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 축제..아니었어요? 발리(1) - 빠당바이
여러 사람 (특히 나)의 설렘을 안고 두둥실 날아오른 비행기가 세계여행의 첫 나라. 발리에 도착했습니다.
좌충우돌했던 출국 전과 달리 착착착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빠져나오니 코끝으로 익숙하고도 습습한, 그리웠던 동남아의 냄새가 느껴집니다.
거기에 감성을 한 스푼 더해주는 한 글자도 알아볼 수 없는 팻말들까지.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오고, 마음이 들뜹니다.
그리고 설레는 이 마음을 나누며 함께 호들갑 떨 사람이 없다는 걸 언듯 깨닫고 나니, 아 내가 정말 혼자 여행을 시작했구나 하는 실감이 새삼스레 납니다.
늦은 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뚫고 내가 탄 택시가 발리의 작은 항구 마을 <빠당바이>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첫 여행지인 길리로 넘어가는 페리가 있는 빠당바이에서 오늘 하룻밤을 보내고 내일 아침 일찍 길리로 넘어갈 예정입니다.
이고지고온 짐들을 택시에 싣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국적인 노랫소리와 함께 굽이굽이 낯선 동네를 택시가 가로지릅니다.
피곤한 와중에도 잠은 오지 않았습니다.
차창 밖으로 휙휙휙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간판들을 보니 어렴풋이 스물한 살 중국에서 처음 언어연수를 시작했던 날이 떠오릅니다.
그때도 이런 엇비슷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기쁜 건가? 무서운 건가? 즐거운 건가? 밍숭맹숭 심란한 이 마음이 정확히 무언지 헷갈리는 기분이요.
내꺼면서 나도 알 수 없는 이것을 한참 해석하려 노력하다, 이내 포기하곤 빗줄기에 맞춰 설렁설렁 흔들리는 야자수를 마저 구경했습니다.
이런 마음을 싣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한참을 달리던 택시가 마침내 바다 내음이 나는 작은 마을 깊은 골목길에 섰습니다.
작은 불빛들만이 비치는 빠당바이 숙소 근처엔 이유를 알 수 없게 발리의 전통복식을 챙겨 입은 현지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잠깐 호기심이 들었지만 지친 몸을 누이는 것이 우선!
시선을 돌리고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골목 사이에 자리한 작은 2층짜리 숙소의 1층 가장 끝방을 배정받았습니다. 여행중엔 가능한 호스텔에서 묵을 예정이지만 오늘은 몸이 편하게 방 하나를 따로 예약했습니다.
어리버리 양 손에 짐을 가득 든 나에게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직원이 웃으며 키와 물 한 병을 추가로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더럽네.
기념비 적인 첫 세계여행 첫 숙소의 감상평입니다.
방충망이 없어 창문을 열기 힘든 1층.
침대 시트에서 풍겨오는 강렬한 담배 냄새.
찬물밖에 나오지 않는 샤워기에 아주 낡은 변기 커버…
그동안 안온한 한국에서 생활하며 깨끗한 생활에 너무 익숙해진 탓이었을까요?
10년 전 이불과 침대만 있어도 잘 잠들던 나는 죽어 없어지고 까탈스러운 30대의 나만이 남아버렸습니다.
어차피 하루만 잘거잖아 괜찮아. 계속 쓸것도 아닌데 뭐.
마음을 다독이며 짐을 정리하고, 괜히 더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변기를 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쪼그려 찬물로 샤워를 마친 다음 어두운 마을로 다시 나가 저녁을 사 먹을 자신이 없어 살짝 굶주린 배를 안고 얼른 침대에 누웠습니다.
그런데 몸살 난 듯 온몸이 아프고 너~무나!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잠이 오지 않습니다.
아까 전통 복식을 챙겨 입고 모여있던 동네 사람들이 다 늦은 이 시간에 축제를 하는 지 창밖으로 시끄러운 노랫소리와 알 수 없는 악기 소리도 들립니다.
거기에 그 악기 소리에 맞춰 이상한 새들이 웁니다. 개들도 컹컹컹 동네가 떠나가라 크게 짖습니다.
