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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Mar 05. 2021

공유 닮은 그 사람(끝)

길 위의 사람과 행복

" 올라가실까요? "

그의 묵직한 목소리에 놀라 뒤를 돌았다. 그는 커피 주전자와 드립 기구들이 잔뜩 올려진 쟁반을 들고 움직이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 10시가 조금 넘은 이 시간. 카페 안에서 훤히 저 멀리 바다가 눈 안에 들어온다. 그를 뒤따라 계단을 올라가며 말을 이었다.

" 저 바다를 매일 보면 어떤 느낌이에요? 난 가끔 보게 되니 그저 너무 좋기만 한데, 매일 이렇게 보면, 똑같이 좋을까요?"


" 저도 바다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볼 때마다 늘 좋아요. 그래서 여기에 카페를 열게 된 거예요."     

2층으로 올라가니 통유리벽으로 둘러 쌓여 있는 공간이 있었다. 유리문 정면, 내 눈높이보다 조금 위쪽에 교육장이라고 적혀 있다.

저번에는 3층으로 바로 올라가서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다. 열댓 명은 앉고도 남을 커다란 테이블 위엔 개수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는 커피 포트 안에 물을 채운 후 스위치를 켜며 내게 앉으라고 권한다. 입구 쪽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그가 바로 맞은편에 앉는다. 차분해졌다. 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리고 있지만 내 앞에 그 사람이 있으니 마음에 나도 모를 평안함이 스며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저번에 부산에 다녀가고 나서 좀 도움이 되셨어요?”

내게 묻는다.


“네. 속 시끄러운 일들이 많아서 좀 비우려고 왔는데 덕분에요. 카페는 여전하네요?”

그간 안부를 서로 전하며 그는 내게 준비해 놓은 원두 종류 3가지를 보여주었다. 빈 속에 커피를 마시면 좋지 않으니 타르트를 먼저 먹기를 권했다.


“혹시 펜 가지고 계세요? 제가 깜박했네요.”

“ 아! 있어요.”

가방에서 얼른 펜 하나를 꺼내 그의 손으로 건네주었다. 그는 하얀 종이 위에 동그라미 몇 개를 그리며 원두 입자를 설명했다. 그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그의 손가락 움직임에 시선이 같이 움직였다. 설명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고 그를 바라보는 내 눈동자는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고 또렷하다.


원두 가루를 드리퍼에 담아 뜨거운 물을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부으니 입자가 살짝 부풀어 오른다. 30초 정도 뜸을 들인 후 다시 물을 최대한 가늘고 천천히 떨어뜨려야 한다며, 물줄기의 흐름과 시간이 중요하단다.

원두 가루가 뜸이 들기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그는 조심스럽게 커피 원두에 물을 또르르 붓는다. 원두 가루는 가스를 만들어내더니 기포가 방울방울, 부풀어 오른다.     

“난 그동안 너무 급하게 물을 부었네요. 이런 기다림도 없이. 어쩐지. 왜 그동안 맛이 그랬는지 알겠어요.”

"커피가 기다림을 가르쳐 주네요."

“맞아요. 드립 커피는 기다려야 그 맛이 나요. 급하지 않아야 해요.”

커피 향기가 금세 그 사람과 내 주변도 모자라 나와 그가 있는 그 공간 전체를 감싸고돌았다. 너무 감미로운 그 커피 향에 잠시 눈을 감으니 오늘 아침 내가 뿌린 향수 냄새가 오히려 내 코 끝을 방해한다.

향이 너무 좋다. 묵직하면서 달콤한 향이 또 나를 급하게 만든다.


" 자. 이거 한 번 맛보세요. 뜨거우니까 조심해요. "

그는 찻 잔을 내 앞으로 밀어준다. 그리고 마저 한 잔을 더 내려 그도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묻는다.

"커피 어때요? 먼저 내린 거에 물을 좀 더 부으면 커피 맛이 더 풍부해져요. 물을 조금만 부어볼게요."


" 이 일을 한지 오래됐어요? "

사람에게 호기심이 없는 내가 이럴 질문을 하다니. 나의 질문은 우리의 대화에 물꼬가 되었다.

