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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Oct 11. 2021

이 주의 시들-낙엽

나는 조금도 흩날리고 싶지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제이한입니다. 바스락거리는 가을의 상징, 낙엽을 주제로 한 이주의 베스트 시간이네요.


낙엽은 떨어진 나뭇잎을 뜻하는 한자어입니다. 나뭇잎이 식물로서의 생을 마감하면서 생겨나는 완결성이 주제의 주된 포인트죠. 쓸쓸함을 대표하는 가을의 색채를 더 짙게 나타내주는 존재이기도 하고요. 낙엽의 이미지가 대체로 그렇듯이요.


쓸쓸함의 조건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고, 아무나 함부로 대하는 것. 낙엽은 두 개 다 해당되죠. 새벽에는 청소부의 빗자루질에 쓸리고 아침엔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에 짓밟히고. 점심과 저녁에는 새로 내리는 낙엽의 깔개가 되어 세상에서 잊혀집니다.


누군가는 낙엽을 모아 거름이나 땔감으로 쓸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것은 나뭇잎이었던 시절의 필요와는 다릅니다. 그냥 함부로 써도 되니까 그렇게 쓰는 거죠. 거리의 얼룩이 되든 어딘가에 쓰이든 결국 낙엽은 쓸쓸한 운명을 걷게 됩니다. 원래 그랬던 존재도 아니고 항상 높은 곳에서 빽빽하게 울창한 나무 그늘을 만들어주던 나뭇잎이요. 거기서 오는 대비가 쓸쓸함을 더해주는 듯 합니다.

그래서 이번 주는 글에서 쓸쓸함이 잘 느껴지는 작품, 또는 그 쓸쓸함을 다른 정서로 환기시키는 작품을 베스트로 뽑았습니다. 과연 어떤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같이 살펴봅시다.



1. 이재익벨기에이적님의 '낙엽'


https://m.fmkorea.com/3953472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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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너는 나를


메말려서 불태우고


적셔서 찢어내고


짓밟아서 이겨낸다



나는 네게


떨어지는 순간마저


눈 마주치지 못하고


떨려서 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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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나뭇잎한테 추락은 사람이 맞는 죽음과 비슷한 의미입니다.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운명같은 일이죠. 앞서 떨어졌던 낙엽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충분히 봐왔었고요. 그 때문에 나뭇잎은 떨어지는 순간이 무엇보다도 무섭습니다.


두려움을 느끼기도 전에 드는 마음이 있다면 아마도 그건 쓸쓸함일 겁니다. 그토록 두려워하는 일로부터 도망치지도, 저항하지도 못하는 자신에 대한 무기력. 스스로를 쓸모가 없는 존재로 규정하고 함부로 써도 된다고 여기는 마음. 이 모든 것들이 모여 나뭇잎을 쓸쓸함의 밑바닥으로 떨어뜨립니다. 그렇게 나뭇잎은 낙엽이 되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2. Red님의 '낙엽'


https://m.fmkorea.com/396125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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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락, 거리는 소리.



분홍빛 꽃들과 계절을 물들이던 네가


왜 여기 힘없이 쓰러져 있느냐.



꽃을 잃고서 혼자 시들어만 가다


뒤틀린 채로 속절없이 떨어져만 왔구나.



다시 바스락, 거리는 소리.



너는 밟히고 눌려 잘게 부수어지고,


이내 온전히 썩어 스며들고야 말겠지.



그러고는, 나는 다음 봄에 네게 다시 물을 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 밟히고 쓸리며 이내 썩어갔던 네가


왜 여기 푸르게 돋아나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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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낙엽이 지닌 고유의 이미지를 그대로 이어받는 듯 하다가 막바지에 살짝 비트는 글입니다. 생의 순환이 나뭇잎에게도 적용이 된다면, 희망이 확실하게 보이겠군요.


낙엽에 관해 가지는 쓸쓸함의 정서는 한꺼풀 벗겨보면 아예 다른 뜻이 될수도 있습니다. 낙엽이 그저 바닥에서 썩어가는 게 아니라면. 다음 해에 날 풀의 태동에 기꺼이 보탬이 되려하는 것이었다면.


그렇다면 그건 보이는 현상만 같다 뿐이지 뜻은 완전히 달라지고 말겠죠. 그 뜻 또한 한꺼풀 벗기면 어떻게 될지모르지만 말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3. 범과야차님의 '사계'


https://m.fmkorea.com/3946737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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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스물이 된 어린 아이는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않은 순수한 모습



찰나의 순간 비치는 나비의 날갯짓을 보며


설렘과 사랑을 느끼고



스무살에 찾아온 열병과 같은 사랑에


심장에 내린 장마와 먹구름



나비에 대한 찬가를 적고 지우길 수십번


어떤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여보아도



전할수 없던 자신의 서툰 글솜씨를 원망하며


가을 낙엽에 고이 담아 겨우내 적어낸 글귀에는



사랑한다는 네 글자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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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나비와 낙엽, 공통점이라곤 손으로 구기면 찝찝할 것 같다밖에 없어보이는 이 두 단어가 하나의 시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꽤 훌륭한 조화를 이뤄냈죠.


설레이는 마음은 언제까지고 이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오래 간다 한들 끝나는 지점이 나타나죠. 사랑은 부질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사랑 역시 그 일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지금 품은 마음이 소중하다면 그게 변하기 전에 표현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화자는 늦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써도 마음을 오롯이 전할 수 없었던 그는 봄 여름을 떠나보내고 난 가을 무렵에서야 겨우겨우 글을 적습니다. 나비도 아니고, 하물며 살아있는 존재도 아닌 나뭇잎에.


하긴 이미 끝난 사랑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도화지가 달리 있을까 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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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오는 시간이 조금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친구 집에 휴대폰을 놔두고 오는 바람에... 찾으러 갔다오고나니 어느새 이런 새벽이네요. 다음부턴 칼같이 지키겠습니다.


어찌저찌 이번 주 베스트도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다들 어떻게 보셨나요. 시어의 분위기가 제대로 잘 전해졌다면 좋겠습니다. 나름 고심해서 정한 주제였거든요.


다음 주에도 기대해주시는 만큼 좋은 베스트로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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