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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Oct 29. 2020

사계절의 산책이 길을 묻는다

길 위의 사람과 행복

일을 하다가 멈춘다. 산만해졌고 머릿속 생각이 뭉게뭉게 흩어지니 몸을 움직이는 것이 낫겠다.

산책을 나가기로 하고 가벼운 점퍼 하나만 걸친다. 걸음이 가볍기를 바라고 있다.

마음은 물 잔뜩 먹은 솜뭉치가 되어 있으니 이것을 떨치고 들어올 나를 기대하고 있지 않는가.


그것이 산책의 묘미다. 누구에게나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다. 그 길은 삶의 길이 될 수도 있다.

나는 걸으면서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이곳이 내 자리인지 살 자리인지를 생각할 때가 많았다.  마음이 지치면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기도 한다. 길이 내게 위로를 건네기도 하니 스치는 바람에 나를 맡긴다.

어느 길로 들어서야 좋을까. 어느 길로 발을 들여놓을지 정해야 한다.


동네에 위로 아래로 곧게 뻗은 길이 있다.  위로 갈지 아래로 갈지 순간 망설인다.

사는 것이 늘 선택의 기로 앞에서 망설임의 연속이었는데 산책길마저 나를 선택하게 만든다.

고민하지 말자. 신경이 위로 솟아 가시가 돋았다 싶으면 차가 오가지 않는 길로 몸을 틀면 되고

머릿속 생각을 날리는 것이 필요하면 소음을 들으며 길을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풀거리는 마음을 붙잡는 것은 두 다리에 힘을 주고 걷는 것이 최선이다. 사는 것이 느린 내게 위로가 필요했고 정돈하는 것도 필요했으며 마른바람이 부는 계절이어도 충분히 산책 만으로 나는 산뜻해질 수 있다.

지난주 만개한 코스모스로 마음이 꽉 차는 듯했다. 햇살은 적당하여 그저 이대로 머무르며 좋겠다는 마음이 절로 나온다. 시간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2주 만에 걸은 이 길의 코스모스는 절반 이상이 져버렸다. 나무의 잎들도 절반은 바람에 사라졌다.

봄엔 어땠을까. 한 때 싱그러운 힘을 보였던 잎들이 바닥에 카펫을 깔았다. 밟고 지나가기가 마음에 걸린다.

지난 봄날에는 하늘거리는 꽃잎들이 집안을 박차고 나오게 하지 않았던가.

지난여름에는 파릇파릇한 초록잎들이 내게 온 몸으로 햇살을 받으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뜨거운 햇살로 모든 것을 영글게 한 가을은 옷을 갈아입더니 낙엽으로 헤어질 준비를 한다.

토막 난 듯한 시간이 나를 서글프게 하는 것은 내가 가을을 나서 일까.

아니면 가을은 아쉬움이 없는데 나만 아쉬워서일까. 그러니 사는 것에 집착하지 말 것이며 아등바등도 하지 말 것이며 그저 아쉬움만 줄여갈 것을 전한다.  

모든 것을 매듭 지은 가을은 다시 앙상해질 것을 염려하지 않으니  나도 산책길에 조바심을 버린다.

이럴 땐 날리는 낙엽이 고맙다. 낙엽에 묻어갈 수 있기에.


꽃잎이 힘을 다한 봄의 끄트머리에서.


서글픔은 길게 가지 않는다. 봄의 끄트머리에서 여름이 돋아나 곳곳이 살아있음을 알려주었기에 서글픔은 순간의 감정이다. 가을은 앙상함을 준비하고 혹독한 겨울을 날 준비를 속부터 하고 있을 테니 서글픔 따위에 약해져도 안된다.

모든 계절은 기가 막힌 헤어짐과 만남이다.

계절은 사는 법을 알려준다. 봄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배웠다.  겨울 봄여름 가을이면 어떻게 될까. 나는 가을의 끄트머리에서 겨울을 시작한다.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고 싶다.

가을 햇살을 받으며 길을 걸으니 벌써 앙상한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앙상한 나뭇가지는 정말 이 큰길을 휑하게 만들어 가끔 운전하며 지나가다 보면 헐벗은 느낌이 이럴까 싶은 날도 있었다. 산책을 생각을 하게도, 생각을 할 수 없게도 한다.


이 길 걷다 보면 단 한 명의 사람도 만나지 않을 때도 있다. 기막힌 타이밍이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면 가끔 강아지와 산책 나온 동네 아주머니가 맞은편에 보일 때가 있다.

강아지라도 만나면 혼자라서 좋다던 마음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안녕~ 하고 침묵을 깬다.

이래서 사람은 혼자서 오래 머무를 수 없다. 혼자서도 길을 걸을 수 있고 함께 길을 걸으며 보폭을 맞추는 내가 되면 좋겠다.


