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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Aug 15. 2020

어느 연인들의 권태기 -상-

짧은 소설

완강하게 쳐진 커튼 사이로 강한 아침햇살이 비쳤다. 여름이 다가오는 시기인만큼 유독 밝은 햇살이었다. 머리 옆에 놓아둔 휴대전화 알람을 끄며 A는 그렇게 생각했다.


'7시...'


옆에 누운 사랑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이불을

개고 화장실로 향한 그녀는 간단히 몸을 씻었다. 오늘 아침담당은 자신이었으니까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했다.


"...z...zz..."


두 사람이 눕기에 충분한 크기의 침대에는 아직 그녀의 애인이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며 곤히 자고 있었다. 학생시절때는 A보다 빨리 깨는 것이 당연했는데 선생님이 된 후로는 일이 힘든지 이렇게 조금 늑장을 부리는 인간미도 생겼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요리를 하는 그녀의 손놀림은 가벼웠다. 그도 그럴것이 오늘은 금요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일하는 평일의 마지막날이었다.


"이번 주말에는 뭐하면서 놀까?"


스크램블 에그를 그릇에 담으며 혼잣말로 막연한 계획을 세우는 A는 행복해보였다. 어제 만든 카레를 전자레인지에 데우면서도 콧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부엌 한켠에 놓아둔 식탁에 아침식사를 다 차린 그녀는 침실로 돌아왔다. 그녀의 애인, B는 아직 꿈나라였다.


"이제 아침이야, 일어나~"


쪼그려 앉아 이불을 돌돌 만채 번데기처럼 잠에 빠져 있는 B를 힘껏 흔드는 A. 사회 초년생의 고달픔이 몸에 배인 그녀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아침은 거르지 말고 챙겨먹자고 했잖아~"


이래서는 진전이 없으리라 생각한 A가 이불을 제쳤다. 이불안에서 B가 딸려나왔다.

이 잠탱아, 하고 그녀가 잠꾸러기의 뺨을 찰싹찰싹 때리니 그제야 눈을 떴다.

자신의 몸을 떠난 이불과 눈 앞의 A를 번갈아 보던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시끄럽게 깨운거 아냐?"


"이렇게까지 하게 한게 누군데!"


A는 B의 손을 잡아끌며 방에서 나왔다.

그런 그녀의 뒤를 졸졸 따르는 B가 말했다.


"나 오늘은 입맛이.."


"내 당번인 날은 무조건 먹일거야! 그렇게 알고 들어."


식탁 의자에 B를 앉힌 A는 옆에 있는 냉장고의 홈바를 열어 텀블러 하나를 꺼냈다.


"정 못 먹겠으면 이거 들고가서 수업 전에 마셔. 조례 시간 전에 짬은 있을거 아냐."


그녀는 A가 내민 텀블러를 받았다.

받는 순간 그녀가 약간 시무룩해진 표정을 지었다.


".....아침도 제대로 먹을테니까 표정 풀어."


그렇게 말하곤 카레에 숟가락을 가져가는 B.

그리고 A는 그 모습을 보며 싱긋 웃었다.

오늘 카레는 둘이서 먹으니 평소보다 더 맛있을 것이다.



"그럼 주말에는 학교 안나가?"


"어, 주말에는 한가할거야."


입안 가득 카레를 넣으며 다행이다, 기뻐하는 그녀를 보며 B는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같이 산지도 벌써 몇년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이 지경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사귄지 얼마 안된 초보커플로 보일것이다.


"그럼 주말에는 뭐 할래? 그럴줄 알고 생각해놓은게 있는데."


B에게 주말의 계획을 묻는 A.

아마 대답을 듣고 적당히 계획을 변경할 생각이다.


"...그냥 집에서 쉬고 싶은데. 어머님은 며칠전에 찾아뵈었으니까."


"야! 우리는 신혼이야? 뭔가 이렇게 둘이서 할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돼! 1박 2일 데이트라든지, 그리고 요즘 네가 피곤해하니까 알아본 테라피마사지라든지, 집에서 박혀있지 말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자, 응?"


묵묵히 그릇의 카레를 다 비운 B는 쉴새없이 말을 꺼내는 A의 말에 답했다.


"네가 그러고 싶다면 따라가도 좋아."



"이미지 관리하는거지? 너도 가고싶잖아!"



"솔직히...네가 그런 데까지 알아봤을줄은 몰랐어. 안갈수도 없잖아."


"그래, 그거면 충분해."


