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적으로 구속받았던 모성에 대하여
누가 우리에게 모성애를 가르쳤을까.
《다가오는 말들》, 은유
아이가 태어난 후 30일 정도 되었을 때 젖몸살에 시달리다 잠깐 새벽에 겨우 쪽잠을 자던 나는 이런 꿈을 꾼 적이 있다. 침대에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두 뺨을 때리는 꿈이었다. 한 번이었지만 내가 어찌나 두 팔에 힘을 주고 내리쳤는지 꿈에서 깨자마자 너무 놀라 바로 아이에게 가보았다. 아이는 엄마의 꿈은 전혀 모른 채로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나는 오히려 내 뺨에 손바닥을 대보며 내가 도대체 무슨 꿈을 꾼 건지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꿈에서 저지른 죄는 벌이 필요 없고, 사람은 누구나 어떤 일이든 무엇이든 꿈속에서는 다 범할 수 있으면서도 이 이야기를 3년이 흘러서야 조심스럽게 적어본다.
원래도 잠귀가 밝고 혼자 자는 걸 편해했던 나는 심지어 내 아이일지라도 같이 자는 게 불편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뒤척이거나 소리를 내면 매번 눈이 떠져 안 그래도 부족한 잠인데 그마저도 이루지 못했다. 아이를 재워놓고 조심히 까치발로 나와 다른 방에 이불을 펴고 혼자 잤다. 아이 옆엔 아빠가 있으니 그걸로 됐다. 가끔 아이가 새벽에 잠에서 깨 소리를 내면 바로 옆에 있는 아빠보다 다른 공간에 있는 내가 더 빨리 가 아이를 토닥일 때도 많았다.
누군가는 어떻게 엄마가 그런 꿈을 꿀 수 있냐고 꾸짖을까. 오죽하면 내가 그런 꿈을 꿨겠냐며 동조해 줄까. 누군가는 어떻게 엄마가 자기 아이를 불편해하냐 물을까. 엄마도 그렇게라도 자야지 하며 편들어 줄까.
신생아를 키우는 엄마는 왜인지 의식과 무의식을 막론하고 돌봄을 하며 사랑과 행복의 반대가 되는 것들은 품어서도 표현해서도 안 될 것만 같다. 우리는 엄마가 가지는 정신과 육체의 본능적인 성질인 ‘모성’이라는 것에 대해 신성하고 위대하고 무엇보다 당연한 거라고 직접적으로 강요받지는 않았어도 우회적으로 구속받기는 했다. 겪어본바 임신 열 달 동안 부풀어 오르는 배만큼이나 커지는 건 모성이 아닌 불안이었다. 사랑은 그다음이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작가, 시인,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였던 나혜석은 1922년 4월 29일 딸아이의 돌에 ‘모母 된 감상기’를 쓴다.
세인들은 항용(늘), 모친의 사랑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모 된 자 마음속에 구비하여 있는 것같이 말하나 나는 도무지 그렇게 생각이 들지 않는다. 혹 있다 하면 2차부터 모 될 때에야 있을 수 있다. 즉 경험과 시간을 경하여야만 있는 듯싶다.
(…)
그러므로 ‘솟는 정’이라는 것은 순결성 즉 자연성이 아니요, 단련성이라 할 수 있다.
빽빽 우는 울음소리만 좀 안 들었으면 고적한 맛을 더 좀 볼 듯싶으며, 이 방해물이 없으면 침착한 작품도 낼 수 있을 듯싶고, 자식으로 인한 피곤 불건강이 아니면 아직도 많은 정력이 있을 터인데, 오직 이것으로 인하여. 이렇게 절대의 필요의 반비례로 절대의 불필요가 앞서 나온다. 통성이 아니라 독단으로. 그럴 동안 나는 자식의 필요로 조그마한 안심을 얻었다.
