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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Dec 11. 2018

아빠의 귀는 하나

보청기는 아빠의 귀가 되지 못했다.

아빠는 어느 순간부터 말귀를 잘 못 알아들었다.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는 건 기본이었고, 질문을 해도 가만히만 계셨다. 엄마는 맨날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니 아부지땜에 속 터져 죽겠다.”를 속이 터지도록 얘기했다. 아빠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면 소리보다 몸짓으로 먼저 알려야 했다. “아빠!” 하고 부르기 전에 어깨를 툭툭 쳐 내가 말하려 한다는 것을 알려야 했고, 목소리는 좀 더 크게, 속도는 좀 더 느리게, 손짓과 함께 이야기를 해야 했다.     


아빠는 귀가 잘 안 들리기 시작했다.  



   

세 번째 보청기였다. 사드리면 잃어버리고, 또 사드리면 잃어버리고.


“아... 어디 갔나 모르겄다.”    

  

안 그래도 말 수 적은 아빠는 그렇게 점점 더 조용히 살고 계셨다.     



아빠는 평생을 건설현장에서 일을 해왔다. ‘업무’라는 단어보다는 ‘노동’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자리. 망치소리와 철근 소리, 굴착기 소리가 가득한 곳.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소리치는 소리가 가득 한 곳. 그곳에서 아빠는 평생을 소음 속에 살아왔다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보청기를 끼고 일을 할 때면 오히려 공사현장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와 자꾸 빼기 일쑤였고,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소음을 더 크게 들리게 하는 보청기는 아빠의 귀가 되지 못했다.     



당연한 것일까? 아빠의 귀가 멀어간다는 것이. 사실 엄밀히 따지고 보자면 단순 노동이 반복되는 그곳에서, 길게 회의를 나눠야 할 일도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도 없는 그곳에서, 아빠의 귀는 쓸모를 잃어 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노동의 소음이 싫어 귀를 닫은 건지도 모르겠다.    

 

평생 몸으로 일했기에 그 몸은 이제 하나 둘 한계를 드러내고 기능을 멈추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수순 일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슬프고 애잔하면서도, 전화기 넘어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딴소리만 계속하는 아빠의 말을 듣고 있자니 짜증이 올라와 소리를 친다.     


“아빠! 그러니까 내 말 잘 들어봐!”


통화 중 짜증 낸 정도만큼 전화를 끊고 나면 눈물이 난다.     


누군가의 말귀를 잘 알아들어도 자기 고집을 피웠던 과거의 아빠와, 이제 누군가의 말귀를 잘 못 알아듣고 순해진 지금의 아빠 중 어느 것이 더 나은 것일까? 나는 지금도 아빠가 자신의 말로 고집을 피웠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소음도 내 말도 그냥 다 잘 들렸으면 좋겠다 생각이 든다.   

  



아빠는 이제 내가 무언가를 얘기할 때면 대답보다 그저 웃고 있을 때가 많아졌다. 귀가 잘 안 들리자 아빠의 대답은 웃음이 됐다. 내가 아빠 걱정을 해도, 소리를 쳐도, 그저 대답은 웃음뿐이다. 그 웃음 속에는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미안함과, 흘러버린 세월에 대한 허망함과, 앞으로의 날들에 대한 걱정과 같은 수많은 대답들이 묵인되어 있을 것이다.     

아빠는 그렇게 점점 더 조용히 조용히, 말보다 침묵으로 하루를 살아가실 것이다. 그래서 아빠는 자꾸 잠만 잔다. 피곤에 지쳐 자고, 잘 들리지 않아 잠들고, 꿈뻑꿈뻑 자꾸만 주무신다.


이제는 좀 조용히 살고 싶으신 것일까? 시끄러운 공사현장에서의 50년. 그 세월이 만들어낸 소음을 넘어선 침묵. 아빠는 그동안 너무 시끄러운 곳에 오래 계셨다. 아빠의 귀가 그리고 아빠가 지칠 만도 하다.




아빠의 귀가 안 좋아지는 것은 어쩌면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다음엔 어디가 조용 해 질까? 어디가 멈출까? 좋아질 일보다 나빠질 일이 많을 것 같은 앞으로의 나날들 속에, 내가 아빠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한다.      


귀를 떼어 드릴 수도 없는 일이고, 나에게 남은 청춘을 나눠 드릴 수도 없는 일이다.    

 

내 말을 반 밖에 알아듣지 못하는 아빠를 보고 있자니, 아빠의 귀가 하나인 것 같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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