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은 오늘도 이팔청춘

by 집나온 여자

서울의 한강처럼 베를린에도 도시를 가로지르는 슈프레(Spree)강이 있습니다. 이 슈프레강을 따라 동쪽으로 또 동쪽으로 걷다 보면 아주 작은 섬인 Insel der Jugend(젊음의 섬)이 나오고, 그 섬을 마주 보고 있는 곳에 Eierschale(계란껍데기)라는 디스코텍이 있습니다. 사실 이곳을 단순히 디스코텍이라고 부르기에는 그 정체성이 너무도 다양합니다. 비어가든이기도 하고, 레스토랑이기도 하며, 그 안에는 버거킹까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이곳은 누가 뭐래도 ‘디스코텍’으로 기억됩니다.


어느 가을, 일요일 오후에 느긋하게 산책을 하다 이곳을 마주했을 때의 충격은, 이해할 수 없는 이질감과 함께, 괜히 혼자만 뒤처진 듯한 서운함과 배신감의 복합체였습니다. 대낮에 이곳저곳에서 맥주를 마시는 풍경은 베를린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그다지 취한 것 같지도 않은 상태로, 조명도 없이 독일식 댄스가요(Schlager)의 둠칫둠칫 울리는 비트 속에 신나게 몸을 흔드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여느 클러버 못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하면 으레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라며 지난 청춘을 회상해야 하는 정적인 존재로만 여겨온 저의 무지함에 대해, 깊은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그분들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신나고 당당하게 즐기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인상은 비단 베를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유럽의 어느 휴양지에 가더라도 해변가나 산책로에서 흔히 마주치는 이들은 바로 독일 시니어들입니다. 조식부터 샴페인을 마시고, 낮에는 햇빛과 수영을 즐기며, 해 질 무렵이면 어린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번잡하게 식사하는 시간을 피해 느즈막히 저녁식사를 하고 일몰을 감상합니다. 그들은 돈도 많고 시간도 많습니다. 전후 세대의 복지 체계와 탄탄한 연금 제도의 수혜를 고스란히 받은 이들로, 지금의 노년은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삶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에도 이와 비슷한 문화가 없지는 않습니다. 아줌마, 아저씨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떠난 단체 여행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는 모습은 익숙합니다. 그 풍경은 ‘관광버스춤’이라는 신조어까지 낳으며 하나의 풍속도처럼 자리 잡았지요.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무대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노년층이라기보단 좀 더 중장년층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아직 ‘청춘의 끝자락’쯤에 머물던 사람들이였어요. 그에 비해 여기 베를린에서는, 어르신들이, 디제이가 있는 정원에서 낮술을 곁들이며 거리낌 없이 춤을 춥니다. 누군가는 현란한 스텝을 밟고, 누군가는 빙글빙글 돌며 리듬을 탑니다. 그 모습은 ‘회춘’이 아니라, 그 자체로 진짜 시니어 클러버들입니다. 가끔 클럽에 가면 맨 정신으로는 놀 수 없다며 술이나 진탕 마시던 제 모습이 부끄러워졌습니다. 한때 홍대 클럽에서 알바도 했었고, 나름 부지런히 클럽데이를 챙겨다니던 저는 그들 앞에서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존재였어요.


Eierschale Zenner(계란껍데기 체너), 베를린 2008


함께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나도 노년이 되면 여기 올 거야!”
노년? 저는 제 노년기를 진지하게 생각해 적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노인이라 하면 약간은 나약해진 육체를 가지고 독서나 산책을 하며 잔잔한 삶을 사는 이들을 떠올렸던 저에게, 노년을 상상하며 디스코텍을 떠올리는 친구들이 무척이나 재미있습니다.

그래요,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저도 할매가 되면 이곳에 꼭 춤을 추러 올랍니다!



(이 글은 2008년에 작성된 것으로, 현재의 상황과는 내용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음은 ChatGPT에서 가져온 현재(2025년) Eierschale 정보입니다:

이 장소는 1822년에 설립된 전통적인 독일식 레스토랑으로, 오랜 세월 동안 베를린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1950년대에는 "Eierschale"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으며, 이는 독일어로 '달걀껍질'을 의미합니다. 이 이름은 건물의 외관이나 분위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1990년부터 2019년까지는 "Eierschale Zenner"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다양한 문화 행사와 음악 공연이 열리는 장소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2019년에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문을 닫게 되었고, 이후 새로운 운영자에 의해 리노베이션을 거쳐 2021년에 "Zenner Bier- und Weingarten"이라는 이름으로 재개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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