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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Sep 29. 2023

아빠의 밥벌이와 엄마의 밥 하기

외롭고 지겹지 않은 엄마와 아빠를 위해




      

의미가 있고 자유가 있고 평등이 있을 것

- ‘부처夫妻간의 문답’ <나혜석>






깜깜한 밤 우리네 아버지들은 돈벌이의 고됨을 소주 한잔으로 풀고 통닭 한 마리를 포장해 집에 들어와 현관문에서 외치곤 했다.


“얘들아! 나와서 통닭 먹어라!”


온종일 집안일과 돌봄에 지친 어머니가 이제 막 아이들을 재운 후 겨우 고요해진 집 안의 적막은 그렇게 깨졌다. 어머니는 부랴부랴 아버지를 말려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기어코 아이들이 방문을 열고 나와 눈도 못 뜬 채 닭고기 한 점을 억지로 씹고 다시 들어가야 이 소란은 끝이 났다. 종일 집에서 아이들과 부대낀 엄마는 자식들이 얼른 자길 바랐고, 종일 밖에서 고된 노동에 지친 아빠는 자식들이 보고 싶었을 뿐이다.      








아들과 딸을 위해 아빠는 돈‘만’ 벌고 엄마는 집안일과 육아‘만’ 했던 시절이었다. 여유가 없고 가난했던 시절 책장에 금 긋듯 남편과 아내,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갈려 서로의 고단도 이해받지 못하고 그저 각자의 몫으로만 남았던 날들. 그러니 남편은 아내에게 ‘집구석에 있으면서 힘들긴 뭐가 힘드냐고’ 아내는 남편에게 ‘내가 돈만 벌었으면 벌써 이혼했다고’ 집집마다 부부싸움 소리가 넘쳐나던 때였다.    

  

문제는 그것이었다. 경제적 책무만이 가장의 역할이라 믿었던 아빠는 아이들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보지 못했다. 돈을 버느라 아내, 자식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과 나누는 대화는 너무 적었다. 차려진 밥상과 치워진 집 안, 자라난 아이들을 봤을 뿐, 집안일의 메커니즘과 살림살이의 형세와 아들과 딸의 속마음은 알 수 없었다. 아이들은 아빠가 낯설었고 멀기만 했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삶이 외로웠다.   

  

가사와 육아를 혼자 한가득 떠안아야 했던 엄마는 집안일이 지긋지긋했다. 자식의 성장을 보는 일은 보람이었지만 집안일은 끊임없이 해도 집 안에 한정되어 있다는 이유로 티 나지 않았고 보상과 인정도 없었다.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꿈도 접고 오로지 엄마로 아내로. 한 존재가 지워지고 자식들이 자랐다. 돈을 벌지 못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아끼고 주눅 들어야 했다. 어머니는 식구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희생했지만, 삶이 지겨웠다.



     

한 존재가 지워지고 자식들이 자랐다





외로운 삶도 지겨운 삶도 누구도 바라는 게 아니었을 것이다. 과거의 환경이, 가난이 시절이, 갈라진 남녀의 역할이 발전과 진보와 평등을 더디게 했을 것이다. 이제 시대는 변했고 남편과 아내, 아빠와 엄마, 남자와 여자 사이에 그어져 있던 금은 조금씩 지워지고 있다. 가정 안에서 일만 했던 아버지 아래 자란 아들은 정서적 유대를 원했고, 집안일만 했던 어머니 아래 자란 딸은 집 밖 일을 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필요하지만 부족했던 성장 조건이었다. 경제성장, 환경의 변화와 함께 우리는 돈만 버는 남편과 아빠, 육아만 하는 아내와 엄마가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라테파파’가 생겨났고 ‘워킹맘’이 늘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정책은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행동은 인식을 따라잡지 못해 여전히 외롭고 지겨운 사람들이 많다. 아이가 태어나도 일을 쉴 수 없어 신생아 목욕 한 번 해보지 못한 아빠와 육아휴직이 경력단절로 이어지는 엄마는 지금의 현실이다. 늘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남성육아휴직은 용기와 눈치, 강력한 제도가 필요한 일이고, 출산 후 복직은 돌봄을 대체해 줄 누군가와 일자리의 보장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 영역에 대한 서로의 이해와 인식은 좁다. 대책만 요구되고, 개혁은 없다. 돈 버는 아버지와 아이 키우는 어머니가 당연했듯, 육아하는 아빠와 일하는 엄마도 당연해야 하고 수월해야 한다. 개인과 부부만이 고군분투하는 게 아니라 국가적 지원과 책임이 따르는 체계 안에서 일과 소득이 보장되어야 한다.      




외로운 삶도 지겨운 삶도 누구도 바라는 게 아니었을 것이다.




중요한 건 그 누구에게도 쏠려 있지 않고 강요되지 않는 밥벌이와 밥 하기다. 과거에 구분 지어졌던 가정 안의 성 역할과 책임의 경계는 이제 지워져야 한다. 같이 고민하고 함께 키우고 모두 도와야 한다.


밥 벌어먹고사는 것도, 밥하고 먹고 치우는 것도 다 같이 힘들고 고된 일이다. 아빠가 기저귀 갈고 목욕시키고 이유식 만들 수 있게, 엄마가 일하고 돈 벌고 승진할 수 있게, 서로의 집안일과 집 밖 일을 이해하고 응원할 수 있게, 그렇게 부모가 되어갈 수 있게, 그래서 모두의 삶이 행복할 수 있게, 이제는 인식도 제도도 진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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