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조용하게 내 방식대로 계속 쓰며 싸우고 싶다
나의 말들은 좌절에서 나온다.
《분노와 애정》, 수전 그리핀
빨래를 개키다가 노트북을 켰다. 아이를 낳은 후 내 사유는 자꾸만 집안일을 하며 일어난다. 화장실의 핑크빛 물때를 박박 문지르다가, 접으면 손바닥만 해지는 아이 옷을 보다가, 냉장고 안의 썩고 곰팡이 핀 반찬을 보다가. 집안일은 매 순간 나를 덮치고. 내 분노는 자꾸만 부엌과 화장실, 거실과 방에서 터진다.
커피를 마시고 쓴 글과 설거지를 하고 쓴 글은 결이 달랐다. 에세이 작가로 쓴 문장과 지친 엄마가 쓴 문장은 모두 내가 썼어도 한 사람의 손끝에서 나온 글이 아닌 것 같았다. 커피 냄새 밴 손과 고무장갑 냄새 밴 손은 한 사람의 팔목에 달려 있어도 다른 손이 되었다.
아이를 낳은 후 내 사유는 자꾸만 집안일을 하며 일어난다.
집 밖 일은 많으면 신경이 쓰이고 피곤할 뿐인데, 집안일은 많으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생각해 보니 나는 종종 집 밖 일에서도 그냥 무료로 좀 해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짜증이 났던 것 같다. 가사노동. 지구 역사상 아주 오래된 한 분야의 노동이 여전히 무급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렇다고 빨래하고 청소할 때마다 돈 달라는 거 아니다. 보상은 자본뿐 아니라 인정으로도 이뤄지는 법이다.
출산 후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두고 육아를 하는 친구들은 전화 통화에서 자주 말하곤 했다.
내가 이제 돈 안 벌고 집에서 노니까…
나는 아이와 집에서 놀아 ‘준’ 적은 있어도 그냥 놀아 ‘본’ 적은 없다. 집 안에서도 해야 할 ‘일’은 넘쳐났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주부, 엄마, 워킹맘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집안‘일’을 전문으로 하는 전업주부인 여성은 왜 논다고 말하게 될까. 아마도 집안일과 육아를 노는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과 인식 때문일 것이다. 그릇된 것들도 양이 많아지면 보통과 평균이 된다. ‘오만과 편견’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건 아닐까. 그런 책 제목이 있다.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맞다.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워킹맘이 된 나는 아이를 보며 일하는 다른 워킹맘들이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더 대단한 존재는 전업주부라고 생각한다. 나는 육아를 하다 일로 도망쳐 숨도 쉬고, 돈도 벌고, 잠시 엄마를 벗어나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하는데, 그들은 온종일 맞서고 매일 반복하고 있다. 인정과 보상도 없거나 적은 그 일을 오로지 사랑과 모성이라는 책임감과 애정으로 이어나간다. 워킹맘이든 그냥 맘이든 내가 엄마가 되니 다 맘이 쓰인다.
각종 수료증과 자격증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주부의 가사노동을 인정해 주는 게 이렇게도 힘든 일일 줄이야. 지난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남녀불문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에 대해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고 국민연금을 지원하겠다’라는 한 후보가 있었다. 정치적 이념과 실현 가능성을 떠나 이런 공약은 지지하고 싶었다.
엄마가 된 이후 나는 자꾸만 글로 싸운다. 이 싸움이 무슨 소용이 있고 의미가 있나 싶지만, 어쩌면 지구에서 가장 예의 있고 평화로운 싸움 아닌가. 그렇다면 더 싸워야지. 아니 더 ‘써야지’. 아이 반찬 만들기와 맞바꾼 이 한 편의 글이 나라는 못 구할망정 ‘나’라도 구할 테지. 우아하고 조용하게 내 방식대로 계속 쓰며 싸우고 싶다. 나의 말들은 좌절에서 나오고, 앞으로도 나는 아프고 분노하고 슬플 것이므로.
내 글에선 콜드브루 커피 향과 묵은지와 아기 섬유유연제 냄새가 동시에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