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 진짜 회사 그만두고 여행 갑니다.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회사를 진짜로 그만두었습니다. (대박!)
정든 회사의 각 층을 돌며 회사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동료 그 이상, 거의 친구처럼 친해진 팀원들, 지지고 볶으며 말도 많았지만 그만큼 정도 많이 들었던 다른 팀 동료분들, 이래저래 마주치며 인사하던 아는분들, 병아리처럼 나를 따르던 신입들까지.
장장 일주일이 넘게 지속된 술냄새나는 퇴사 파티를 치르고, 하루종일 들고다니느라 약간은 시들어버린, 팀장님이 선물해 준 감동의 꽃다발을 들고, 이제는 다시 들어오지 못할 휴게실에 모여 마지막 아쉬움의 포옹을 나누었습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싱숭생숭한 기분을 안고 출퇴근 시간과는 다른 한산한 지하철을 타고 마지막 퇴근을 했습니다.
학생, 아르바이트생, 직장인. 소속이 없는 인생을 살아본 적이 얼마만인지요. 괜찮을까? 나 정말 괜찮겠지? 스스로 물어봐도 해본 적이 없어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정말 회사 밖으로 나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인생의 페이지를 펼쳐 봐야지요. 해보고 나면 어떻게든 결론이 날 것입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일주일의 시간이 남았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시간. 할 일은 차고 넘칩니다. 어느 정도 준비는 다 해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챙길 게 많더라고요.
첫째 날, 반년 넘게 비워 놓을 방을 부지런히 청소하고 미뤄놓았던 서랍 속, 옷장 속까지 나름 꼼꼼하게 뒤집어 정리했습니다. 묵혀놓은 소모품 유통기한 체크도 필수입니다.
둘째 날, 늙은 강아지를 데리고 동물병원을 갑니다. 이상은 없는지 이곳저곳 체크하고, 이제는 잘 걷지 못하는 강아지를 품 안에 넣고 오랜만에 낮 시간에 산책을 합니다.
이제 곧 한국도 따뜻해질 것 같은 날씨입니다. 나무에 조금씩 꽃 봉오리가 맺히고 있습니다.
셋째 날, 한동안 만나지 못할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여행 기간 동안 있을 친구들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을 백배 사죄 합니다.
친구들은 결혼하는데 나는 퇴사하고 여행을.. 다시 불안이 고개를 쳐들지만 애써 무시하는 저 입니다.
넷째 날, 다 샀다고 생각했는데도 자꾸 나오는 준비물을 다시 삽니다. 다이소는 갈 때마다 살 물건이 생기는 게 좀 신기합니다.
다섯째 날, 엄마를 졸라 엄마표 비빔국수를 얻어내 먹습니다. 전 해외에 나가있으면 왠지 모르게 엄마의 비빔국수가 항상 먹고 싶었습니다. 뱃속이 허락하는 만큼 최대한 욱여넣습니다.
여섯째 날, 마지막으로 가방을 정리합니다. 사실 한 달 동안 열 번은 족히 풀었다 쌌던 가방입니다. 이리저리 각도를 굴려가며 최대한 짐들을 쑤셔넣습니다.
일곱째 날.
2025년 3월 19일. 출국입니다.
의외로 아주 잠을 잘 잤습니다.
원래 잠깐 떠나는 여행 전날에도 너무 기대를 해서 그런가 잠을 잘 못 자는 경우가 허다한데, 거의 10분도 안돼서 잠이 들고 알람을 맞춘 새벽 6시 10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번쩍 눈을 떴습니다.
온 가족이 부스스 일어나 마지막으로 절 배웅해 줍니다.
어딜 가든 몸 조심하라는 500번째 당부를 듣고 매일매일 카톡 하고 전화하라는 으름장도 몇 번 듣습니다.
알겠다고 몇 번이나 대답하고, 마지막으로 잠귀가 어두워져 아직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 강아지의 귀에 속삭입니다.
죽으면 안 돼. 나 올 때까지 기다려. 힘들어도 참아야 돼. 나한테 인사하고 가는 게 의리야 알지?
어릴 때 보다 약간 미지근한 온도의 강아지에 볼에 뽀뽀를 이백 번 정도 날려주고, 캥거루 같은 근육질이었던 어린 시절과 달리 뼈가 만져지는 조그만 몸을 마지막으로 꼭 껴안아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세계여행 간다고 회사까지 때려치운 철없는 언니를 배웅하기 위해 반차까지 내준 평생 단짝 친구인 동생과 짐을 나눠 들고, 인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원래는 항상 설레임을 안고 동생과 함께 떠나던 인천 공항 출국장을, 오늘은 저 혼자 들어갑니다.
저와 똑 닮은 얼굴의 동생이 출국장에 들어서는 나를 향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늘 불안과 걱정과 함께하는 안정주의자 소시민은 이제 한국 밖으로 도망칩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고, 다른 곳으로 떠난다고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건 아니겠지만요.
그동안 가장 소홀하게 대했던 잘 모르는 나와 친해질 시간을 만들었다고 생각할래요.
여행 기간 잘 부탁해 신대리야. 우리 진짜 잘해보자.
***
출국 전, 장기 여행자가 꼭 챙겨야 하는 세 가지
1. 각종 예방접종
여행의 기본은 건강. 맞을 수 있는 예방접종은 꼭 맞자. 남미에 방문 예정이라면 황열병은 필수
2. 트래블카드와 신용카드
이제 트래블 카드는 선택이 아닌 필수!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서라도 여러 개 만들어두자 (유니온페이, 비자, 마스터 등 여러 회사를 만들어 두는 게 여차할 때를 대비하여 안전)
백수가 되기 전 라운지 이용 등 각종 혜택을 이용할 수 있는 신용카드 발급도 고려해 보면 좋습니다.
3. 출국 전 아웃 티켓 체크.
편도권만 끊고 출국 예정인 여행자들은 유의하세요.
도착하는 나라의 아웃티켓 (꼭 한국으로 귀국 안 해도 되고 어디든 다른 나라로 가기만 하면 됩니다) 이 없다면 요즘은 출국 자체가 어렵습니다.
저처럼 급하게 공항에서 끊었다간 옆나라 가는데 12시간이 걸릴 수 있으니 꼭 미리 알아보시기를 추천! (갈 나라가 불확실하다면 24시간 내 취소가 되는 티켓을 알아보세요. 국적기들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