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모든 인간은 평등한가?
사비로 산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며 탄 가루 속에서 일하던 스물다섯 비정규직 청년이 목숨을 잃었다. 청년은 설비에 끼어 몸과 머리가 분리된 채로 '처참하게' 목숨을 잃었고, 여섯 시간이 넘게 방치되었다.
이 죽음이 더욱 가슴 아픈 것은, 분명 자라오며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가치를 보편타당한 것으로 배워왔건만 현실은 이에 대해 물음표를 띄우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신분제가 폐지된 이후, 정말 우리 사회에서 신분이 폐지되었는가? 묻는다면 '그렇다'라고 흔쾌히 대답할 수 있는가.
명목상의 '신분'은 없다지만, 사회 암암리에 존재한 채 사람들을 가르는 수많은 신문들을 우리는 본다. 재벌과 사회 빈곤층, 장애인과 비장애인,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신분의 대립을 바라보았는가. 그중에서도 청년을 죽음에 이르게 한 '비정규직'. 이 신분이 주는 아픔은 비단 한 개인의 감정적 설움에서만 그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 모두의 가슴속에 분노를 들끓게 하는 것이다.
내 친구는 계약직이었다. "그렇게 하면 재계약해줄 수 없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들으며 그 친구는 정규직보다 많은 업무량, 출퇴근 등의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지속되는 상사의 폭언, 직장 내 성희롱마저도 생계의 위협 앞에서 꾸역꾸역 참아내야 했다. 회사는 모든 걸 참아내면 결국 재계약해줄 것처럼 말했다. 친구는 떠넘겨진 모든 일을 맡고, 부당함을 감수했다. 하지만 그의 고용계약은 지난달 만료됐다.
또 다른 친구는 하청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그는 근무 중 새끼 손가락뼈가 부러졌다. 산재였다. 의사는 수술 후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업체는 통원치료로 끝내라는 둥 어떻게든 제대로 보상해주지 않으려고 했다. 아직 몸도 못 추스른 채 친구는 백방으로 뛰어다녀야 했다. 그는 아직도 손가락을 마음대로 굽히지 못한다.
차별은 무수히 이어져 왔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구내식당 메뉴부터 태안화력발전소의 죽음까지. 이대로라면 무수히 이어질 차가운 현실이다.
청년은 피켓을 들었다. '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노동악법 없애고, 불법파견 책임자 혼내고, 정규직 전환은 직접고용으로.'
그리고 그가 든 피켓에 적혀있던, 끝맺지 못 한 이야기들이 결국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거저로 신분 좀 올려달라는 투정 따위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 9년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산재사고 44건 중 42건이 하청노동자에게 발생했으며, 사망자 6명은 전원이 하청노동자였다. 이처럼 생존권을 위협받아야 하는 위험한 작업들을 외주화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전가하며 위험부담과 안전에 대한 책임조차 모두 외주화해 버리는 현실을 좀 해결해 달라는 얘기다.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사람 목숨 좀 똑같이 여겨 살려달라는 처절한 부탁이다.
지난 2016년 구의역 비정규직 정비 노동자 김 군 사망사고, CJ대한통운 물류센터 알바 청년 사망사고를 비롯해 무수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안전 사망 사고를 반복하고 있음에도 같은 슬픔을 반복해야만 하는 이 현실을 좀 제대로 바꿔달라는 얘기가 그리도 무리한 부탁인가.
청년은 목숨을 잃은 그 순간에도, 깜깜한 화력발전소 내부에서 일하는 동안 헤드랜턴 조차 지급받지 못해 휴대폰 불빛에 의존해야 했고, 2인 1조로 이뤄지던 작업이 외주화 된 후, 1인 1조가 되었고 결국 청년은 죽은 후에도 6시간 이상을 방치되는 끔찍한 최후를 맞아야 했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머지않아 또 다른 가엾은 청년의 죽음을 접하며, '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하고 안타까워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내가 김용균이다.', '나는 너다.'라는 비정규직들의 처절한 외침에서 읽을 수 있듯, 보이지 않는 신분제가 개선되지 않는 이상 언제고 제2의, 제3의 김용균은 계속해서 생겨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니 이 가엾은 청년의 아까운 청춘을 진정으로 기리고자 한다면, 이 청년에 대한 애도로만 이 이야기를 끝내서는 안 된다. 청년이 하고자 했던 피켓 속 이야기들을 남은 우리가 계속해서 이어나가야 한다.
진정으로 신분제가 철폐되는 그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