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움에 내가 놓친 기회들이 얼마나 많을까?

EP 11. 히피의 마을. 태국(5) - 빠이

by 모두의 신대리


평생의 단짝, 부모님이 주신 영원한 꼬붕. 동생이 나를 보러 태국 치앙마이까지 날아와주었습니다. 새삼스럽게 한 달 간 매일 같이 보던 같은 장면도 새삼스럽게 즐겁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던 모든 것이 새롭게 보입니다.


누군가가 나의 사진을 찍어주고, 내가 누군가의 사진을 찍어주고,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길고 긴 수다를 떨고,콜라와 맥주를 나눠 마시고, 새로 산 옷을 함께 입어보고, 내가 먹었던 맛있는 음식을 소개해주고. 잠시 잊고 있었던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평범한 시간을 마음껏 만끽했습니다.


치앙마이에서 엄청난 머리를 한 내동생. 이러고 회사를 출근했다


시간은 어느새 쏜살같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내가 한 달 살기를 한 치앙마이에서 동생이 머무르는 일주일의 반을 보내고, 남은 반은 근교 도시인 빠이로 넘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빠이의 히피들을 만나볼 수 있는 까페 겸 바. Art in chai.


꼬불꼬불한 공포의 커브길 762개를 건너야만 도착할 수 있다는 여행자들의 무덤, 여행자들의 천국 빠이.

그 조그만 마을이 대체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길래 그렇게 천국이자 무덤으로 알려져 있는 지를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그 험난한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먹는 즉시 기절시켜 준다는 유명한 태국의 멀미약을 때려 먹고 흔들리는 버스의 움직임에 따라 목이 부러져라 헤드뱅잉을 하며 약 세 시간을 실신했다 일어나니 마치 마법처럼, 우리는 어느새 대마 냄새가 가득한 히피의 마을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내 마음은 빠이에. 한 달 살기를 하러 돌아갈 예정이다.

어딜 돌아봐도 산이 보이는 조그만 동네. 조금만 나가면 산길과 들판이 펼쳐져 있는 시골마을. 한집 걸러 있는 대마 가게. 좁은 동네를 가득 채운 대마와 담배 냄새. 조금만 걸어가도 흔하게 만날 수 있는 히피들. 예쁨을 가득 받아 사람을 피하지 않는 차도 한복판에 누워있는 수많은 강아지. 느지막이 일어나 밥을 사 먹고 하릴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는 하루하루...하는 것도 없는데 하루는 또 왜 이렇게 짧고, 마음은 또 왜 이렇게 편한 걸까요?


펼쳐진 들판을 보며 대낮부터 맥주를 먹는게 하루 일과다.


별거 없지만 별거 많은 이 동네의 매력에 조금씩 스며들어갈 무렵 동생과 보내는 마지막 밤이 훌쩍 다가와 버렸습니다. 우리의 마지막 날을 이렇게 대충 흘려보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 만찬을 빠이에 딱 하나 있는 한식집에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순하기만 한 강아지들.


걸어서 30분 거리. 낮이었다면 별거 아니었을 그 거리가 고작 태양 하나 졌다고 이렇게 무서울 수 있는 걸까요?

낮에는 푸르름이 가득했던 그 나무들의 그림자는 커다란 괴물처럼, 낮에는 그토록 귀엽고 얌전했던 강아지들의 컹컹 짖는 소리가 무서운 들개들의 소리로 들렸습니다.

강아지의 경고음을 피해 빙 둘러 돌아가던 우리의 발걸음이 조금씩 조급해 질 무렵, 저 멀리 한글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년의 반은 남쪽섬에서, 반은 빠이에서 보낸다던 사장님의 바.


위험과 두려움이 가득한 우리가 뛰어든 그곳은 따뜻한 온기(사실은 시원한 에어컨 공기)로 가득했습니다. 잔잔한 분위기. 멋진 인테리어에 나지막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조그만 바. 양념치킨과 떡볶이를 판매한다고 적혀있는 메뉴판에 놀랐던 가슴과 무서움에 떨던 동생의 눈총이 조금씩 사그라들었습니다.


평소에는 먹지 않았을 단 칵테일도 둘이 함께기에 무리해서 시킨 두 가지의 메뉴도 모두 먹어 치우고 나니 다시 돌아갈 그 어둠의 길이 스멀스멀 두려워졌습니다. 심지어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 비까지! 아 그 길을 뚫고 어떻게 가지? 빠이는 택시도 없는데.. 괜히 오자고 했나 우겨서 온(우리 기준) 머나먼 이곳까지 온 것에 후회가 피어오를 때쯤 천사의 목소리가 우리 귀로 울려 퍼졌습니다.


빠이 시내까지 데려다 드릴까요?


헉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음식을 가져다주시면서 보여준 사장님의 친절에도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무려 빠이 시내까지 데려다주신다니요. 혼자 모든 것을 혼자 헤쳐나가던 여행 중, 오랜만에 만난 친절에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뚫고 우리를 태운 사장님들의 두대의 오토바이가 시내 한국인분이 운영한다는 바에 데려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법처럼 수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나라가 인도라는 몇 년째 인도를 계속 방문했다는 온화한 표정의 한국분도. 빠이에 산지 5년이 넘었다는 중국인 친구도. 무에타이를 수행 중이라는 프랑스 친구도. 소설 속 삽화로 그려진 꼬불꼬불한 길을 현실에서 만나 빠이에 정착했다는 바의 사장님도.평소엔 내가 만나 보지 못했을 수많은 형태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내가 상상도 못 했던 곳에서 또 새로운 인연과 즐거움을 만나다 보면 계속해서 그런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그동안 지레 겁먹어서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이 또 얼마나 많을까요? 그동안 두려움이 없어 내가 놓친 기회들이 얼마나 또 많을까요? 용기가 없어 또 흘려 넘긴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동생과 함께 봤던 무서운 풍경에 개들이 짖으며 쫓아오던 그 공터는, 수요 재래시장이 열리는 멋진 공간이었습니다. 어둠이 가득 차 무시무시해 보였던 옆동네는 멋진 베이커리와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가 있는 평화로운 곳이었습니다.


그런 걸 알아가다 보면, 이제는 무섭다고 포기하기보단 일단 시도하고 후회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다짐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무서움에 져 내가 느낄 수 있었던 또 다른 행복을 놓치기 전에 말이지요.




*** 빠이에서 해볼만한 것 세 가지


1. G day 바 가기.

한인사장님이 운영하는 바.
빠이에 사는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다. 손님들이 트는 다양한 취향의 플레이 리스트. 오고가는 손님들의 새로운 이야기들이 모두 즐겁다.



2. 야시장 끄트머리 랜덤으로 등장하는 푸(pu)에게 헤어 어레인지 하기.

악세서리 포함.
가발이 포함된 포인트 헤어가 개 당 단 돈 200바트. (8천원 정도) 친절한 히피 사장님과의 수다는 서비스. 이때 한 머리는 3개월 가까이 짱짱하게 유지 중이다.



3. 썬데이 마켓 방문하기

수제 악세서리, 압착식 커피와 다양한 음식들까지.
빠이의 정수를 누릴 수 있는 일요 마켓 방문하기. 운이 좋다면 치앙마이보다 저렴한 가격의 고퀄리티 아이템들을 득템할 수 있다.
keyword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