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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Oct 31. 2021

이주의 시들-자전거

내가 가는 길은

안녕하십니까, 제이한입니다. 시어 '자전거'를 주제로 한 이주의 베스트 시간이네요.

자전거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친숙한 탈것 중 하나입니다. 살면서 처음으로 몰아보는 교통수단이자 여행길의 향취를 느끼게 해주는 사물이죠.


또한 지나가는 풍경을 다시보게 하기도 합니다. 걷는 것보단 빠르지만 자동차보다는 느리고, 사색을 하기엔 소란스러우면서 그렇다고 생각이 완전히 비진 않는. 애매하고 미적지근한 온도의 단어입니다. 여름에 타면 덥고 겨울에 타면 추운 자전거에 딱 맞는 이미지가 아닌가 싶네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자전거란 시어는 텍스트 내에서 위와 같은 이미지로써 소비됩니다. 더 파고들 여지가 별로 없기도 하고요. 이번에 올라온 글들도 자전거를 물체적인 소재로 차용한 작품이 많았습니다.



그럼 주제탐구는 이정도에서 끝내고 이제 슬슬 베스트로 뽑힌 글을 만나러 가보도록 합시다.





1.함우육포님의 편지



https://m.fmkorea.com/4003816291

////////////


몸 건강히 잘 계십니까.



편지라도 쓰겠다고 주소를 물었지만


당신은 아무 말이 없었기에


보내지 못할 것을 알고도


이 편지를 씁니다.



이따금씩 당신을 만날때마다


어쩐지 소원해져가는 우리를 보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멀어져가는 당신의 뒷모습이 어찌도 그리 서운하던지요.



당신을 보내고 집에 오는 길


문간 한편에는 자전거 한 대가  


비루한 천막을 뒤집어쓴채


쓸쓸히 놓여 있었습니다.



같이 살던 동생이 이사를 가면서


더 이상 타지 않을 것 같아서


언젠가는 가지러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자전거는 그렇게 몇 년이나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처지가 당신을 기다리는


나의 처량한 모습과도 같아서


지나치는 내내 눈을 돌리기가


어찌나 힘이 들던지요.



더운 여름날 친구들과의 여행에서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고 했던


당신에게 한 말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아마도 내가 무척이나 귀찮아 한다고 여기는 눈치였습니다마는-


어질어질한 더위속에 서서 능선을 굽이굽이 타고 넘는


당신의 모습을 눈에 담기 바빴을 뿐 입니다.



나는 아직도 자전거를 탈 줄 모릅니다.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더군요.


또래 친구들이 하나 둘씩 결혼을 하고 차를 모는


요즈음에도 나는 아직도 자전거를 탈 줄 모릅니다.



어쩌면 나만 시간이 얼어붙어서


아직도 그때의 당신을 그리워하느라


그래서 나는 성장하지 못하고


그때의 나로 남아서 당신을 기다리나 봅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아직도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을 그만두는 법을 모릅니다.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더군요.


연락이 뜸해진 당신의 소식이 소문처럼 건너건너 들려올


요즈음에도 나는 아직도 당신을 그리워 할 뿐입니다.



어쩌면 언젠가는 저도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겠지요.


문간에서 녹슬어가는 자전거도  


새 주인을 찾을지도 모르고요.



그렇게 되기 전에 꼭 한번은


당신이 미소지으며 날 찾아와서


나의 그리움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몸 건강히 잘 계십시오.


////////////

시평: 빼어난 부분이 한두군데가 아닌 글입니다. 화자 자신의 입장을 자전거에 이입해서 전개하는 시의 방식이나 중간중간에 상반된 단어를 집어넣어 풍부한 계절감을 부여하는 내실, 자전거와의 관계성을 갈무리하는 마지막 부분까지. 긴 호흡의 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매끄럽게 읽혔습니다.


자전거가 새 주인을 찾아서 집을 나가는 날이 오면, 화자도 자전거의 뒤를 따르게 될까요.


잘 읽었습니다.





2. sakgofbd님의 '세발자전거'


https://m.fmkorea.com/4013100818

/////////


나는 어릴 때 늘  


작은 세발자전거만 탔다.



형들은  


고작 바퀴가 두개밖에 안 달린 커다란 자전거를 타고



학교도 가고


묘기도 부리고 특히나,


정말 빨랐다.


멋졌다.



내가 그 형들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형들처럼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


무서웠다.


떨어지면 어떡하지?


넘어지면 크게 다칠텐데



도저히 페달을 밟을 엄두가 나질 않았다.


나는 그 속도를 감당하기도,


가끔 묘기를 부리기도 싫었다.



그렇게 나는 계속 세발자전거만 탔다.


가만히 있어도 무너질 일 없는,


위험하지않고, 아플 일도 없는


세발자전거를 타고 있다.


//////////

시평: 세발 자전거는 네발 자전거도 아직 타기에 이른 아이들이 쉽게 탈 수 있는 자전거입니다. 그리고 이 세발과 네발의 차이가 작품의 굵직한 심지를 지탱하죠.