모성이 ‘단련성’이라는 말, 아이가 있으면서도 아이가 없었으면... 하고 생각해 보는 말, 수유를 하면서도 ‘살은 분명히 내 몸에 붙은 살인데 절대의 소유자는 저 쪼끄만 핏덩이로구나!’라며 ‘엄마’라는 존재와 역할에 대해 조금도 윤색하지 않은 문장들로 가득한 감상기가 1923년 1월에 한 시사주간지에 게재됐다. 그렇게 그는 최초로 진짜 여성의 관점에서 직접 겪은 솔직한 감정의 임신과 출산기를 발표하고 엄청난 세상의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나혜석은 알까. 한 세기가 지난 후 2023년 어린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현대의 한 사람이 자신의 글을 읽고 우주만큼의 공감과 용기를 얻었다는 것을. 공부하고 싶고, 그림 그리고 싶고, 자유롭고 싶고, 여자이기 전에 먼저 사람으로 존중받고 싶어 하던 그 마음과 똑같은 생각을 품고 있는 100년 후의 엄마가 밤마다 아이를 재우고 자신의 글을 읽고 또 읽으며 힘을 냈다는 것을 알까.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엄마와 모성 앞에 붙어 있는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까. 열혈 독자가 있음에 기뻐할까 진보하지 않은 현실에 안타까워할까.
아. 이런 선배가 언니가 엄마가 지금도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했다. 이런 말들은 적어도 앞으로도 한 세기 동안은 계속 읽히고 쓰여야 한다고 느꼈다. 엄마가 된 후 나는 매번 아이와 엄마의 관점을 바꾼 말들이 귀했다. 육아를 하며 모성애를 재정의하는 말이 필요했고, 엄마로 여과되지 않은 진짜 사는 이야기가, 속마음이, 탄식의 숨소리가 언제나 궁했다. 그런 말들이 위로였고 안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는 언니가 출산 후 아이가 30일쯤 되었을 때 보건소에서 간호사 선생님이 방문해 도움을 주셨다고 한다. 아이 상태를 살펴보겠다고 하시면서 엄마에게 태블릿 PC를 줬고, 그 안에 영상을 보고 있으라고 했다. 그 영상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아이가 울면 아이를 방에 두고 나와도 됩니다.’
‘아이가 다 울 때까지 신경 쓰지 마세요.’
‘육아하다 아이를 집어던지고 싶은 마음? 정상입니다
어린아이가 울면 전전긍긍하며 바로 안아주고 아이가 괜찮아질 때까지 달래주었던, 그것이 모성애고 엄마의 역할이라 생각했던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이 영상을 보여주어야 한다. 육아할 땐 무조건 아이를 1순위로 두고 엄마가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감내해야 한다고 말하는 모성애는 필요 없다. 엄마는 신도 슈퍼우먼도 아니니까. 넘치는 모성애로 모든 걸 기다려주고 감싸 안아주는 육아? 불가능하다. 영상처럼 때로는 아이가 아닌 엄마의 상태가 괜찮아질 때까지 아이와 거리 두기를 하는 게 더 괜찮다고 알려주는 것이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육아법이다. 그동안 모성애의 순서는 잘못됐다. 엄마를 돌본 후 아이를 돌봐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혜석은 ‘내가 어린애 기른 경험’의 글에서 말했다.
아이가 울면 울음소리에 따라 아파서 우는 것 같지 않을 때는 제가 울기 싫어서 고만둘 때까지 가만 내버려 두었습니다. 어른이 밥만 먹고 운동을 아니하면 병이 나는 것과 같이 어린애도 먹기만 하고 가만히 드러누웠으면 병이 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애가 손을 떨고 발버둥을 하여 우는 것은 자연이 시키는 운동법인 줄 압니다.
제가 넘어지거든 꼭 제가 일어나도록 하여야 합니다. 젖을 늦도록 먹이는 것이 좋다고 하지마는 내 경험상으로 보면 모체가 휘질(시달려 기운이 빠질)뿐이요, 어린애도 주접만 질 따름이외다.
정결한 것과 질서 있는 것을 가르칩니다. 또 가르치는 대로 되는 것이 재미스럽습니다. 나는 이상과 같이 냉정한 태도를 자연에 맡기어 아이를 길러 갑니다.
엄마로 조바심이 날 때마다, 엄마로 지쳐 한숨이 날 때마다, 엄마로 자꾸만 스스로를 자책할 때마다, ‘엄마는 이래야 한다’는 내용의 너르고 널린 서점의 육아서가 나를 압박할 때마다 나는 나혜석의 글을 읽는다. 그의 표현처럼 엄마로서 삶의 ‘의미와 자유와 평등’이 있기를 바란다.
‘사람은 개인적으로 사는 동시에 사회적으로 사는 것이 사는 맛이 있으니까. 좋은 창작을 발표하여 사회적으로 한 사람이 된다면 더 기쁜 것이 없는 것이야.’
아이를 키우며 맛있고 기쁘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