대답을 들은 A는 만족한 표정으로 그릇을 정리했다. 주말에 있을 일을 생각하니 오늘도 잘 버틸수 있을 것 같았다. 싱크대에 그릇을 가져가는 그녀를 B가 불렀다.


"저기..."


"응? 할말이라도 있어? "


"그게 아니라...오늘 컨디션이 안좋아서, 태워줬으면 좋겠는데."


A가 활짝 웃었다.


"오늘 컨셉 너무 좋다. 어린애같아."


"시끄러"


"하하, ...야 빨리 준비해. 시간이 좀 촉박해."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출근시간까지 30분도 남지 않았다. A는 재빨리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



B는 차의 조수석에서 텀블러를 홀짝였다.

A가 직접 갈아준 딸기주스의 맛을 칭찬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지금 통화중이었다. 운전을 하면서 통화라니 학생때였다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잔소리를 했을텐데. 하긴, 그녀가 아니었다면 B는 어른이 된 지금도 똑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네, 언니. 아 예...팀장님. 그게 부르기 편한걸요.

...오늘은 귀걸이 시제품 마감밖에 없을걸요? 더 있다구요? 알겠습니다...네. 제가 유능한 탓이죠. 나중에 봬요~"


올해로 스물 중반의 나이에 접어드는 A와 B는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친구로 지낸지 3년이 되는 고등학교 1학년 여름의 어느날, A가 B에게 고백을 하며 두 사람은 조금 남다른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2학년, 3학년, 그리고 둘은 함께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성인이 되었다.


A는 졸업하자마자 바로 장신구를 전문으로 하는 친척의 회사에 취직했다. 손재주도 좋고 매사에 활기찼기 때문에 회사의 작은 사회에 빠르게 적응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이기도 했고 지금 얘기한 팀장이라는 사람과도 친하게 지냈다. B는 가끔 그 팀장이라는 사람이 A와 길게 통화하는 것을 질투하고는 했다. 다행히 오늘은 통화가 길지 않았다.


통화를 끊은 A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귀찮게 됐네..."


그런 그녀의 귀를 B가 손으로 만졌다.


"왜 그래?"


"아니...무슨 귀걸이인가 싶어서."


그녀는 A의 귀에 걸린것이 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아, 딥 아쿠아 마린. 우리 회사 제품인데 마음에 들어서. 어제 바꾼건데 이제 눈치챘네?"



장난스럽게 미간을 찌푸리며 B를 탓하는 A.

B는 시시하다는 듯이 흘러넘기며 답했다.


"어제부터 알고는 있었어. 말을 안한것 뿐이지.

그러는 넌 내가 어딜 바꿨는지 알아?"


B가 긴 머리를 쓸어넘기며 A를 응시했다.

'맞출테면 맞춰봐'같은 당당한 얼굴을 하고서.



"으음...스무살때 딴 운전 면허 시험보다 더 어려운데...립스틱 색이 바뀌었나...?"


"틀렸어, 사실은 어제랑 똑같아."


미친, A가 김빠진 소리를 내었다.


"아 맞다. 이거, 맛있네."


B는 아까 말하지 못한 주스에 대한 감상을 말했다. A는 만족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 사거리 앞 신호에 걸려 서게 되었다.


"그건 그렇고 너 오늘 일이 좀 있는거 같은데...바빠?"



"바쁘긴한데 마치고 널 못 데리러 갈 정도는 아니야."


B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A도 의문에 의문을 표하듯 물음표를 띄웠다.


"나...데리러 와달라는 말은 안했는데."


"얼굴에 써져 있어서. 데리러 가지 말까?"



"아냐. 고마워."


B는 얼굴을 붉힌채 고개를 창가로 돌렸다.

속내를 들킨게 부끄러웠는지 귀까지 새빨갰다.

A는 그런 반응을 보인 그녀가 귀여워서 자기도 모르게 꺄,하는 신음을 속으로 흘렸다.


그 둘은 B가 학교에서 내릴때까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


"저번에 여름을 겨냥한 제품들은 대성공을 거뒀급습니다. 매장에 발품한지 일주일만에 3번이나 출고요청이 들어왔으니까요."


A는 사원들의 브리핑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상반기에 그녀와 팀장의 팀이 기획한 사안이 대박을 쳤다는 기분좋은 보고형태의 브리핑이었기에 그녀는 기분좋게 자신의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거라면 다음 기획도 자신있게 내어 놓을 수 있었다.



"아~ B 보고싶다..."


