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직업(Nebenjob)을 가진 사람들

by 집나온 여자

하루는 늘 다니던 동네 길을 지나가다가 문득 길 한복판에 놓인 처음 보는 간판을 보았습니다. ‘빛의 춤(Lichttanz)’ 공연. 빛의 춤? 극장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일반 주택에서 공연을 한다는 점과 그 소재가 궁금해져, 공연을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공연 시각 10분 전, 건물 뜰 안으로 들어섰지만 극장 같은 분위기도 없고, 공연이 있을 것 같은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반 가정집뿐이어서 도대체 어디로,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결국 발길을 돌려 건물 현관 밖으로 다시 나가, 벨을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독일은 건물의 현관에 거주자 이름이 각각 적혀 있는 벨이 있습니다.) 그러다 한 곳에 거주자 이름 대신 ‘빛의 춤(Lichttanz)’이라 적혀 있는 벨을 발견했습니다. 벨을 누르고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다시 뜰 안으로 들어서니 사람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들. 공연장은 한 건물의 꽤 높은 천장을 가진 지하실이었습니다. 까만 커튼이 드리워진 사방의 벽, 무대를 향해 양옆으로 두 개씩 두 줄로 놓인 삼인용 소파 네 개, 그 앞으로 왼편엔 피아노 하나, 정면엔 흰색 스크린, 맨 뒤에는 평방 1미터쯤 되어 보이는 조촐한 바(Bar)가 있었습니다. 썰렁하긴 했지만 공연장이라 불리기에 크게 손색은 없었습니다.


공연시간이 다가오는데도, 관객은 저와 제 친구 단 둘 뿐이었습니다. 꽉 차 봐야 12명 앉을 수 있는 소극장이었지만, 그래도 어쩐지 민망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치 우리 때문에 공연이 열리는 것 같았거든요. 공연 시간에 맞춰 다행히 다른 두 명의 관객이 더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네 명의 관객, 한 명의 피아니스트, 한 명의 퍼포머가 함께하는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피아니스트의 즉흥 연주와 함께 흰색 스크린 위로 일정한 패턴이 없는 빛의 형체가 드리워졌습니다. 홀로그램을 보는 듯한 그것은 때론 자연의 한 장면처럼, 때로는 인위적인 무언가처럼 보이며 쉴 새 없이 형태를 바꾸었습니다. 신기함과 묘한 색채의 황홀경에 빠져드는 순간, 작가는 관객들을 한 명씩 무대 뒤로 초대했습니다. 직접 빛을 다뤄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퍼포머는 작가의 노하우라 할 수 있는 ‘빛의 비밀’을 서슴없이 알려주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모두 뒤편에 마련된 조촐한 바에 둘러앉아 자연스럽게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공연에 대한 느낌을 서로 나누다가 은근슬쩍 자기소개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피아니스트이고, 부업(Nebenjob)으로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다음으로 제 친구 아냐(Anja)가 말했습니다.

“저는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요. 그리고 저녁엔 탄츠파브릭에서 무용을 해요. 무용수예요.”

이야기를 듣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취미로 피아노를 치는 수학 선생님이 아니라, 피아니스트이고 부업으로 수학을 가르칩니다. 제 친구 아냐의 소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녀는 유치원 교사이자 무용수였습니다. 입시나 직업을 위한 무용이 아닌, 무용 그 자체가 그녀의 삶이었습니다.

제가 워낙 둔해서 이제야 깨닫게 되었지만, 이곳에 살다 보면 이런 사람들을 자주 만납니다. 언젠가 독일 생활을 블로그에 올린 한국인의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출처를 밝히고 링크도 걸고 싶지만, 워낙 여러 경로를 통해 본 글이라 다시 찾지 못했습니다.) 그 글에는 독일인들에게 ‘취미’란 단순한 여가 활동 그 이상이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의 친구 중 한 명이 테니스를 취미로 하는데, 가끔 시간 날 때마다 하는 것이 아니라, 테니스를 위해 회사에 휴가를 내고, 한국으로 치면 전국체전까지 나갈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는 이곳 사람들은, 생계를 위한 일도 하고, 하고 싶은 일도 합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직장생활을 했던 한국에서의 내 삶이 떠올랐습니다. 직장에서, 혹은 퇴근 후의 시간 속 어디에도 ‘나’는 없었습니다. 누군가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이곤 했습니다.

베를린에 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 이곳까지 왔고, 또 하고 있지만, 정작 있는 그대로 즐기지 못하고 그것으로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 지, 미래의 결과를 위한 도구로만 여겼습니다.

굳이 무언가가 되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할 줄 아는 사람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은, 배부른 사람들만의 특권이 아니었습니다.



(이 글은 2008년에 작성된 것으로, 현재의 상황과는 내용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배경 이미지: Sora (OpenAI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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