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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Feb 20. 2022

이 주의 시들-편지

받아주세요, 내 모든 걸.


안녕하십니까, 제이한입니다. 편지를 주제로 한 이주의 베스트 시간이네요.

편지는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적어 상대에게 보내는 통신수단입니다. 구시대적인 방식인 동시에 추상적인 로망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단어죠.

입 밖에 내지 못하는 말도 문자로 하면 어떻게 써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한번쯤은 해본 카톡 고백이나 사과 쪽지들은 모두 이런 생각에서 나온 발상일 겁니다. 그리고 편지란 수단은 그 생각들의 집합체같은 존재지요.

종합해보자면 표면화, 사물화된 기억 중에서 제일 감성적인 물건이 바로 편지인 셈이죠. 글로라도 남겨야 됐을 만큼 중요한 얘기들은 대개 감정을 건드리는 것이니까요.

자, 그럼 이제 이번 주 베스트에 오른 글들을 소개하겠습니다.


1. 아떽띠해님의 '편지'

https://m.fmkorea.com/4328866440
///////////////

펴 볼일 없을 줄 알았지.


여 전히 사랑스러운 글씨,


녀 (여)린 감상을 건드리는 내용.


지 나간 옛일로 접어두기엔


이 토록 생생한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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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지나간 일은 양자 간 모두에게 이미 옛날이 되어버린 사건입니다. 그런데 상대는 잊어버리고 자신은 잊지 못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뜸을 들일 필요도 없죠. 편지 때문입니다.

사랑스런 글씨와 가슴 속을 상냥하게 어루만지는 밀어들, 다시 떠오른 기억, 모두 편지를 폈기에 벌어진 일입니다.

하지만 상대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건, 원래부터 그랬을지도 모르죠.

잘 읽었습니다.



2. 판콜님의 '13월의 편지'

https://m.fmkorea.com/4333604377
//////////////

할 수 있다는 기대를 잃어버린 사람은
띄우지 못한 말들을
하늘에 묻힌
텅 빈 사람.


나지막하게 품은 마음과
제풀에 지친 침묵을
창문 맡에 걸고선
몰래 별빛으로
말려두려다
놓쳐버리곤 합니다.



별과 구름이 스치는
그 찰나에도
되잡을 수 없게 되는
사람과의 시차
때문에,
보고 싶단 마음이 깃든
나날을 나즈막이 접어
13월로 보냅니다

비와 눈
태풍과 아지랑이
간절한 바람이 가득 하였던 

그 달,
반나절의 즐거운 편지와
또 한나절의 우울한 편지.



자신을 스스로 미워하는
버거운 후회라
겁장이는
눈을 감아야 봅니다.
나에게 보여주지 않는
소란들과
어쩌다 찾아오는
무심한 미소
그리고
문득 눈빛 속에서
별처럼 깜빡였던
필요의 부재.


바라보기만 할 뿐인
13월에는 써 내립니다.
눈을 감으면
찾아오는 밤과
떠오르는 당신을

////////////
시평: 혼자서만 읽을 요량으로 써본 편지. 본래라면 메모지나 도화지 귀퉁이에 적었어야 했던 말들. 하지만 화자는 실수로 편지지에 적고 말았습니다.

전할 목적은 없었지만, 종착지가 없는 편지는 세상에 나올 이유도 없는 법이죠. 그래서 일단 출발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바람을 타고 창문 밖으로 나섭니다.

그렇게 도착할 곳도, 도착할 시간도 애초에 없었던 종이는 풍향을 따라 1년 12개월동안 하늘을 떠돌아다닙니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작자미상 원인미상의 하늘, 종이의 비행이 멈춘 때는 달력을 뛰어넘은 13월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3. 끝없는갈증님의 '편지'

https://m.fmkorea.com/4338617627
/////////////

어느 날 누군가 나에게

편지를 부쳐준다면

내 마음 한달은 족히 설렐테지요


현실의 편지들이야

읽기도 골치 아픈 공문들 뿐이라지만


찍어낸 글자가 아닌

삐뚜름히 써진 펜글씨를 본다면

그 날은 밥을 먹지 않아도 되겠지요


어설픈 향이 나마 남은 향지와

어디서 샀었는지 가물한 우표라면

내용이 무슨 상관이겠어요


숨 막힐듯 빠른 이 시절에

고상한 느긋함을 받는다면

그 마음을 받는다면


저도 얼른 편지지를 사야겠어요

이 벅찬 마음을 달래러

/////////////
시평: 누군가가 자신에게 고백하리란 사실을 며칠 전에 미리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그 상대한테 호감이 많든 적든 적잖은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 것입니다.

더구나 고백하는 방식이 낯 간지러운 편지라면? 딱딱한 타이핑으로 친게 아니라, 긴장으로 삐뚤빼뚤해진 필체가 간밤동안 피워올렸던 연심을 그대로 담고 있다면?

이건 뭐 화자 말대로 밥을 안 먹어도 살 맛이 나겠죠. 순백의 마음이 머지 않아 자기한테 올 것을 아는데. 밥이 대수겠습니까. 가슴 벅차하는 것도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그렇다면 화자는 왜 이토록 행복에 겨워하는 걸까요. 그리고 전 무슨 이유로 이 화자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심 어린 편지는 마음의 잉크가 흘러넘쳐야 비로소 쓰여진다는 사실을. 그러한 순정의 정수를 받고 기쁘지 않을 사람이 어딨겠습니까.

옆구리가 시려지는 글이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

이번 주 베스트는 어떠셨나요. 다방면에서 연애세포를 자극하는 작품들이 많이 나온 한 주였네요. 난 뭐가 아쉬워서 이런 단어를 택했을까... 그래도 감성은 기대 이상으로 자극받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음 주에도 좋은 작품들과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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