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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Dec 06. 2021

이주의 시들-춤

리듬에 맞춰 원 투 쓰리


안녕하십니까, 제이한입니다. 이주의 베스트 '춤' 시간이네요.


춤은 사람이 몸으로 보여줄 수 있는 행동들 중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아름다운 표현방식입니다. 부분 부분 어디 하나 의미가 없는 곳이 없는, 치밀하고 섬세한 예술이기도 하지요.


춤을 춘다는 것은 글자가 써지지 않는 펜으로 글을 쓰는 것과 비슷합니다. 몸을 움직일 때만 모습이 존재할 뿐 다음 동작으로 이어지는 순간 전 동작의 궤적은 말끔하게 사라지고 말죠. 큰 몸짓과 아름다움에 대비되는 '순간의 예술'이 춤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때문에 춤은 꽃잎, 불꽃에 자주 비유됩니다. 일순간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미와 그 뒤에 사그라드는 덧없음이 무척 닮았으니까요. 이처럼 춤은 짧고 굵은 미적 활동이지만, 감상이 여느 예술보다 진하게 남습니다. 유명한 문학 작품 중에 춤을 소재로 한 것들이 많은 게 그 증거죠.


그럼 이번 주 베스트에 오른 작품에는 무엇이 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1. 이켈님의 '겨울의 윤무'


https://m.fmkorea.com/4101548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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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너머 휘날리는 칼바람 앞에서


움직이는 겨울의 윤무를 바라볼 무렵


보릿고개 같았던 일 년의 여정도


지워져 넘어가고 있었다



부서지는 힘찬 희망


변해가는 작은 소망


그것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의 마음은 여려서 상처 받기를 반복할 뿐



덮쳐오는 풍파 속에서  


시대를 마주해야 한다면  


새벽녘 그림자처럼 온 세상 드리우는


시린 시련이 준 간주곡에 몸을 맡길 수밖에



오페라의 유령처럼 사라져 간


꿈들에 대해 노래를 부르며


또다시 날아오는 민들레 씨앗처럼


믿음을 심으며 스스로 일어서는 나를 그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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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춤을 비유적 표현으로 사용하면 어떤 효과를 볼 수 있을까요. 일단 글 전체에 감성적인 시선을 부여하는 게 가능합니다. 겨울이 몰고오는 것이 단순한 추위라면 그저 춥게만 느껴질 뿐이지만, 그걸 겨울의 윤무라고 표현하면 차가워지는 육신을 뒤로하고 지나간 1년을 더듬어 볼 수도 있는거죠.


겨울의 풍파 속에서 이미 여러 번 상처를 받은 화자. 그러나 치명상은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앞으로도 닥쳐올 시련이라면 겨울의 칼바람을 선율 삼아 춤을 추는 편이 훨씬 희망적이겠죠.


잘 읽었습니다.




2. 솔샤르해바라기님의 '왈츠'


https://m.fmkorea.com/4106486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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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에 몸을 맡기며



오른손으로 그대의 가녀린 손을 잡고



왼손은 그대의 잘록한 허리를 감싸며



쿵짝짝 쿵짝짝,



하루에 피어난 우리의 사랑을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을 담아



원스텝, 투스텝,



지금껏 바라본 모습보다는



앞으로 바라볼 봄을 그리며



빙글,



그러다



품에 안긴 인형같은 그대



그 고운 얼굴 속에서



사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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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의 메인 빌런 '한스 대령' 역할을 맡은 크리스토프 발츠 배우를 처음 봤을 때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발츠(왈츠)가 왈츠를 추며 내게 다가왔다."


보고 있는 상대의 마음을 빼앗는 매혹의 춤. 왈츠가 가진 보편적인 이미지와 발츠 배우의 연기력을 대번에 느끼게 해주는 말이었죠.


이 시를 읽으니까 갑자기 저 말이 떠오르네요. 그만큼 춤에 대한 표현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왈츠의 이미지, 추는 사람의 설레이는 마음이 생생하게 느껴졌어요.


잘 읽었습니다.




3. 이재익벨기에이적님의 '춤'


https://m.fmkorea.com/410458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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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손을 맞잡아줄래요


당신이 중심을 잃어 기울때는


허리를 감싸서 일으키고


당신이 길을 잃어 제자리를 돌 때는


넘어지지 않게 잡아줄테니


지금은 서로 눈을 바라보면서


손 마디에 손 마디를 넣어


깍 지어줄래요



나와 같이 발을 맞추어줄래요


속도가 달라 서로의 발등을 밟아도


언제나 내가 아래에 있을테니


지금은 서로 손을 깍지어진 채 웃으며


같이 바라보던 별 사이를 걸음으로 이어


밤 하늘을 우리의 자리들로 수놓아 줄래요



세상 사람들 모두 이 짓이 무용하다며 혀를 차지만


무용만큼 아름다운 것이 세상에 또 어디있겠어요


발레처럼 우아하거나 탱고처럼 열정적이지 못하더라도


나는 포고처럼 항상 제 자리에서 뛰고 있을게요



언젠가는 손을 깍지은 채로 발 맞춰 걸어가요


실수하더라도 괜찮아요 전부가 무용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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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애정을 춤으로 발산하는 두 사람과 무용과 무용, 두 단어를 이용한 재치있는 말장난으로 춤의 존재가치를 역설하는 방식이 좋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원래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겐 꼭 하나씩 멸칭이 있었습니다. 글쓰는 사람은 글쟁이, 그림 그리는 사람은 글쟁이,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은 딴따라. 이밖에도 많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무용하기 때문이죠. 그거해서 뭐하냐. 밥은 먹여주냐. 쓸데없다. 그게 무슨 가치가 있냐. 이런 말에 반박을 하는 사람도 있을거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저도 뭐, 고리타분하게 입씨름하고싶진 않아요.


그리고 이 시의 화자는 이미 몸으로써 답을 보여주고 있고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기 때문에 춤을 춘다. 간단명료한 답이죠.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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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베스트는 어떠셨나요. 춤이 소재였던만큼 글에서 흥겨움이 느껴졌던 한 주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예술과 관련된 소재는 언제나 중박이상은 쳐주는 것 같아요.


다음 주에도 좋은 작품들과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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