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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게 오지 마, 딴 데 가!"

진정하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2

by 고굽남

'참말', '거짓말'은 분명한 기준이 있다. 실제로 일어난 사실이냐 아니냐로 명확히 구분이 된다. '진정성'은 참 모호한 말이다. 왜냐하면 측정도 불가하고 기준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나의 진정성은 나만이 안다. 밖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진정하지 않음이 반복되고 지속되면, 그것이 진정함일 때도 있다. 반대로 마음이 진정해도 말과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그것이 진정하지 않음일 수도 있다. 그 순간은 진정했는데, 그 진정함이 지속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순간은 진정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흘러서 돌아보면 꼭 100% 진정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 때도 있다. 100% '찐 진정함'과 50% '반 진정함'이 있을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이를 먹을수록 '진정함'은 변화무쌍한 듯하다. 어쨌든 '진정함'은 참 추상적이고 모호하고 불안하고 예측불가하다. 고깃집 장사를 하면서, 고객과 직원(아르바이트생)에게 변화무쌍한 진정함과 진정하지 않음을 경험한다.


"아이고, 어지럽혀야 애들이죠. 괜찮아요!"


8명 예약이라는 말에 기분이 들뜨고 좋았다. 그런데 아이 4명이라는 말에 좋았던 기분이 약간 사그라든다. 성인만 8명과 성인 4명+아이 4명의 매출은 2~3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더욱이 고객들이 선호하는 안쪽의 명당(?) 자리를 내주었기 때문이다. 안쪽의 단체석 자리를 원하는 다른 성인고객팀을 놓칠까 하는 불안감도 있기 때문이다. 장사를 하면서 자리배치는 매출에 영향을 미친다. 5명 이상이 되면 2 테이블을 내어 드려야 하는데, 안쪽의 명당자리를 아이들을 포함한 5~6명 고객에게 내어드리고, 성인 7~8명 고객을 놓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순간의 자리배치 실수(?)로 매출은 많게는 3배 차이까지 났다.

그래도 요즘 같은 불경기에 이렇게 찾아주는 고객이 너무 감사하다. 성심껏 섬겨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고기를 구워드렸다. 젊은 부부 2쌍과 아이들 4명이었다. 구워주는 고기를 맛있게 먹는 아이들이 귀엽고 사랑스럽고 고맙다. 그래서 서비스메뉴도 내어주었다. 젊은 부부들은 아이들이 고기도 먹고 밥도 어느 정도 먹으니, 아이들에 대한 케어보다는 서로의 대화에 집중했다. 육아, 재테크, 부부관계 등 다양한 주제의 대화에 몰입했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방치됐다. 발로 의자를 차서 쿵쿵 소리를 내기도 하고, 냅킨을 손으로 뜯기도 하고, 숟가락, 포크 등을 떨어 뜨리기도 하고, 밥알과 반찬을 떨어 뜨리기도 한다. 컵과 접시가 떨어져서 소리가 커서 달려갔다. 젊은 부부들이 "사장님 죄송해요~ 애들이 어질러서" 한다. 나는 "아이고 어지럽혀야 애들이죠. 괜찮아요"라며 "그냥 두세요. 저희가 치울게요"라고 말했다. 만약 고객이 몰려오는 시간대에 대기하는 고객이 있었다면 "요즘 젊은 부모들은 지들 술 먹고 떠드느라 애들을 돌보지도 않고, 식당에서 예의도 안 가르치고~"하는 생각과 함께 짜증이 밀려왔을 것이다. 실제로 대기 고객이 있는데, 테이블 아래가 너무 지저분해서 다시 걸레질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그 순간 '욱'하면서 '욕'까지 나온다. 그런데, 요즘처럼 불경기 때는 이렇게 어지럽혀도 고맙다. 정말로 100%은 아니라도 80% 정도는 아이들이 어지럽혀도 괜찮다. 진정성이라는 것이 상황에 따라 이렇게 달라진다.


"건강이 우선이지요! 푹 쉬세요!"


"운동하다가 발목을 다쳤습니다", "복통이 심해서 병원 가야겠습니다".

출근 시간 1~2시간을 앞두고 아르바이트생의 문자를 받는다. 처음 1년 동안은 이런 문자를 반신반의했다. 실제로 다치거나 아팠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검증하고 확인할 길이 없고, 확인하겠다고 병원진단서를 보내라고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어쩌다 다쳤니? 어디가 아프니?" 하는 구체적인 질문도 하지 않았다. 걱정하는 듯한 질문이면서도 사실확인을 위한 검증질문으로 상대가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적절한 답장으로 "건강이 우선입니다. 푹 쉬세요!"라고 말했다. 진정성 50%의 말이다. 사실, 이런 문자를 받는 순간 "새빨간 거짓말을 하다니", "나 엿먹이려는 것인가" 등의 생각이 떠오르면서 화가 머리끝까지 난다. "지금 대타를 어디서 구하지?", "오늘 손님 많으면 큰 일인데" 등의 걱정과 불안이 나를 괴롭히면서, 갑자기 결근 문자를 보낸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분노가 치솟는다. 이런 모든 걱정과 분노를 숨기고 "쾌유를 기원합니다"라는 답장을 보낸다. 진정성 없다.


