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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Aug 28. 2020

<타이타닉> 감상문

클래식의 미학


<타이타닉>, 내가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될줄은 정말 몰랐다. 이유인즉슨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감동을 덧씌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릇 감상문을 쓸 땐 본편을 보고 써야 한다. 그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자 창작자로서 함양해야 하는 자세이다. 결국 필자는 눈물을 머금고 <타이타닉>을 처음부터 다시 보았다. 자그마치 7년만의 재회였다.


본격적으로 분석에 들어가기 전에 확실히 해두어야 할 사안이 있다. 그것은 '<타이타닉>은 어느 장르에 속하는가'이다. 이는 참 애매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일단 분류 상으로는 로맨스 영화라 되어 있지만 본작의 배경은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선박 사고인 타이타닉 침몰 사건이다. 재난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 영화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타이타닉>이 재난 영화인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재난 영화는 영화가 시작하고 나서 적어도 10분 안에 본격적인 재난을 위한 빌드 업이 끝나 있어야 한다. 형식적인 인물 소개, 진부한 갈등 구조는 이런 영화들을 위해서 존재한다. 그러나 <타이타닉>은 아주 느긋하다. 오래 전 바다에 침몰한 타이타닉을 현재의 사람들이 꺼내고, 그 안에 잠들어있던 금고를 파내어 그림을 찾고, 그 그림의 모델이자 비극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로즈가 등장하고...그 외에도 많은 준비과정이 전개된다.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집안의 사정으로 인해 억지로 결혼하는 여인 '로즈'와 여러 잡일을 전전하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타이타닉에 탑승한 '잭'은 최대한 관객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와야 한다. 왜냐하면 <타이타닉>은 기본적으로 로맨스를 바탕에 깔고 있고 나중에 올 재난이 닥치기 전까진 오로지 둘의 이야기로 사건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타이타닉>은 재난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 영화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전개 과정을 택했다 볼 수 있겠다. 따라서 필자는 이 영화를 임의로 '로맨스 재난 영화'라 칭하겠다. 국내 포스터의 캐치 프레이즈에 따라 '세기말 로맨스 영화'라 하여도 좋을 것이다. 로맨스 재난 영화라는 칭호에 걸맞게 이 영화는 두 장르를 적절히 조율해서 절묘히 버무렸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여러분도 다 알 것이다. 초반부에는 타이타닉에 대한 자잘한 설명과 찬가, 인물의 등장과 만남을 차례로 보여주다가 중반부에 들어서는 인물간의 교류와 그에 따른 변화를 보여준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그동안 쌓아놨던 드라마와 재난을 섞어서 제시한다. 재난이 닥쳤을 때 각각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대처와 중심 인물들의 행동은 장르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관객을 압도한다. 영화가 끝난 다음에야 그들은 깨달을 것이다. 이 영화는 재난을 단순한 곁가지로 쓴 것이 아님을. 로즈와 잭 두 사람을 특별히 조명했을 뿐이지 결코 다른 부분을 대충 다루지 않았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이 글을 통해 그 깨달음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선 먼저 인물을 알아야 한다.


본작의 남주인공 잭 모슨은 떠돌이 생활을 하던 사람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그림을 무척 잘 그린다. 그런 그는 같은 배에 탑승한 로즈 드윗 뷰케이터를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여주인공 로즈는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집안 사정 때문에 억지로 약혼하게 된 귀족 집안의 딸이다. 그녀는 약혼자인 칼 호클리, 그리고 어머니 루스와 함께 타이타닉에 오른다. 담담한 표정으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듯한 로즈는 사실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상상하는 중이었다. 위선과 가식이 가득한 상류층 사회에서 평생을 보내는 것은 절망적이었다. 결국 로즈는 배의 후미에서 몸을 던져 목숨을 끊기로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잭이 제지하면서 그녀 역시도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자살직전의 여성을 도와주는 남성, 로즈와 잭의 첫만남은 아주 크게 엇나가 있었지만 그와 반대로 두 사람의 친분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잭은 로즈에게 자유로운 인생의 즐거움을 가르쳐 주었다. 로즈는 잭에게 자신이 상류층의 허례허식에 찌든 고리타분한 여자가 아님을 알려주었다. 둘은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고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중간 중간에 로즈의 약혼자가 로즈를 협박하며 그녀를 망설이게 만들긴 하지만, 그녀는 잭의 말마따나 길들여질 여자가 아니었다. 마음을 확인한 둘은 뱃머리에서 서로를 지탱해주면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몸으로 맞는다. (이 부분이 바로 타이타닉의 포스터에 나오는 바로 그 장면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엔 장애물이 많았다. 첫째가 로즈의 약혼자 칼로 대표되는 사회의 시선이요, 둘째가 빙하였다. 타이타닉에서 마지막으로 보내는 낮을 잭과 함께한 로즈는 자신의 방에 잭을 불러 자기를 그려달라 부탁한다. 그녀는 알몸에다 약혼자가 준 보석을 목에 걸친 채로 잭이 그리는 그림의 모델이 된다. 아름다운 자태에 당황하면서도 잭은 프로답게 작업을 마친다. 로즈는 잭의 그림에 '이 정도면 나를 다 가진거라 보아도 무방하죠?'라는 메모를 남긴다. 그 뒤로 두 사람은 칼의 명령을 받아 쫓아오는 그의 하인을 따돌리고 배의 짐칸 어느 한구석에 있는 차 안에서 사랑을 나눈다. 뒤에 따라온 부하들을 역으로 속여먹기도 한다.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로즈와 잭에게, 그리고 타이타닉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시련은 공평하게 찾아왔다.


