때 나는 많이 소진되어 있었다. 내 우울은 눈물로 시작해 암울로 번졌고 분노로 폭발했다. 내가 무서웠던 건 눈물과 암울은 혼자 파고드는 증상이었다면 분노는 자꾸만 대상 없는 무언가에 화를 내는 일이었다. 적어도 감정은 내가 제어하는 건 줄 알았는데 내 감정을 내가 통제할 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거의 모든 물건을 신경질적으로 집어 던졌다. 집에 들어오면 신발을, 설거지하다 그릇을, 빨래를 개다 수건을, 양치하다 칫솔을. 반응하는 사람에게 낼 수 없으니 던진 자리에 가만히 있을 사물에 화를 내곤 했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또 화나고 실망스러웠다. 아픈 몸과 쏟아지는 집안일, 감당할 수 없는 생각과 감정에 치여 거푸거푸 성이 났다. 분노는 뭐든 잡는 게 아니라 헤집어놓는 거였다. 물건에서 나 자신까지. 그러다 내 몸뚱아리도 건물 아래로 내던질까 두려웠다. 귀찮고 막막하고 부정적이었지만 다시 정신과에 가야 했다.
그때의 내가 선택한 병원의 기준은 집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이었다. 그전처럼 온갖 검색과 주변인의 추천, 멀고 오래 기다려야 하는 수고를 감당하기엔 에너지도 인내도 없었다. 전화해 바로 갈 수 있는 정신건강의학과여야 했다. 나는 슬리퍼를 신고 걸어서 집 앞 상가단지에 있는 정신과에 갔다. 그 가깝고 손쉬운 병원에서 감사하게도 비로소 약과 우울에 대해 많은 것을 차근차근 이야기해주는 선생님을 만났다.첫 만남에는 자기소개가 있듯, 첫 진료에는 자기증상소개가 있다. 나는 내 증상을 이렇게 소개했다.
“너무 예민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쉬워요.
분노와 슬픔이 전혀 조절이 안 되고 한 번씩
무기력이 심하게 찾아옵니다.”
내 말을 들은 의사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우울은 우울과 불안으로 구분 지을 수 있는데, 불안은 공포입니다. 무섭고 두렵고 숨도 못 쉬겠고. 공황장애 알죠? 그런 증상이 옵니다. 죽을까 봐 겁나는 거죠. 불안 안에 예민도 포함되고요. 우울은 간단해요. 결국 죽고 싶은 것입니다. 진짜 심각한 우울증인 사람은 본인 스스로가 이성적으로 천천히 차근차근 준비하고 그냥 죽어요. 아주 아주 무서운 것이죠.”
우울해서 온 사람에게 우울에 대해 먼저 설명해주다니. 어쩌면 우울한 내가 우선 알아야 할 건 ‘무엇이 우울인가’였을지도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에 대해 먼저 알려준 의사는 다음으로 내 상황을 물었다. 가장 힘든 게 무엇인지와 무엇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지. 우울한 사람에게 필요하고 정확한 두 가지의 질문이었다. 그러고는 또 설명해주었다.
“인간은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가요. 사람마다 성격과 기질이 달라서 그 스트레스에 더 취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들이 그렇죠. 그 사람들은 그만의 장점이 있지만 스트레스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부분을 약으로 도움받으면 돼요. 약은 그러라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이 약을 조금 먹다 말아버립니다. 우울증약 먹기 싫으니까요. 항우울제는 최소 2주부터 몸에 반응을 시작하고 적어도 2달이 지나야 제대로 된 효과가 나와요. 그 후에도 양을 줄여 재발을 방지할 수 있도록 꾸준히 약을 복용해야 합니다.”
그다음으로는 내가 먹어야 할 약에 대해서 자세히 안내해주기 시작했다.