세찬 바람에 얄따란 자물쇠로 잠가놓은 방문이 덜컹거릴 때마다 누군가 혼자 있는 내 방문을 열고 들어올 것 만 같습니다.
아....무섭다. 진짜로.
육 개월이나 혼자서 어떻게 여행을 하지? 내 생각이 짧았나? 이게 진짜 맞나? 엄마한테 전화할까? 한국 몇 시더라?
수만 가지 잡생각에 머릿속이 시끌시끌.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바깥의 음악 소리가 커질수록 악기 소리가 요란할수록 머릿속 나와의 대화 소리도 티비 볼륨을 키우듯 점점 커집니다
참을 수 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막아보고자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켰습니다.
그리고 괜히 내일부터 시작할 길리 여행을 검색해 봅니다.
평화로운 분위기의 사진들이 포털에 가득합니다.
한껏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 천천히 유영하는 거북이….
핸드폰을 가슴팍 위에 올려놓고 다시 천천히 눈을 감은채 평화로운 게시물 속 풍경에 함께 있는 나를 상상해 봅니다.
바라만 보던 핸드폰 속 풍경에 나도 이제 들어갈 거야.
그런데 진짜로 이 어설픈 마인드 컨트롤에 조금씩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 어이없음을 느끼며 갑자기 커튼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음악 소리에 맞춰 소심하게 두둠칫 어깨춤도 한번 춰봅니다.
그러고 나니 괜히 쑥스럽고 웃겨서 웃음이 났습니다.
조금씩 새들의 울음소리, 강아지의 짖음 소리가 점차 배경음처럼 들립니다.
왠지 아까까지 짜증 나던 침대의 담배 냄새도 희미한 것도 같았습니다.
다음날 눈을 뜨니 웃음이 나올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 나를 맞아줍니다.
어제는 무섭게만 보이던 이곳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내가 이 숙소를 선택했던 이유인 후기대로 무료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멋진 조식을 먹으며 하염없이 눈앞의 풍경을 바라봤습니다.
아 그래 내가 너무 나쁜 점만 보다 보니까 나쁘게 보인 거였어.
항상 좋은 것을 먼저 보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이번 여행에서 긍정적인 생각을 배워가는 거야.
감성이 촉촉해진 마음에 갑자기 약간은 오그라드는 깨달음도 한스푼 얻었습니다.
그리고 한껏 가벼워진 마음으로 식사를 마친 뒤 방으로 돌아와 짐 정리를 하기 전,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환기를 위해 닫아 놓은 방의 창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무덤입니다.
제 숙소 옆은 공동묘지 였습니다.
좀 떨어진 옆도 아닙니다. 창문 열면 바로 공동묘지 입니다.
아니 그럼 어제의 그 음악소리는..?
축제가 아니고 장례식이었단 말이야…?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니라 진짜 무서운 상황에 있던 거였잖어....
그렇게 저는 졸지에 남의 장례식 음악 소리에 맞춰 춤을 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 가짐을 재정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헛웃음 나오는 상황에 짐을 챙기는 내내 혼자 피식피식 웃었습니다.
그래도 그 날 이후부터는 혼자 잠드는 밤이 크게 무서운 날은 없었습니다.
마지막이 이상하긴 했지만 진짜로 내가 느낀 결론은
일단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입니다.(진짜로!)
***
숙소를 고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 가지. (도미토리 기준)
1. 시내에 위치할 것.
아무리 숙소가 좋아도 운전을 하지 않는 뚜벅이인 이상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자리를 잡는 것은 필수. 기본 시내 1km 이내의 숙소를 잡는다.
2. 가능한 화장실이 방 바깥에 있을 것
내가 늦게 들어와도, 남이 늦게 들어와도 화장실이 안에 있으면 피차 불편.
볼일 소리도 신경쓰이는 한국인으로써 왔다갔다하기 조금 불편해도 화장실은 방 밖에 있는 게 좋습니다.
3. 개인 프라이버시를 위한 커텐과 콘센트가 있는 숙소를 추천.
저렴한 호스텔일수록 커텐이 없을 가능성이 높지만 최대한 개인 공간이 확보될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옷을 갈아 입을 때에도, 혼자 딴짓을 할 때에도
조금이라도 자유를 확보 하기 위해선 칸막이가 있는 숙소를 추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