그는 미국에서 대학 졸업 후 귀국하여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행복하지 않았다. 그때 어느 한 사람을 알아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갔다가 그 분위기에 빠져 커피 사업을 하게 되었다는 그는 이렇게 자리 잡을 때까지 그동안 한 노력과 고생을 내게 들려주었다. 미국에 있을 때 병에 걸려 불치병 판정을 받고 오랜 기간 입원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에게 커피를 알게 하고 이 일을 하도록 만들었다는 그 한 사람은 꽤 여러 번 등장했다.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하고, 부모의 반대로 최초에 열었던 카페가 엉망이 되기도 하고, 몇 년을 공장에 틀어 박혀 원두를 연구하며 성공할 때까지 그간의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겪었던 시간을 고스란히 말해주었다.


그를 힘들게 했던 그 어느 한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가만히 듣기만 했다.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들어야 했고, 듣고 싶었다. 아팠다는 말에 잠시 그의 말을 끊었다.


" 지금은요? 지금은 괜찮아요? "

" 네. 지금은 건강합니다. "


대화를 할 땐 난 상대방 눈을 잘 쳐다보지 못한다. 아니 못했다.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내 표정을 들키는 게 싫었고, 상처의 흔적이 남아있기에 사람과 마주하는 것이 때로는 두려움과 부담이 되었던지라 나의 시선은 늘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그런 내가 그 사람 눈을 바라보며, 그 사람의 표정을 놓치지 않으려 하고, 그 사람이 하는 모든 말을 기억하기 위해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내 안의 세포를 모두 깨워 그에게 집중시켰다. 오랜만이다. 누군가의 말을 듣는다는 것이.


" 많이 힘들었겠어요. 너무 힘들었네요. 그리고 너무 대단하네요. 무너지지 않고 말이에요."

그는 나의 이런 응답에 고맙다며, 그 어둠의 시간이 좀 더 길어졌다면 무너졌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 그런데 말이에요. 나이가 어떻게 되나요?"

또박또박 그가 나이를 알려준다.

그의 나이를 알고 난 속으로 환호성이 터졌다. 나이가 같다니. 이 작은 사실이 내게 폭죽을 터뜨리는 순간이다.

가슴이 살짝 떨려온다. 그리고 난 예상치도 못한 말을 하고 말았다. 커피잔을 만지작 거리며 그의 시선에서 조금 비켜간 채 말을 이었다.


“고생을 그렇게 하고, 사업을 이렇게 만들기 위해 겪은 것이 너무나 큰 데... 물론 그 한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도 모자라 직원들까지 당신의 뒤통수를 쳤다니 참 힘든 시간이 있었네요. 그런데 말이에요. 처음 본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건 처음인데, 나에게도 남모를 고통의 시간이 있었어요.”

“난요. 너무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지금 10살 된 아들이 있어요. 아이 낳고 지금까지 혼자 아이를 키웠고요, 결혼과 이혼을 너무 일찍 겪어버렸어요. 그 어느 누구도 내 고통을 대신할 수 없었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다 지치고 말 정도로 너무 가혹했거든요. 길고 긴 전쟁이 시작이 되었어요. 소송이죠. 그 소송도 쉽게 끝나지 않았어요.

그 시간을 어떻게 다 말로 하나요. 나의 삶도 만만치 않았네요.

물론, 지금의 나를 보는 사람들은 내가 아무 일도 겪지 않은 사람으로 봐요. 고민도 없는 줄 알아요. 너무 웃기죠?”


“그럼 좋지 않아요? 고맙지 않아요?”

“맞아요. 그렇게 보이는 내가 너무 고맙고요.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내 삶이 난 고마워요. 다시 만든 삶이라서요.”


“저도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더 빠릅니다.”

“ 네? 뭐가 더 빨라요? ”

나는 그의 말에 동공이 커진다.


“지금 5학년 딸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


그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어이없으면서 반가운, 그리고 안도의 감정이 섞인 짧은 웃음이었다. 그런데, 그다음 바로 이어지는 그의 말에 내 머릿속은 순간 하얗게 되고 말았다. 하얀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잠시 멍한 상태다. 귀에서 윙. 솜뭉치가 내 귀를 막고 있는 듯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입니다.”