회사의 점심시간. A는 회사의 푸드코트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떼우며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휴대전화에는 그녀를 '내 반쪽'이라고 저장해놓았다. (참고로 B는 A를 무미건조하게 그냥 'A'라고 저장했다가 본인의 격렬한 항의 끝에 'A(하트)'라고 저장하게 되었다.)


'B도 학교식당에서 밥먹고 있으려나. 거기 밥은 맛있으니까...'


B는 자신의 꿈대로 학교장인 할아버지의 대를 잇기 위해 두 사람이 졸업한 그 고등학교의 선생님이 되었다. 본인의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니 A도 응원해야 했지만 아무래도 요즘은 걱정이 앞섰다. 무리를 하는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B의 컨디션에 기복이 있었기 때문이다.


A는 그런 그녀에게는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에 더더욱 B에게 신경을 썼다. 그녀도 그 사실을 아는지 A를 옛날보다 더 많이 의지하게 되었다.


"자..보내기..."


B에게 자신의 점심사진과 함께 이모티콘 가득한 문자를 보낸 다음 A는 자신이 먹다 남은 샌드위치를 한입 크게 베어물며 건물 밖을 바라보았다.

일단 주말에 할일은 정해졌으니 기분이 좋았지만.


'뭔가 특별함이 없네. 마사지도 놀러간다기 보다는 그냥 요양같은 기분이야.'


요는 학생때의 풋풋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25살이 된 그녀의 바램은 그때 그 시절의 느낌을 받는 것이었다. B가 대학을 다닐때도 풋풋한 느낌은 낼수 있었는데. 20대 중반에 들어선 그녀에게는 그것이 의문이었다. 달라진거라곤 나이밖에 없는데 말이다. 어쩌면 그 나이가 젊음의 전부인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도 좋지만...'


더 바라면 욕심이겠지. 그녀는 거기서 생각을 그만두었다. 행복한 생각을 하자고 다시금 머리를 정리할 무렵, 휴대전화에 낯익은 이름의 전화가 걸려왔다. 학창시절 친하게 지낸 친구 C였다.


"여보세요, C니?"



"A, 잘 지내? 2주전에 봐놓고 이런 말은 좀 아닌가?"


"보고 싶었어! 안 그래도 고민이 있었는데. 왜 널 생각 못했지?"


통화넘어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있을 모습이 선한 친구를 상상하며 유즈가 키득거렸다.


"뭔가 쎄한 느낌이 나는데...먼저 말해봐. 내 용건은 짧으니까."


///////~


그녀의 사정을 다 들은 C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요새 드라마라도 보냐? 풋풋함은 무슨, 고등학생때 너라면 이맘때 항상 보충수업만 했잖아?"


"3학년때는 안했거든!"


아 예,예 하고 놀리는 목소리가 저편에서 들려왔다. C는 휴대폰 건너편에서 씩씩대는 A를 무시한채 자신의 용건을 말했다.


"이제 내 얘긴데, 너희들 오늘 밤에 일 있어?"



"일이라면 없는데. B랑 놀러 갈거야."



"오, 다행이네. 사실 내가 예매해뒀던 호텔 커플 숙박권이 있는데 이놈의 남자친구가 회사에서 갑자기 야근을 한대서 말이야. 티켓이 종이조각이 되었단 말이지. 버리긴 아까우니까 너 쓰라고."



"호텔 숙박? 어디야??"


"XXX 해수욕장 근처인데...그 뭐더라. 커플 티켓이라 저녁에는 바닷가 근처의 테라스에서 이벤트도 해주고 그래."



"여기서 1시간정도네."



"어때. 갈래? 티켓은 나중에 문자로 보내줄게."



"응, 진짜 고마워. 이 은혜는 조만간에 반드시 갚을게!"


그럼 수고.라는 말을 끝으로 통화를 끊은 C.

A는 그런 휴대전화의 액정에 입술을 맞추며 우정의 대단함을 실감했다.


'여름 바닷가! 왜 내가 그 생각을 못했지?'


그렇게 외치며 A는 자신의 연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 From A♡

오늘 마치면 바로 전화줘. 데리러 갈게. 가고 싶은 곳이 생겼어. '


///////


종례를 마친 다음 서류정리를 하고 아직 남아있는 학생들을 집으로 보낸 뒤 B는 탈의실에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교무실로 돌아왔다.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아까 A가 점심에 보낸 문자가 하나 더 와 있었다.


"바로 갈 생각인가..."


편한 블라우스에 청바지로 차림을 바꾼 것을 후회하며 자신의 짐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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