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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Jul 17. 2021

시계를 주제로 한 시들

시계는 아침부터 똑닥똑닥, 점심과 저녁에도 여전히.


안녕하십니까, 제이한입니다. 시계를 주제로 한 이주의 베스트 시간이네요.

시계는 시간을 상징하는 거의 유일한 사물입니다. 손목시계, 벽시계, 알람시계 등 그 모양과 종류가 다양하지만, 사실 시계는 형태가 중요한 단어는 아닙니다. '사람이 시계를 보고 시간을 확인한다'는 행위에서 오는 특별함이 시계가 가진 시어적 특징이죠.

그렇게 되면 자연히 글의 심상은 시계의 모습과 시간에 대한 인간의 사유로 넘어갑니다. 시침과 분침, 그리고 초침이 각자 다른 속도로 교차하는 경과나 시계의 똑닥거림과 함께 지나는 시간의 흐름이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시간이라는 개념은 언뜻 보기에도 복잡하고 오묘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 이 셋 중 하나만 생각해도 글이 꽉 차는데, 시간은 저 세개를 많든 적든 모두 포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계와 시간을 다룬 글은 내용의 시간적 진행이 여타 글에 비해 눈에 띄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장 이번 베스트만 해도 그렇습니다. 물론 단순히 시간이 흐르기만 하는 글들을 뽑은 건 아니에요. 유구한 시간의 깊이만큼이나 내용에 심지가 있는 작품들이니 즐겁게 감상해주시기 바랍니다.


1. 이켈님의 '시계와 그대는 닮았다'

https://m.fmkorea.com/3733989143
//////////////

한 시간에 한번

마주치는 우리 사이가

이렇게 짧은 줄 알았다면

놓지 말 걸 그랬나봐요


쑥스러운 마음이 겹쳐

더듬거리는 입술도 떨려

그대에게 사랑한다는

이  마음 전하기 힘들어


다시 돌아올 때까지 내가

이 자리에 있을진 모르겠어요

그래도 다른 시간에 나와

마주칠 수 있다면 참 좋겠어요


시간이 흘러서

분에 넘칠 것 같은 벅참

초조해 입술이 말라가는

이걸 뭘로 표현할까요


간지러울만큼 설레어

두근거리게 만드는 그대

아무말도 잇지못해요

이 마음 전하기 힘들어


다시 돌아올 때까지 내가

이 자리에 있을진 모르겠어요

그래도 다른 시간에 나와

마주칠 수 있다면 참 좋겠어요

/////////
시평: 침이 있는 시계의 시각적 특성을 이용해 연심으로 적절히 버무린 시였습니다. 특히 '시간이 흘러서 분에 넘칠 것 같은 벅참', 이 부분에선 언어학적인 품격마저 느껴졌어요.

만나기가 어려울수록 더 애절해지는 사랑. 예나 지금이나 글의 소재로 많이 쓰이는 설정이죠. 그리고 위 글에서 이 설정에 해당하는 인물은 시침과 분침입니다.

한 시간에 한 번, 어디서 만나는지조차 만나기 전엔 알 수 없는 그들의 사랑은 서로 떨어져 있을 때 더 몸집을 키웁니다. 상대는 누구고 또 나 자신은 어떤 존재인지. 그런 생각은 계속해서 뱅글뱅글 돌아가는 원형의 시공간 밖으로 이미 버렸습니다.

잠깐의 만남 뒤에 헤어져야 하지만, 다음 만남도 언젠가는 세상이 미리 점지한듯 찾아올테니 아쉽긴 하나 슬프진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한테 처음부터 인정받은 사랑인 것 같아 운명론적인 숭고함마저 느낍니다.

어찌되었건 그들은 지금 이 공간의 시간을 수호하는 자들이니까요. 그래서 둘은 견우와 직녀가 서로의 소임을 다하듯, 앞으로도 사랑과 시간에 대해서 더 힘을 낼 작정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2. P.dybala님의 '시계'

https://m.fmkorea.com/3737672254
//////////

나는 너에게 시계이고 싶다, 친구야.

너를 구속하지 않고, 그저 네게 매어 함께 하련다.

너의 어제를 함께 지냈고,

너의 지금에 있으며,

너의 내일을 또 함께 하겠다.

어떤 날에는 홀로 남겨질 수도 있겠지만

내가 너를 기억하고 있겠다.

언제든 나를 찾을 때, 그때를 기다리며

또각또각 걷고 있겠다, 친구여

////////
시평: 모든 사람들의 가장 오랜 동반자는 시간입니다. 자기 자신의 시간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시간은 모두에게 부여되어 똑같이 흘러가지요. 그러니 화자는 친구에게 언제나 함께하겠다고 맹세를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실제로 내용도 그렇고요. 인생에서 겪는 굴곡,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 도전과 후회, 만남과 이별. 그 모든 것들로부터 말미암은 일로 인해 혹여 다른 친구를 멀리하게 되더라도, 자신만큼은 시간처럼 당연한 존재로서 어떤 방식으로든 곁을 지키겠다는 말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3. 신현빈님의 'loop

https://m.fmkorea.com/373065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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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똑같이 움직이던 그가

어느 순간, 그자리에 멈춘 것엔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겠지

아마도 그건, 움직이기 싫어서겠지


시계 방향도, 반시계 방향도,

모든 것이 그에겐 억지였으니

그래서 그가 내린 결론일거야


하지만 이것도

결국은 멈추어버린,

시계일텐데

/////////////
시평: 시계의 침은 역할을 다할때까지 시계 속 공간을 돕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1월부터 12월, 북반구와 남반구, 언제 어디서나 시계는 같은 방향으로 돌아갑니다.

만약 시계침에 인격이 있다면 그는 자기 삶을 쳇바퀴같다고 여길겁니다. 여유도 재미도 없이 그저 해야 하는 일을 반복할 뿐인 기계적인 삶. 그리고 우리 주변엔 시계와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화자가 말하는 '그'는 수많은 쳇바퀴 중에서 하나를 돌리고 있는 시계침일 뿐이죠. 움직이는 걸 그만두어도 처지는 똑같습니다. 햄스터가 쳇바퀴 돌리는 걸 멈췄다고 해도 쳇바퀴의 이름이 그대로인 것처럼, 시계바늘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시계가 아니게 되진 않으니 말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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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베스트도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인생이 '시간을 사람의 오감으로 물들이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에서 시간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을 뿐더러, 그렇다고 시간이 인생을 붙잡고 주도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이미 많이 흐른 시계를 보고 놀라 마음이 급해질 순 있어도 결국 오감을 가진 쪽은 시간이 아니라 우리들입니다. 물드는 쪽도 우리가 아니라 시간이고요. 우리는 붓과 물감을 들고 있으니 시간을 도화지처럼 가꾸면 됩니다. 어떤 그림이 나올지는 끝까지 알 수 없겠지만요.

다음 주에도 좋은 작품들과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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