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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Sep 27. 2020

질주를 주제로 한 시들

나는 이번 한주를 잘 달려왔는가.

안녕하십니까, FCB9입니다.
이번 한 주도 열심히 달리셨는지요. 열심히 해온 일주일의 마무리에 걸맞는 이주의 주제 '질주'에 대한 베스트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질주는 평범한 달리기와 느낌이 좀 다릅니다. 달린다는 점은 똑같지만 더 절실하고 안간힘을 내서 뛰어가는 모습이 흔히 그려지죠. 절박한 소망으로부터 이끌려나오는 다리의 발악. 그것이 질주의 문학적 정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인생 전체를 사는 것을 마라톤이라고 한다면 가장 뜨거운 시기, 인생에서 제일로 바쁘고 힘든 시기는 질주에 비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내내 마라톤처럼 달리면 시시한 인생이 될테고, 또 원하는 걸 붙잡기 위해선 때론 절박하게 뛰어야 할 때가 필연적으로 있어야 할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언제까지고 질주만 할 순 없는 법입니다. 마음은 영원히 달려도 부족할만큼 달떠 있는데, 정작 다리 근육에는 한계가 있죠. 그래서 우린 질주하기 전에 선택을 해야 합니다. '내가 여기에 질주할만큼 열정이 있나?'. 순간적인 충동으로 질주를 낭비하면 그 다음에 정말로 질주가 필요한 순간에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기회는 한정적이고, 우리의 선택 또한 한정적이니 이는 응당한 현실입니다.

따라서 질주를 하기 위해선 냉정한 머리가 요구됩니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많이 듣는 말이지만 실천하긴 영 쉽지 않은 이 격언처럼요. 여러분이 올려주신 글들은 모두 다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냉철한 판단력까지 겸비한 글은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나쁜 건 아닙니다. 질주 그 자체에 골몰히 집중했다는 증거기도 하니까요.

단지, 질주는 혼자만으론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 수도 있는 단어라는 겁니다. 열정은 행동의 충실한 동기가 되지만 그 행동의 결과가 항상 보장되진 않죠. 단순한 응원글이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요.

한마디로 이번 주제는 은근히 다루기 어려운 시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뽑힌 베스트는 잘 써도 보통 잘 쓴 글이 아닙니다. 이제 같이 보러 가도록 합시다.




1. 김인성문제있어님의 '질주'

https://m.fmkorea.com/3092334201

///////////

모든 화살이 나를 향해 겨눈다

모든걸 부숴도 파편인걸 느껴 운다


뒤를 돌아볼 틈이 어딨나

허나 내 앞에 거울이 서있다


질주하고 싶다

세상 모르고 달리는 시계바늘처럼


헛된 바람 마라

세상 모를 질주가 이 세상에 어딨냐

///////

시평: 냉철한 판단이 나오진 않지만 이 시는 많은 것을 담으려 노력한 흔적이 눈에 보이는 글입니다. 마냥 달리는 것이 능사는 아님을 이미 아는 화자는 걱정을 하는 중입니다.

내가 지금 하려는 달음박질이 정녕 옳은 일인가. 그 걱정에 매몰되어 질주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다행히 마지막 연에 의미없는 질주가 어딨냐며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하긴 합니다만... 그가 걱정 없이 질주를 하기까진 아직은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개인의 판단은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호와 오의 문제가 아닐까요. 자기가 호라 느끼고 달린다면, 설령 세상이 악이라 규정해도 후회는 남지 않겠죠.

잘 읽었습니다.


2. 민트맛병아리님의 '너를 보러 가는 길'

https://m.fmkorea.com/3099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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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한 시간이 되었다
너를 보러 가는 길

내 마음은 언제나 질주하고 있다

속도를 이기지 못한
잘린 발목만이 나뒹굴고 있을뿐
몸뚱아리는 너에게 도착한지 오래다


너는 바닷물이다
마셔도 마셔도 갈증이 나듯
바라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

잠겨 죽어도 좋다는 시처럼
너는 나에게 파도처럼 밀려오라

소금기에 온몸이 절어도 좋다
짠내 마를 새 없도록 달려갈테니

///////

시평: 이걸 읽고 저만 슬램덩크의 오프닝이 떠올랐나요?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린다는 '질주'가 가장 뜨겁게 표현된 시였습니다.

육체를 뛰어넘을만큼 강렬한 상대방을 원하는 마음이 나타난 3연과 비유를 통해 염원을 드러낸 4연, 이정하 시인의 <낮은 곳으로>를 접목시켜 시상의 바램을 극대화시킨 5연 등 나무랄 데 하나 없는 훌륭한 시가 한편 나왔네요.

잘 읽었습니다.



3. 달그밤님의 '질주'

https://m.fmkorea.com/3092849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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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시 태어난다면
들푸른 초원에
바람을 벗삼아
후회없이 질주 하고 싶어라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한걸음도 내딛을 수 없을때까지
원없이 질주 하고 싶어라

비록 돌부리에 걸려
풀밭에 널부러질지라도
풀내음에 취해
깊은 잠 자고 싶어라

끝없이 끝없이 이어지는
지평선 너머로
한없이 펼쳐지는
들푸른 초원을
영원히 질주 하고 싶어라
멈춰서지 않고
끝없이 질주 하고 싶어라

//////

시평: 마음 가는 대로 영원히 이어지는 질주. 그것은 곧 염원의 영원한 추구를 의미합니다. 삶의 유한성도, 능력의 한계도, 그 외 잡다한 현실적 장애를 모두 뛰어넘고 화자는 다음 생에 현생 때 못했던 질주를 원없이 하고 싶어하네요.

그렇게 되면 초조해 할 이유도 사라집니다. 질주하다가 쉬고 싶어지면 쉬고, 다시 달리고 싶으면 달리면 됩니다. 다음 생의 질주에 한계는 없고 자신의 마음 또한 끝을 모르고 질주하길 원할테니까요.

행복하지만 더없이 비현실적인 상상을 하는 현생의 화자가 한편으론 조금 불쌍하게 느껴집니다. 부디 그가 이번 생에도 원하는 만큼의 2할이라도 마음껏 질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

/////////

이번 주 베스트는 어떠셨나요.
여러분들이 원하시는 만큼 훌륭한 베스트가 되었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다음 주 베스트 약속 때는 또 다른 느낌의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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