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제이한입니다. 다들 추석 명절은 잘 지내셨는지요. 명절을 주제로 한 이주의 베스트 시간입니다.
명절은 전통적으로 해마다 뜻을 지키며 즐기는 날입니다. 그 나라의 계절, 문화, 관습 등 다양한 유래에 의해 생겨난 개념이죠. 기본적인 의의는 이렇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주기적으로 친척들이 모여 가족애를 다지는 날로 통합니다. 그래서 명절이란 단어는 일단 평면적으로 놓고 봤을 때 화기애애한 주제가 맞습니다. 명절 증후군이니 명절 스트레스니 잔소리니 하는 부차적인 것들을 감안해도요.
그러나 그 평면의 반대쪽, 명절의 온기를 받지 못한 사람들 쪽으로 초점을 맞추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일이 바빠서, 가족들 간의 사이가 나빠서, 혹은 그 이외의 이유로 외로운 명절 연휴가 되면 명절은 의미를 잃고 단순해집니다.
원래 소외감은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를 느낄 때 체감이 확 되는 법이죠. 모두가 한 곳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때에 나만 혼자 집에 있다면. 외로움은 느껴지는 것을 넘어 사무치는 수준으로 마음 속을 파고듭니다. 그러면 사람은 자연히 '명절에 소외감을 느끼지 않았던 시절'을 추억하죠.
즉, 명절을 어떤 방식으로 보내든 명절은 추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성을 가집니다. 주제를 다루는 정서가 행복함, 그리움 등으로 나눠질 수는 있어도요. 따라서 이번에는 그 명절의 정서를 잘 표현한 글을 베스트로 뽑았습니다.
그럼 어떤 작품들이 이번 추석을 장식했는지 지금부터 같이 살펴볼까요.
1. 시써보려는인간님의 '명절'
https://m.fmkorea.com/3929293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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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기억하오
신문지를 바닥에 넓게
펼쳐 놓고
옹기종기 모여
전을 부치던 것을 기억하오
전을 부치다가
유독 맛있어 보이던
내가 제일 좋아한다고
깻잎전 하나를 건내주시던
송편을 빚을때면
난중에 예쁜 자식 낳겠다고
웃으며 말씀해주시던
설거지 중에도
다가가면
시원한 오렌지 주스를
따라주시던
이제는 볼 수 없는 그 모습을 기억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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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명절날의 익숙한 풍경을 추억하는 글입니다. 할머니 댁에 놀러간 다음날, 이른 아침에 깨서 거실로 나가보면 코끝으로 들어오는 전 부치는 냄새, 탕국 끓는 냄새. 귀에 들려오는 할머니의 정겨운 인삿말, 명절마다 보지만 볼때마다 반가운 부엌.
음식에는 맛이, 맛에는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제사상을 보면 할머니의 얼굴이 떠오르고, 제사음식을 먹으면 음식을 준비하신 어른들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저도 명절날 제사음식을 못 먹은지가 벌써 10년이 되어갑니다. 다 읽고 나니 괜시리 코가 찡해지는 글이었네요. 역시 글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2. 달그밤님의 '명절'
https://m.fmkorea.com/3942515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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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하게 추운 겨울 아침이나
묘하게 서늘해진 가을 아침에
낯설고 가벼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면
비로소 명절이 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적막하고 한산했던 동네의 곳곳이
따듯하고 정겨운 활기가 도는 것이
실로 오래간만이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시끌벅적한
일상에서 벗어난듯한 소음이
오늘은 부럽고 부드럽기까지 하다
좁디 좁은 같은 땅에 살면서
같은 하늘을 맞이한 오늘
그럼에도 길을 나서지 못한 나는
오늘도 일찍 일어나 아침을 맞이할 부모님께
밥은 잘드시는지 안부를 물으며
수화기 너머로 마음을 담아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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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쓸쓸한 명절' 하면 떠오르는 모습이죠? 모두가 시끌벅적한 명절날이지만 화자는 혼자 고요한 하루의 시작을 알립니다. 평소같으면 듣기 싫어했을 소음도 오늘은 그저 따스해보이기만 합니다.
부모님은 이제 꺼내기 힘든 말을 하지 않아도 못난 자식을 이해해주십니다. 전화라도 해주는 게 어디냐며 한 마디 보태어 자식의 부담을 덜어주려 하시죠. 자식 또한 그런 부모님의 마음을 알기에 본심을 숨기고 안부인사만을 건넵니다.
행복은 본래 정해진 형태가 없지만, 형태로 드러나야 더 와닿을 때는 있습니다. 명절같은 날이 바로 그때죠. 다음 명절에는 전화기 너머가 아니라 직접 만나 인사를 전할 수 있기를. 모두 힘냅시다.
잘 읽었습니다.
3. 아떽띠해님의 'ㅁㅕㅇㅈㅓㄹ'
https://m.fmkorea.com/3928256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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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칠 안되는
여 백의 시간.
여 흥을 잃은
저 마다의 절기는 삭막하기 그지 없다.
어 릴적 따스했던 분위기와 기억은
러 시아가 소련이던 시절만큼 먼 얘기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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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n행시는 풍부한 어휘력과 재치가 필수적인 글입니다. 명절의 화목함을 잃어버린 지금의 삭막함을 표현하는 한편으로 행복했던 어린 시절도 추억하기 힘들만큼 멀게 느껴진다고 말하는 화자. 참으로 쓸쓸해보입니다.
덤덤하게 읽다가 마지막 줄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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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베스트는 어떠셨나요. 저한테는 명절의 느낌이 오롯이 전해지는 한 주였습니다. 몸은 힘들고 마음은 위태했던 며칠이었지만...지나고나서 보니 지낼만 했던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