사실 필자가 잭과 로즈를 중심으로 사건을 전개해서 그렇지 <타이타닉>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잭의 절친한 친구 파브리치오, 아까 잠깐 나온 로즈의 어머니, 배의 주인인 조지프, 철강왕 구겐하임, 선장인 존 스미스 등 많은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짧게나마 영화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관객들의 눈에 들만한 행동을 적어도 한번씩은 보였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2천2백명의 승객을 대표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 타이타닉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으로써 그들은 마지막 소명을 다한다.


영화 후반부에서 잭과 로즈는 함께 생존하기 위해 어떤 위험도 감수한다. 로즈는 누명이 씌인 잭이 갇혀 있는 선실까지 물을 헤쳐가면서 찾아왔고, 잭은 그녀가 마지막까지 살 수 있도록 자신의 목숨까지 버린다. 두 사람은 재난 속에서도 자신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인 '사랑'을 지키려 발버둥친다. 잭은 그러기 위해서 본래 소망인 아메리칸 드림을 버렸으며, 로즈는 갑갑하기만 한 귀족의 지위를 버렸다. 한명은 욕망이 변화했고, 한명은 새롭게 욕망이 생긴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보아도 좋으리라. 


잭과 로즈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 역시도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재난이 닥친 상황에서 대부분의 승객들은 '목숨'을 택했다. 로즈의 약혼자 칼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자기가 살겠다고 덤벼드는 모습은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낸다. 그러나 그들은 목숨을 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했다. <타이타닉>은 목숨을 위해 존엄성을 포기한 사람들을 담담히 카메라에 담아내었다. 그런가하면 목숨보다 더 소중한 가치와 존엄성을 동시에 지켜낸 사람들도 있다. 위에서 예시로 언급한 철강왕 구겐하임은 마지막까지 신사답게 죽기 위해 담담히 앉아 최후를 맞는다. 선장 존 스미스는 자신의 배와 운명을 함께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슴에 안고 물이 흘러 들어오는 선실에서 최후를 맞는다. 관객들의 불안간을 풀어주기 위해 현을 켜던 현악대는 평생 잊지 못할 연주를 끝마치고 바다에 잠든다. 하지만 <타이타닉>이 이런 사람들의 마지막을 특별하게 연출하진 않았다. 어차피 인물에 대한 평가는 보는 사람들의 몫이고, 영화 자체가 '타이타닉 침몰 사고에 휘말린 사람들은 선악 가릴것 없이 모두 피해자일 뿐이다'라는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메시지는 회상을 끝낸 로즈 부인의 대사에서도 드러난다.


'구명보트에 타지 못한 천오백명 중에서 생존자는 나를 포함해 겨우 여섯이었어. 보트에 탄 칠백명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지. 죽음을...삶을...결코 면죄될 수 없는 기억을 지닌채로...'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서 로즈와 잭의 애틋한 사랑에 몰입하는 한편으로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분석이 아닌 감상적인 평을 몇줄 쓰고 글을 마치겠다. 이 영화를 처음 봤던 7년전이나 지금이나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역시 로즈였다. 아마 그 이유는 로즈라는 캐릭터가 정석적인 역할과 진취적인 역할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하는 캐릭터였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한다. 작중에서 로즈는 고전적인 여성의 모습과 같이 잭의 행동에 휘말려든다. 상류층 자제치고는 제법 주관이 있는 여자였으나 사회적 강자인 약혼자 칼에게 협박을 당해 크게 떨기도 한다. 반면 후반부에 들어서는 자신의 주장을 확실하게 드러내며, 목적의 완수를 위해서라면 거친 수단도 개의치 않고 사용한다. 히로인의 위치에 서 있으면서도 남주인공인 잭을 주도적인 위치에서 구해내기도 한다. 사실 이러는 편이 개연성의 측면에 더 부합한다. 위의 변화는 모두 잭을 만나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과연 인생의 전환점이라 할만하다. 역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진취적인 여성캐릭터를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다. <터미네이터>의 사라 코너도 그랬으니 말이다. 


<타이타닉>은 3시간이 넘어가는 상영시간 중에서 단 한순간도 놓칠 장면이 없는 영화였다. 90년대 세계 영화를 대표하는 걸작에 필요한 분석과 찬사는 이정도면 충분하리라 본다. 다음에도 재밌는 작품의 감상문으로 만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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