"또 인연이 되면, 뵙겠습니다"


장사 한지 3년이 돼 가니, 이제는 알겠다. 출근시간 1~2시간 전에 다치고 아프다는 문자는 99%는 거짓말이라는 것을. 여러 경로로 확인이 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교육시킨 대로 업무처리를 깔끔하게 하고, 고객응대도 잘하는 친구들은 이렇게 갑자기 결근을 문자로 통보하는 경우는 없다. 지각을 자주 하고, 교육받은 것은 잊어버리고, 자기 멋대로 일하는 친구들이 주로 이런 문자를 보낸다. 이런 문자를 보내는 친구들은 자신의 주관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고객 응대, 동료들과 협업, 매장 전체 상황에 둔감하다. 하루 이틀만 일을 시켜보면 이 친구가 어떤 상태인지, 어떤 성향인지 파악이 된다. 고깃집 업무에 어울리지 않은 친구들은 대다수가 1주일 안에 스스로 그만둔다. 이제는 면접만 봐도, 하루만 실습을 시켜봐도 알 수가 있다. 불합격 통지를 하는 경우, 상대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전달한다. 들을 것 같지 않은 친구에게는 "우리 가게와는 인연이 아닌 듯합니다"라고 짧게 말한다. 정이가고 들을 것 같은 친구에게는 나름 조언을 해준다. "협업보다는 혼자 하는 일이 더 적성에 맞는 듯하네요", "손발이 느리지만 꼼꼼하니, 수리점검 등의 일이 더 어울릴 듯하네요", "일보다는 말이 좋아 고객응대를 잘하니, 영업이나 마케팅 쪽 하면 성과가 좋을 듯하네요" 등등.

가끔 기초체력도 부족해 보이고, 손발도 느린 친구가 "열심히 하겠다"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난 아르바이트생이라도, 일단 채용했으면 귀책사유 없이 해고하지 않기 때문에 한 두 달은 지켜본다. 특히 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친구에게는 기회를 주고 싶다. 물론, 그 한 두 달 동안 그 아르바이트생 때문에, 다른 동료직원들의 불만이 접수되고, 고객클레임도 접수된다. 감내하고 그 친구의 의지를 지원하고 옹호한다. 이제 갓 20살 된 청년이 힘든 고깃집 아르바이트로 사회생활에 첫발을 내딛는데, 냉정한 현실보다 따뜻한 배려를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본인도 힘들 텐데, 버텨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두 달 지속되면 지친다. 왜냐하면 개선이 없다. 개선이 돼도 너무 느린 속도다. 매번 똑같은 잔소리 같은 '교육'을 해야 하는 것에 그도 나도 지친다. 결국, 그가 그만두겠다고 문자를 보낸다. 난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또 인연이 되면 뵙겠습니다"라고 답한다. 진정성 없다.


"우리 가게에 오지 마라"


고깃집을 하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보고 싶고 그리운 벗들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5년 10년 만에 보는 친구도 있고, 30년 만에 만난 친구도 있다. 소식을 듣고 학교동창과 지인들이 멀리서 찾아온다. 참 복이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친구들이 찾아오니 말이다. 찾아와서, 나에게 돈까지 쓰고 간다. 대부분 친구들은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마시고 간다. 서비스 메뉴를 내어주어도, 기어코 돈을 다 내고 간다.

사실, 손님이 많을 때는 지인들이 찾아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바쁜데 오면, 신경 써줄 여력이 없고, 앉아서 대화할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찾아와 주는 것도 고마운데, 신경도 못써주면 미안한 마음만 가득하다. 상대도 서운한 마음이 쌓일 것이라는 생각에 '하필 바쁠 때 와서는~'하는 생각이 앞선다. 또, 지인들에게는 '얼마까지 할인해 주고, 어느 정도까지 서비스 메뉴를 줘야 적당할까' 하는 고민을 하는 것도 불편했다. 통 크게 "오늘 내가 쏠게, 맘껏 먹어" 하고 싶지만, 비용대비 이윤을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싶지가 않다. 지인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일반 손님을 받는 것이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나에게는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지인들이 찾아오면, 반갑고 고마우면서 또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이 교차했다.

그래서 지난 3년 가까이 매번 모임 회식을 우리 가게에서 해 온 동창회장에게 "우리 가게 오지 마라", "같은 음식점 계속 가면 지겨워한다. 딴 데 가라"라고 말했다. 한편으로 진정성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진정성 없다. 진정한 속 내는 "손님 많을 때는 오지 말고, 손님 없을 때 와라"이다. 그런데, 그동안 이상하게 손님 많은 날, 지인들도 늘 찾아왔다. 지인들이 찾아오면, 또 손님들이 많이 왔다. 아르바이트생 펑크 내고 일 손 부족하면, 지인들이 찾아오고, 일 손이 넘치면 지인들도 손님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자주 오는 손님들은 "이 집은 올 때마다 정신이 없네요"라는 말씀을 하신다. 또 종종 오는 지인들에게 우리 가게는 '대박'이라고 헛(?) 소문이 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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