결혼과 이혼이 두 번이라는 그의 말에 나의 고개가 떨어지고 만다. 탄식이었을까, 놀람이었을까. 그때의 느낌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가 이 일을 하게끔 하고, 다시 그를 흔들었다는 그 한 사람은 두 번째 아내였다.

그리고 그에게 되물었다.


" 결혼이..... 그렇게 쉽던가요?"

" 아니요. 쉽지 않습니다."

가슴이 아팠다. 두 번이라는 그의 과거에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회오리가 나를 휘감았다.

그와 마주 앉아 그런 얘기를 나누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도 그랬다. 술 한잔 하고 말해도 될까 말까 한 이런 얘기를 늦여름 어느 날. 월요일. 그것도 대낮에 처음 이야기를 나누는 어느 여자와 말이다.


서로 과거의 얘기는 다른 곳으로 이어졌다. 자연스레 책으로 이어졌다. 그는 인문학을 공부하며 평안을 되찾았고 용서와 이해도 자연스러워졌다.


그때 알았다. 왜 그가 하는 이야기가 내가 하는 말로 들렸는지.

사람에게 화를 내지 않으려는 이유, 그것이 부질없다는 것, 내가 그간 지내오면서 마음에 새기고 있는 것들이 어딘가 비슷하다고 느꼈다. 서로 책을 읽는 방법, 종교 등 대화는 여행하듯 이곳, 저곳을 들락날락해도 막힘이 없었다.


그의 커피 교육은 20분 남짓 이루어졌을까. 중간중간 다른 원두를 내려 맛을 음미하며 우리의 대화는 과거와 현재를 그렇게 여러 번 넘나들었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그와 대화를 나눈 지 3시간이 지나가려 한다.


" 밥 먹으러 갈래요? 음.. 커피 값은 제가 낼 테니까 제게 밥을 사 주세요. 어때요?"

" 네! 그래요. 그럴게요. "

나는 흔쾌히 대답했다.


" 무슨 음식 좋아해요?"

" 음.. 밀가루 종류.. 그런 건 피하고 싶어요. 위 기능이 약해요. 그냥 밥 먹으면 좋겠어요. "


" 예민하네요. 저와 식성이 비슷하네요. 미역국 좋아해요?"

" 네! 저 미역국 킬러예요. "

" 그래요? 그럼 거기로 가요. "


그의 차를 타고 유명한 미역국 식당으로 갔다.

전복과 해산물이 소복하게 들어간 뚝배기 미역국에 꽁치 세 마리가 구워져 여러 가지 쌈채소와 맛깔나게 곁들여져 나왔다. 그는 내게 꽁치 살을 발라주며 자기가 먹는 방식을 설명하며 그렇게 먹어보라고 일러주었다. 그와 함께 한 지 5시간이 지나려고 한다. 그는 나에게 한 시간 남짓 커피 이야기만 하려고 했을 텐데 처음 만난 우리는 꽤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


따끈한 미역국과 부드러운 생선 및 바다향기 나는 반찬에 속이 편안하다. 다시 카페로 와서 그는 직원에게 내게 드립 커피 내리는 걸 다시 교육해달라고 말했다.

서로 얘기하느라 교육은 뒷전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일정으로 먼저 이동한다고 인사를 나누었다. 대표가 나간 후 직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커피 내리는 걸 하나씩 잡아주었다. 집에 가면 이제 일정하게 커피 맛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얼굴도 봤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고, 내가 원하는 커피를 내리는 방법도 알았다.

가방을 챙겨, 카페 안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그때 그에게 메시지가 왔다. 커피 교육은 잘 받았냐며, 마지막 인사를 못해서 미안하다며 조심히 올라가라는 메시지다. 다음에 내가 다시 오면 시간을 좀 더 내야겠다고 웃음을 보인다. 고맙다는 말을 그에게 보내고 건강하게 잘 지내라고 인사를 남겼다.


핸들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운전하는 몇 시간 동안 내 마음이 흔들린다. 그를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커지려고 한다. 틈이 없던 내 마음에 공간이 생겨버렸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마음의 창은 쾅쾅 요란하게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했다. 그에게 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제 자리로 돌아가자.”




[ 수년 전 공유 닮은 그를 떠올리며, 잘 살아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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