보통 네발 자전거는 성장을 은유합니다. 언젠가 보조바퀴를 떼고 두발 자전거가 될 미래를 담고 있죠. 그걸 타는 아이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세발자전거는 다릅니다. 더 커지지도 빨라지지도 않고, 그 상태 그대로 나아갑니다.


화자 자신의 두려움이 성장할 가능성을 막고 있는 겁니다. 그 두려움을 드러내주는 물건이 바로 세발 자전거고요. 직접적인 비유라 더 강렬하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3. 테사다스님의 '자전거'



https://m.fmkorea.com/3984374076

//////////////


패달을 밟는다. 힘차게 밟는다.



밟은 만큼만 딱 그만큼만 앞으로 나간다.



달리는 자전거 위 나는 무엇인가 ? 



몰라서 패달을 또다시 밟는다. 내가 원하는 만큼 밟고 원하는 만큼만 간다.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오로지 패달을 밟는 발의 의지뿐이다. 



호흡이 가파지고, 심장 박동이 두근두근 요동친다. 두근거림이 터질 때쯤 패달을 멈춘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자전거다.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다. 하는 만큼 갈 수 있는 나는 자전거다. 



아 내리막길이다.  


//////////////

시평: 나름대로 액셀과 브레이크를 갖췄지만, 그게 항상 안전을 보장해주진 않습니다. 자전거가 내 것일뿐 달리는 길마저 소유할 순 없는 법이니까요.


자기 의지대로 가지 않는 여로는 언제나 미지의 두려움으로 가득합니다. 갑자기 닥친 내리막이 아는 길이라면 잠깐동안의 스릴을 즐기면 되지만 대개의 경우 모르는 길일 때가 더 많습니다. 자신감을 꺾는 반환점이 찾아온다는 뜻이죠.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자동차랑 부딪혀 차체가 부서질 수도 있고 아무런 장애물 없이 빠르게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다음 몇 문장을 미정으로 남긴 채 끝난 이 시는 읽는 이로 하여금 상상할 여지를 건넵니다.


우리가 탄 자전거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또 어느 정도의 속도로 가고 있는 걸까요. 위험한 내리막과 가파른 오르막이 나타나면 어떻게 할까요. 우리의 페달은 언제 어디에서 멈추게 될까요. 그런 생각들이 떠오르는 시였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한주 쉬고 돌아온건데 뭔가 굉장히 오랜만에 쓴 것 같네요. 이번 주 베스트는 어떠셨나요. 모쪼록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에도 울림이 있는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자전거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친숙한 탈것 중 하나입니다. 살면서 처음으로 몰아보는 교통수단이자 여행길의 향취를 느끼게 해주는 사물이죠.


또한 지나가는 풍경을 다시보게 하기도 합니다. 걷는 것보단 빠르지만 자동차보다는 느리고, 사색을 하기엔 소란스러우면서 그렇다고 생각이 완전히 비진 않는. 애매하고 미적지근한 온도의 단어입니다. 여름에 타면 덥고 겨울에 타면 추운 자전거에 딱 맞는 이미지가 아닌가 싶네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자전거란 시어는 텍스트 내에서 위와 같은 이미지로써 소비됩니다. 더 파고들 여지가 별로 없기도 하고요. 이번에 올라온 글들도 자전거를 물체적인 소재로 차용한 작품이 많았습니다.



그럼 주제탐구는 이정도에서 끝내고 이제 슬슬 베스트로 뽑힌 글을 만나러 가보도록 합시다.





1.함우육포님의 편지



https://m.fmkorea.com/4003816291

////////////


몸 건강히 잘 계십니까.



편지라도 쓰겠다고 주소를 물었지만


당신은 아무 말이 없었기에


보내지 못할 것을 알고도


이 편지를 씁니다.



이따금씩 당신을 만날때마다


어쩐지 소원해져가는 우리를 보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멀어져가는 당신의 뒷모습이 어찌도 그리 서운하던지요.



당신을 보내고 집에 오는 길


문간 한편에는 자전거 한 대가  


비루한 천막을 뒤집어쓴채


쓸쓸히 놓여 있었습니다.



같이 살던 동생이 이사를 가면서


더 이상 타지 않을 것 같아서


언젠가는 가지러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자전거는 그렇게 몇 년이나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처지가 당신을 기다리는


나의 처량한 모습과도 같아서


지나치는 내내 눈을 돌리기가


어찌나 힘이 들던지요.



더운 여름날 친구들과의 여행에서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고 했던


당신에게 한 말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아마도 내가 무척이나 귀찮아 한다고 여기는 눈치였습니다마는-


어질어질한 더위속에 서서 능선을 굽이굽이 타고 넘는


당신의 모습을 눈에 담기 바빴을 뿐 입니다.



나는 아직도 자전거를 탈 줄 모릅니다.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더군요.