“총 4알의 약을 쓸 건데요. 가장 유명하고 안전한 항우울제와 통증을 완화해주는 효과가 있는 항우울제, 지금 화도 많고 예민하니까 신경안정제를 좀 쓰고 또 속 쓰리면 안 되니까 위장 보호해주는 약까지 이렇게 처방해 드릴 겁니다. 폭세틴이라는 캡슐은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세로토닌을 증가시켜 우울에 도움이 되는 약이에요. 근데 특히 여성분들은 항우울제 먹으면 부작용으로 살찌는 거 걱정하거든요? 이건 살도 안 쪄요. 그래서 미국에선 행복을 주는 약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약이 나온 지 30년 넘었으니 안정성도 증명됐어요. 그리고 듀로셉톨이라는 약은 만성 통증을 줄여주는 항우울제예요. 아이 낳고 온몸에 관절통이 왔다고 했죠? 사람이 통증이 오래가면 우울하게 돼 있어요. 진통제는 아니지만 통증 완화효과가 있는 우울증약이니 도움이 될 겁니다. 클로나제팜정은 진짜 소량 쓸 건데요. 신경안정제인데 졸릴 수 있어요. 제가 처방해 드리는 약은 다 내성도 중독성도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드세요. 다만 안전한 약인 대신 속도가 느립니다. 먹자마자 뿅 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건 히로뽕밖에 없어요. 속도가 느리니까 처음엔 약이 안 듣는다고 생각해요. 조금 느린 거예요. 최소 2주는 지나야 합니다. 며칠 먹고 효과 없다? 아직 작동도 안 한 거예요. 다만 안정제는 먹고 거의 바로 효과가 있을 겁니다. 졸릴 수 있으니 몸 상태를 잘 살펴보시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고 하면 소량이니 빼면 됩니다.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건 부처밖에 없어요. 항우울제는 마음 수양 10년 치 효과 있는 약이에요. 영혼의 비타민 같은 약이라고 생각하고 드세요.”
내가 이 긴 설명을 다 기억하고 있는 건 의사가 모든 걸 너무나도 천천히 하나하나 쉽게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표현과 비유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나도 항우울제 앞에 망설이고 있을 누군가에게 꼭 전해주려고 정신과를 나와 기억이 사라지기 전 얼른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었다.
어쩌면 우울한 내가 우선 알아야 할 건 ‘무엇이 우울인가’였을지도 몰랐다
‘행복을 주는 약’, ‘먹자마자 뿅 하고 좋아지는 건 히로뽕’, ‘안전한 대신 속도가 느린 약’, ‘영혼의 비타민’. 이런 말들은 내 기억 속에 남아 매일 약을 먹을 때마다 떠올랐다. 한 알 한 알 기쁘게 삼켰다. ‘그래. 천천히 하루하루 먹다 보면 행복해질 거야’ 스스로 다독였다. 때때로 진료 마지막에는 경험치 많은 어른의 말과 사담을 섞은 가볍지만 묵직한 말들도 이어졌다.
“살아보니 인생을 살면 다음 단계가 와요. 아이는 클 거고 남편도 더 안정될 거고 본인 일도 더 인정받게 될 거예요. 이미 아이 30개월 키웠잖아요. 잘 버티세요!”
정신과 의사가 햇볕 쬐고 운동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해주는 게 아니라 잘 버티라고 해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내가 아직 겪어보지 못한 생의 궤도를 살아본 어른이 다음 단계가 온다고 확신해주니 이보다 더 든든할 수 없었다.
잘 버티세요!
잘 서술해주는 게 진짜 기술임을 이 의사를 통해 배웠다. 특별한 영역의 무언가를 안다는 건 남보다 높아지는 게 아니라 낮아져야 하는 일이라고. 모르고 낯선 사람에게 잘 알려주라고 분야마다 직업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나도 우울한 누군가를 위해 잘 서술해 써야 하는 것이 내 기술이 될 것임을 알게 됐다.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극심한 아픔이 왔을까 괴롭다가도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말과 글이 업인 나에게 이런 고통이 온 건 어쩌면 잘 기록하라고 온 하나의 임무일지도 모른다. 내 경험을 최대치로 복기하고 정리하자. 그렇게 생각하면 원인을 알 수 없는 만성 통증도 조금은 정당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합리화할 수 있었다.
이제 우울은 나를 망쳐놓지 않는다. 우울과도 잘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우울이 매일이 아니라 가끔이 되었을 때, 우울‘증’이 아니라 우울한 기분이 될 때 그건 치료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울을 병이 아니라 하나의 무드로 만들기. 4개의 계절이 있고 7개의 요일이 있고 12개의 달이 있듯, 기쁨 슬픔 짜증 화남 그리고 우울. 여러 개의 감정 중에 하나로 여길 수 있다면 괜찮다. 매몰되지 않는 정서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과거로 인해 죽거나 예술가가 된다.’
- 데버라 리비
과거에서 살아남은 나는 지난 일들을 최대한 정확하게 써 내려가며 예술가가 되어보려 한다.
진료의 마지막 감사 인사를 드렸다.
“잘 설명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말했다.
“당연하죠. 의사니까요!”
내 낡은 우울증은 설명을 잘해주는 좋은 의사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난 후 회복을 포기하지 않는 착실한 환자가 되어 성실하게 약을 먹고 치유되었다. 정말 우울은 치료가 가능한 병이었다. 이제 삶의 다음 단계가 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