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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Aug 08. 2021

번개를 주제로 한 시들

찰나에 담긴 아름다움

안녕하십니까, 제이한입니다. 번개를 주제로 한 이주의 베스트 시간이네요.

번개는 자연물로써 떠오르는 이미지를 고려하고 보면 다소 충격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입니다. 현실에 존재하는 시간도 찰나에 가까워서 가늘고 긴 속성의 단어들과는 완벽한 대척점에 서 있는 주제이기도 하고요.

글의 소재로 쓰일 땐 외향적이고 능동적인 색깔이 짙습니다. 이는 번개가 시각적, 청각적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어두컴컴한 하늘 속에서 굉음과 함께 찰나의 빛을 내며 떨어지는 현상, 옛날 사람들은 현상의 결과 이상으로 번개를 두려워했을 겁니다.

따라서 번개는 쓰일 때마다 자연스럽게 글의 분위기를 주도하게 됩니다. 곁가지로 나오기에는 존재감이 너무 크거든요. 여러모로 잔잔함과는 거리가 멀기도 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 주는 번개의 속성 중 하나를 따와서 글에 덧씌운 작품이 많았습니다.

그럼 이번 주 베스트에 오른 글들을 소개하겠습니다.



1. 판콜님의 '마음이 번개처럼 전해지는 요즘에도'

https://m.fmkorea.com/3791331334

////////////////

벼락 같이 그대 곁으로 간
마음 잘 받았나요?

고개를 들어 당신을 한번 쳐다볼
그 떨림의 시간에
톡톡
결코 짧지 않은 하루 이야기가
찾아갈 수 있다는게
참 신기한 일이란 말이에요

보이지 않는 전류를 따라
추억을 더듬어 보는
글자 하나하나가
번개가 치듯이
불현듯 떠올랐답니다

찰나의 순간
아이가 보채듯
당신의 마음을 두드렸지만
그 동안에도
마음은 전파를 타고
어디든 들렀는지 몰라요.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곳은
당신이 입은 옷깃이 살랑거려
아직도 꽃내음이 따뜻하네요.

당신과 마주보고 웃었던
교실은 아직 수업시간이라
햇살로 반쯤 잠겨 깜빡 졸았나봐요.

당신의 알 수 없던 표정에
미소 지을 수 밖에 없었던
골목길에서는 오늘도 길을 잃었답니다.

한 순간 번개처럼
마음이 지나가는 요즘에도
사랑은 설렘을 맴돌고

마음이 번개처럼 전해지는 요즘에도
당신은 여전하네요.
//////////
시평: 같은 1분 1초라도 그 시간들에는 각각의 농도가 다 다릅니다. 그리고 농도의 짙고 옅음에는 사랑의 유무가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한 편이죠. 번개가 치는 것처럼 짧은 순간에 전해진 마음. 그러나 번개가 관통하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불길은 오랫동안 타오릅니다.

포근한 느낌이 주류인 서정시에 번개를 소재로 사용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네요. 잘 읽었습니다.


2. 갈래갈래갈린길님의 '번갯불'

https://m.fmkorea.com/3791947372

///////////////
어느 추운 겨울밤
언제나 타오르던
나의 모닥불은
먹구름 아래서 
비바람을 맞고 있었다


급히 비를 막아보지만
불은 꺼진지 오래
빗물에 섞인 검은 눈물을
조용히 흘러 보내고 있었다


꺼진 불 속에서
아직 젖지 않은 장작 하나
하지만 아직은 비바람 속
그저 추위에 떨 뿐이었다


그 순간 들리는 천둥소리
아직은 먹구름 아래
찰나에 들리는 천둥소리
나는 무언가에 홀린듯
여전히 뻣뻣한 나의 희망을
소리가 난 곳에 놓는다


오라, 번개여
다시 쳐올 번개여
인류가 너를 통해
태초의 불을 피웠듯
나의 마지막 불씨를
너를 통해 피우리라
////////////
시평: 번개와 희망,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는 이 시에서 설득력 있게 섞입니다. 현대 사람들한텐 '비 오는 날 잠시 하늘에서 빛나는 현상' 정도로 치부되는 번개지만, 옛날에는 어땠을까요.

우연찮게 번개로 인해 생긴 불을 접하고 기술의 발전을 처음으로 목도했던 자들이, 정작 다시 피우는 법을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었을 때, 하늘에서 들려오는 천둥소리는 신의 구원이나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즉, 이 글은 그런 사람들이 품은 희망을 담아낸 작품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본디 인간들에게 경외의 대상으로 떠받들어졌던 자연의 위대함을 상기시켜주는 글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3. 아이러브미코토님의 '번개와 함께'

https://m.fmkorea.com/3791942644
///////////

번개와 함께
나는 자라왔다


먹구름 바라보며 유치원 창가에 기댔을 때
단비 맞으며 운동장에 서있을 때
독서실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만끽할 때
부끄러운 고백을 마음 깊은곳 집어넣을 때
우울해지길 원해 밤거리를 걸을 때
서걱서걱 연필소리에 마음이 가라앉을 때
눈 앞에 아른거리는 그녀를 그리워할 때
항상 번쩍이던 번개


나는 자라왔다
번개와 함께

/////////
시평: 기억 속의 시각은 일종의 책갈피입니다. 기억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서 목차에 써있는 대로 '5살 즈음의 기억'을 찾아보았을 때, 그 장의 맨 첫 페이지에는 5살 때 가장 생생했던 일이 삽화처럼 그려져 있을 겁니다.

시각이 책갈피라면 그 책갈피는 최대한 밝은 색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찾기 쉽죠. 찰나라도 좋습니다. 짧은 순간이기 때문에 얇은 책갈피가 한장 한장 사이로 파고들 수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치고 난 뒤 한동안 잔상이 남을 정도로 환한 빛을 내는 번개는 책갈피의 역할을 다 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기억에 남는 찰나, 무의식적으로 잊혀진 찰나. 셀 수도 없이 많은 찰나가 모여 만들어진 존재가 바로 우리네 삶의 발자취겠죠. 그러니 화자가 책갈피의 대표격인 번개와 함께 자라왔다고 말하는 건 전혀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

이번 주 베스트는 어떠셨나요. 되돌아보며 생각해봐도  글을 쓰기에 접근성이 상당히 높은 단어였던 것 같습니다. 다른 주에 비해 작품 양이 많기도 했고요. 쉬운 시작은 때때로 구상을 단순하게 만들기도 합니다만 항상 기피할수도 없는 노릇이죠. 뭐든지 밸런스가 중요한 법입니다.

다음 주에도 질 좋은 작품들과 함께 찾아뵈러 오겠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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