또래 친구들이 하나 둘씩 결혼을 하고 차를 모는


요즈음에도 나는 아직도 자전거를 탈 줄 모릅니다.



어쩌면 나만 시간이 얼어붙어서


아직도 그때의 당신을 그리워하느라


그래서 나는 성장하지 못하고


그때의 나로 남아서 당신을 기다리나 봅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아직도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을 그만두는 법을 모릅니다.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더군요.


연락이 뜸해진 당신의 소식이 소문처럼 건너건너 들려올


요즈음에도 나는 아직도 당신을 그리워 할 뿐입니다.



어쩌면 언젠가는 저도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겠지요.


문간에서 녹슬어가는 자전거도  


새 주인을 찾을지도 모르고요.



그렇게 되기 전에 꼭 한번은


당신이 미소지으며 날 찾아와서


나의 그리움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몸 건강히 잘 계십시오.


////////////

시평: 빼어난 부분이 한두군데가 아닌 글입니다. 화자 자신의 입장을 자전거에 이입해서 전개하는 시의 방식이나 중간중간에 상반된 단어를 집어넣어 풍부한 계절감을 부여하는 내실, 자전거와의 관계성을 갈무리하는 마지막 부분까지. 긴 호흡의 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매끄럽게 읽혔습니다.


자전거가 새 주인을 찾아서 집을 나가는 날이 오면, 화자도 자전거의 뒤를 따르게 될까요.


잘 읽었습니다.





2. sakgofbd님의 '세발자전거'


https://m.fmkorea.com/401310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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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 늘  


작은 세발자전거만 탔다.



형들은  


고작 바퀴가 두개밖에 안 달린 커다란 자전거를 타고



학교도 가고


묘기도 부리고 특히나,


정말 빨랐다.


멋졌다.



내가 그 형들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형들처럼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


무서웠다.


떨어지면 어떡하지?


넘어지면 크게 다칠텐데



도저히 페달을 밟을 엄두가 나질 않았다.


나는 그 속도를 감당하기도,


가끔 묘기를 부리기도 싫었다.



그렇게 나는 계속 세발자전거만 탔다.


가만히 있어도 무너질 일 없는,


위험하지않고, 아플 일도 없는


세발자전거를 타고 있다.


//////////

시평: 세발 자전거는 네발 자전거도 아직 타기에 이른 아이들이 쉽게 탈 수 있는 자전거입니다. 그리고 이 세발과 네발의 차이가 작품의 굵직한 심지를 지탱하죠.


보통 네발 자전거는 성장을 은유합니다. 언젠가 보조바퀴를 떼고 두발 자전거가 될 미래를 담고 있죠. 그걸 타는 아이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세발자전거는 다릅니다. 더 커지지도 빨라지지도 않고, 그 상태 그대로 나아갑니다.


화자 자신의 두려움이 성장할 가능성을 막고 있는 겁니다. 그 두려움을 드러내주는 물건이 바로 세발 자전거고요. 직접적인 비유라 더 강렬하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3. 테사다스님의 '자전거'



https://m.fmkorea.com/3984374076

//////////////


패달을 밟는다. 힘차게 밟는다.



밟은 만큼만 딱 그만큼만 앞으로 나간다.



달리는 자전거 위 나는 무엇인가 ? 



몰라서 패달을 또다시 밟는다. 내가 원하는 만큼 밟고 원하는 만큼만 간다.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오로지 패달을 밟는 발의 의지뿐이다. 



호흡이 가파지고, 심장 박동이 두근두근 요동친다. 두근거림이 터질 때쯤 패달을 멈춘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자전거다.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다. 하는 만큼 갈 수 있는 나는 자전거다. 



아 내리막길이다.  


//////////////

시평: 나름대로 액셀과 브레이크를 갖췄지만, 그게 항상 안전을 보장해주진 않습니다. 자전거가 내 것일뿐 달리는 길마저 소유할 순 없는 법이니까요.


자기 의지대로 가지 않는 여로는 언제나 미지의 두려움으로 가득합니다. 갑자기 닥친 내리막이 아는 길이라면 잠깐동안의 스릴을 즐기면 되지만 대개의 경우 모르는 길일 때가 더 많습니다. 자신감을 꺾는 반환점이 찾아온다는 뜻이죠.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자동차랑 부딪혀 차체가 부서질 수도 있고 아무런 장애물 없이 빠르게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다음 몇 문장을 미정으로 남긴 채 끝난 이 시는 읽는 이로 하여금 상상할 여지를 건넵니다.


우리가 탄 자전거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또 어느 정도의 속도로 가고 있는 걸까요. 위험한 내리막과 가파른 오르막이 나타나면 어떻게 할까요. 우리의 페달은 언제 어디에서 멈추게 될까요. 그런 생각들이 떠오르는 시였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주 쉬고 돌아온건데 뭔가 굉장히 오랜만에 쓴 것 같네요. 이번 주 베스트는 어떠셨나요. 모쪼록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에도 울림이 있는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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