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도 날 소모하지 않고 내가 나를 보관할 수 있도록
쉬고 싶은 몸은 사이렌처럼 운다.
〈우울한 육체의 시〉, 신현림
아이가 커 갈수록 집 안에서 가장 필요한 건 ‘공간’이었다. 점점 많아지는 육아용품과 장난감, 살림살이들을 정리하고 숨겨놓을 커다란 창고가 절실했다. 하지만 세간이 늘어난다고 공간이 늘어나지는 않는 법. 그러니 둘이 살 때는 단 한 번도 좁다 생각해 본 적 없는 20평 남짓 집 안이 내 숨을 옥죄어 오는 것처럼 답답해졌다. 아이는 늘어나는 개월 수마다 끊임없이 무언가 필요해지고, 부모는 자라나는 아이에게 계속해서 무언가 해주고 싶고. 그 요구와 욕구 사이 집 안의 여백과 마음의 공백과 삶의 여유는 점점 사라졌다. 육아는 ‘템빨’이니 자꾸만 사고 싶은 마음과 그 ‘템’들은 자리를 차지하니 뭐라도 버리고 싶은 마음은 자주 충돌했다.
부재가 존재를 증명한다고 했던 것처럼 어질러져 봐야 그곳에 공간이 있는 줄 알게 된다. 아침에 등원 전쟁을 치르고 난 후와 저녁에 아이가 잠들고 난 후 거실엔 내 몸 하나 누울 공간조차 없었다. 아이 옷과 장난감, 책과 물티슈, 기저귀와 수건, 밥풀과 반찬이 한데 뒤섞여 바닥은 더럽고 어지럽고 보이지 않았다. 다 치우고 난 뒤에야 ‘아 여기가 거실이었지’ 생각하며 그 위에 지쳐 널브러질 수 있었다. 집 평수가 더 넓지 않은 것을 탓하고 싶진 않다. 대궐 같은 집은 아니어도 아이가 없을 땐 남편과 함께 대자로 누울 수도, 큰 상을 펴고 밥을 먹을 수도, 요가 매트를 깔고 스트레칭을 할 수도 있었던 거실이었다.
그 요구와 욕구 사이 집 안의 여백과 마음의 공백과 삶의 여유는 점점 사라졌다.
그 바닥을 확보하려고 부단히도 치우고 쓸고 닦았다. 집 안은 어린아이를 위해 깨끗해야 할 시기였지만, 아이는 뭐든 쏟고 더럽히고 부러뜨리고 다녔기에 끊임없이 어질러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아이를 쫓아다니며 치웠고 눈 뜨면 쓸었고 잠들기 직전까지 닦았다. 샤워하며 화장실 청소를 동시에 하고 설거지와 빨래를 무한히 반복했으며 청소기를 밀고 걸레를 빠는 일은 일상이었다.
‘1인분’이 늘어났다고 집안일이 이렇게나 불어날 수가 있나. 아이가 생긴 후 삶은 매번 분주하고 정신없고 지쳤다. 아이가 없었을 때 일이 많아 바빴던 날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생이 이렇게나 어지러운데 집까지 마구 어질러져 있으면 화가 났다. 내가 번번이 목도하는 이 집 안 꼴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홈 스위트 홈’은 옛말. 집은 또 다른 일터였다. 아이를 키우면서 당연히 집 안은 더러워질 수밖에 없는데 더러운 걸 못 견뎠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청소에 아주 예민해졌다. 내가 원래 이렇게 깔끔한 성격이었나. 청소하고 청소하고 청소해도 또 청소를 해야 했다.
거실을 둘러보면 바닥에 널브러진 머리카락과 먼지가 보이고 주방에 가면 여기저기 말라붙어 있는 음식물 자국이 눈에 들어오고 화장실에 들어가면 더러운 변기와 물때가 보였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마음은 바쁘고 몸은 지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안 할 수 없었다. 나는 안 씻고 더러운 곳에 있어도 상관없지만 아이는 잘 씻기고 깨끗한 곳에서 자라게 해야 했다. 가지런히 살고 싶었고 말끔하게 키우고 싶었다.
회사 출근을 오후에 하는데 오전 내내 안방과 거실 주방과 화장실을 오가며 치우고 만들고 씻고 닦는 걸 반복했다. 내 일을 하러 가기 전 집안일에 탈진했다. 넘쳐나는 집안일을 하느라 내 일이 밀려나니 억울하고 짜증 났다. 그게 또 못마땅했다. 점점 집안일을 하다가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날들이 늘었다. 살림에 치어 사는 게 기운 빠졌다. 사실 집안일은 내 일보다 중요한 게 아닌데. 집안일은 미룰 수도 있고 남편에게 부탁할 수도 있고 덜 할 수도 있지만 내 일은 그렇지 않은데. 나는 왜 자꾸만 집안일에 먼저 쓰러지는가. 으아앙! 쉬고 싶은 나는 종종 집에서 사이렌처럼 갑자기 크게 울곤 했다.
그러니 창고를 달라. 그곳에 어지러운 살림살이 죄다 밀어 넣어 감출 수 있게. 쌓여 있는 집안일 눈감고 내 몸 숨어 들어갈 수 있게. 나에게 창고를 달라. 집에서도 날 소모하지 않고 내가 나를 보관할 수 있도록.
아무것도 없는 빈 곳, 아무도 없는 빈 시간. 그 틈에서 온전히 쉬고 싶다.
때로는 해결책이나 정답을 원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한탄과 토로를 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이번 글이 그런 심경으로 쓴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쓰고 나니 이 마음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에서도 날 소모하지 않기’ 우리 모두 소모하지 않는 엄마가 되기로 해요. 저도 노력하려고요.
아, 그리고 제가 특히나 엄마들에게 추천해 드리고 싶은 시집이 하나 있어요.
신현림 시인의 <해질녘에 아픈 사람>이라는 시집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정말 깊은 위로가 됐던 시집이었어요. 혹시나 지친 엄마들에게 저처럼 위로가 될까 싶어 남깁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이 재우고 또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