얼마나 걸었을까. 오래된 고택이 있다. 사계고택을 지나가면 잠시 몇 초라도 멈춰서 바라본다. 아름드리 큰 나무와 고택의 기와는 딱딱한 아파트와 팍팍한 현실, 시계 보며 쫓아가는 삶을 잠시라도 잊게 해 준다.

때로는 저 풍경이 서울을 떠나 이 곳에 마음 붙이게 살도록 날 잡아줬던 그림이기도 하다.



이름을 모르겠다. 바위틈의 흙속에서 이렇게 샛노란 빛과 짙은 초록 잎들의 어우러짐은 어딘가에서 비집고 나가고 싶은 욕망과 희망을 느껴라 하며. 그러나 내가 안고 있는 바위를 똑바로 바라보게 한다.


봄의 절정과 가을의 절정에는 하늘과 맞닿은 길, 혹은 꽃으로 가득한 길이 최고이다.

거침이 없고 방해가 없다. 인상 찌푸릴 일 하나 없으니 발걸음이 어찌 가볍지 않을까.

작은 강아지도 가장 마음 놓고 앞장서는 길이다. 엄마랑 걷다 보면 팔짱 끼게 되고, 속내 표현 안 하는 남동생과는 각자의 삶이 괜찮은지 확인하기도 하고, 걷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마음을 느낀다.

아들과 걷다 보면 까르르 웃음이 터지고, 손을 놓지 않는다.

혼자 걷게 되면 최대한 천천히 걷기도, 최대한 빨리 걷기도 하며 나 자신만 바라본다.

나만 보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그럴 때는 욕심을 낸다. 모자 가볍게 눌러쓰고 귀에 이어폰 꽂고 걷다 보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다.

나태주 시인님이 했던 말.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를 되뇐다.











지난겨울 어느 날.

마음이 아팠던 어느 날, 무작정 나왔다. 찬 바람맞으면 정신 들까 싶어 나왔다가 솜뭉치 되어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꽃에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더라. 산책은 모든 생각을 날려버린다.

그래.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그래. 아무렴 어떠한가.


삶이 피로하고 몸과 마음이 피로감에 휩싸인 날.

걷다 보면 생각은 가벼워지고,

걷다 보면 발걸음도 가벼워져서.

걷다 보면 마음에 다시 빛이 들어와 있다.



나비도 만나고, 꽃도 만나고, 싱그런 초록 나무를 한없이 만나다 보면

사는 인생도 꼭 그렇게 무겁고 슬프고 나쁜 것만이 아니었음을.


길의 한 중간이다. 위로도 못 가겠고, 아래라도 못 갈 상황이 있다.

대부분 그렇다. 어중간한 일상이 허다하고, 일주일은 너무 짧은데, 하루가 너무 길던 날들.

선택하는 것조차 내게 허락이 안될 때, 그럴 땐 딱. 한가운데에 있다.

내 마음이 이렇다고 그 누구에게도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때

차라리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 나를 집어넣으면 내가 보이지 않는다.



이 길을 끝까지 올라가면 외국인 스님들만 있는 절이 있다. 외국에서 온 스님들인지, 외국에서 왔는데 이 곳에서 스님이 된 것인지. 그들의 인생을 알 수가 없다. 에메랄드 또는 푸른색 눈을 가진 스님들과 눈인사를 하면 고민하던 내 삶이 덧없게 느껴진다.


그저 찰나. 그저 오늘. 내게 온 하루 열심히 살면 될 것을.

지난봄에 파란 하늘 아래에서 봤던 벚꽃잎은 내년에 오겠노라고 하며 사라졌다.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계절은 일정하게 오고 간다.

내 마음만 변덕이었다. 한결같다. 이것은 가면이고 거짓이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나를 내놓는 것은 두렵지 않다.

한 시간 남짓의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와 다시 길을 걷기를 기다리고 있다.

추워서, 혹은 더워서. 비가 와서, 혹은 먼지 때문에, 눈이 와서, 하늘이 흐려서.

수많은 변명과 이유, 핑곗거리에 내가 사는 인생길이, 그 앞 길이 탁탁 답답해지지 않던가.


걷다 보면 없던 힘도 나고

걷다 보면 무겁던 마음은 가벼워져서.

걷다 보면 평범한 일상은 꽃잎처럼 살아난다.

모든 것은 그대로이지만.

그 모든 것을 새롭게 다시 움켜쥐고 가도록 해주는 것.

그렇게 걸으면 된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며 -하늘. 나무. 길.

내가 느끼고 싶은 것만 느끼며-바람 그리고 숨소리.

살아있음을 가장 느끼는 순간.

내가 걷는 길이다.


사계절의 산책이 내게 묻는다.

네가 걷는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아냐고.

길이 답한다.

어느 길로 향하든 내가 걷는 길은 이어질 것이니 힘을 주고 한 발씩 내딛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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