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HAN Sep 20. 2020

'장난'을 주제로 한 시들

풋풋함

https://youtu.be/yvTe-SWGhiU


안녕하십니까, FCB9입니다.

이번 주제는 장난이었습니다. 정작 올라온 글 중에서 장난스러워 보이는 글은 하나도 없었지만 말입니다. 이것도 시어가 가지는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겠군요. 장난은 친근함의 표현입니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여자애한테 괜히   짓궃은 장난을 치고, 또 그걸로 화를 내면 속으로는 좋아하고. 친한 친구한테 일부러 심한 장난을 쳐서 골려주고. 경솔한 일이고 당하는 입장에선 귀찮지만 그래도 장난을 당하는 사람이 진짜로 화내는 경우는 드뭅니다. 장난 치는 사람의 본바탕엔 호감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미운 놈한텐 떡 하나 더 주고 이쁜 놈한텐 매 하나 더 준다고 하죠. 장난은 매랑 비슷합니다.

그리고 장난에는 풋풋함이 묻어나옵니다. 아이다운 면이 있다고 해야하나요. 물론 어른들은 장난을 안 친다는 말이 아닙니다. 장난을 칠 땐 모두 애처럼 행동하게 되니 장난엔 진정으로 연령대가 없다고 할 수 있겠죠.

평소에 무뚝뚝하시던 아버지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한테 농을 치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새삼 '우리 아빠도 어른이기전에 아이였었지...' 하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벌써 50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그 모습은 확실히 풋풋했습니다.

이번 주제글들은 거의 다 덜 익은 사과를 코에 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풋풋한 내음과 싱싱한 생기가 섞이는 경험이었다고나 할까요. 사실 여러분들이 쓰실 때도  저랑 비슷한 느낌을 받으셨을거라 생각합니다. 장난을 읽는 사람이 이런데 쓰는 사람은 오죽할까요.


그럼 장난을 주제로 한 이번주의 베스트를 살펴봅시다.


1. 리버풀에코님의 '장난'

https://m.fmkorea.com/3081932317

////////

무언갈 잘하고 싶어도

내 마음처럼 되지않는 이 모든 현실을

나는 하나님의 장난이라 하겠다.


무언갈 얻고 싶어도

손 앞에서 허공으로 사라지는

이 모든 것들을

나는 하나님의 장난이라 하겠다.


피할 수 없는 절대자의 장난속에

괜스레 괜찮은척

하늘 향해 장난 섞인 투정을 하는 것을

나는 내 삶이라고 하겠다.


하늘 향해 무릎 꿇어

두 손모아 바래봐도

무엇하나 바뀌지 않는 내 삶

아아, 나는 하나님의 장난이라 여기겠다.

//////////

시평: 밝고 순수한 시어를 조소의 색으로 비트는 변형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나름 시도와 역사가 깊은 방식이죠. 이런 클래식이 아직까지 명맥을 이어올 수 있는 이유는  명확하고 진한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장난이라도 장난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느낌은 천지차이가 납니다. 7년지기 친구의 장난과 회사에서 항상 야단을 치는 부장님의 장난. 어느 쪽이 더 무겁고 대처하기 어려운지는 일목요연하지요. 한낱 회사 부장도 이런데 신의 장난은 얼마나 무겁고 회피가 불가능하겠습니까. 신이 정말로 내 인생을 방해한다면 그건 아주 질이 나쁜 장난이겠죠. 애초에 신이 이래도 되나 싶을거에요.

하지만 그게 아니죠. 화자는 도통 풀리지 않는 자기 인생을 신의 장난으로 책임을 돌리고 있습니다. 운이 없다도, 노력이 부족하다도 아닌 신의 장난이다. 꽤 머리를 잘 썼네요. 앞의 두개는 인생을 비극으로 만들지만 장난이 이유가 되면 당장은 피식 웃을 수 있는 희극이 됩니다. 그래서 화자도 장난 섞인 투정을 던질 수 있는 거지요. 진실을 알면서도.

결국 장난은 그만 치라며 기도를 하고 빌어봐도 화자의 삶은 바뀌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던 장난을 어떻게 그만두겠습니까. 화자는 이 사실마저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네요. 마침내 그는 이것마저 장난으로 치부하고 스스로 광대가 되길 자처합니다.

하나님의 장난. 존재가 없이 그저 장난만이 남은 그는 그냥 광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2. 달그밤님의 '장난'

https://m.fmkorea.com/3084355507

////////

장난처럼 스쳐간 한마디 말이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채 바꾼다
장난처런 던진 한마디가
이 세상을 바꾸고 발전시켰다

누군가는 말한다
지금 장난하냐고
맞다 이 장난이 훗날에
어떤 결과가 되어 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우리는 장난을 쳐야한다
그것이 매우 유쾌하고
기발한 장난이든
미래의 후손들이
실소를 머금을만한
사소한 장난이든
그 장난이 이 세상을
살맛나게 바꿀지도 모른다

//////

시평: 글쓰기에 요구되는 덕목 중에 '유쾌함'이 있습니다. 너무 진지하게 구상하지 말고 때론 재밌고 웃기는 방향으로 접근해보라는 뜻입니다. 글쓰기에는 인생의 철학과 진리가 대부분 담겨 있으니 그것은 곧 글쓰기에 임하는 자세 또한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살 방법이 없어 막막해 보이는 순간,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봐도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막다른 길. 그럴 때 우리는 장난스러운 대처를 강구해봐야 합니다. 힘든 상황일 때 가장 소중한 가치가 '유머'라는 미군 내의 격언도 있으니까요.

막연히 희망적이고 추상적인 관점의 시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구성이나 내용이나 신선한 시상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우린 때때로 단순하고 소중한 가치를 상기해야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3. 신현빈님의 '1인칭 장난 시점'

https://m.fmkorea.com/3087894722

///////

우리 서로 좋아한다던 누군가의 말장난

그 장난에 너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네 얼굴은 붉어졌지만

입은 아니라 말하고

내 눈을 끝까지 피해도

옆자릴 피하진 않았어


글쎄, 아마도 그건


아니다,

그냥 너도 장난이었을거야.

///////

시평: 아이 참말로 거기서 더 앵겨붙었어야지.

...이런 소리가 저도 모르게 나오는 글이었네요. 서두에서 말한 아이들이 쳤던 짓궃은 장난이 잘 드러납니다. 초등학생 땐 여자애랑 노는 게 그렇게 부끄러웠었는데요. 아마 저 뿐만이 아니라 이걸 읽고 계시는 여러분들도 그러셨을 겁니다. '어 점마 여자랑 논다!', '니 안 부끄럽나!' 등등... 여자애랑 말만 섞어도 놀려댔던 친구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어렴풋이 들립니다.

하지만 이 시의 두 사람은 꽤 성숙하네요. 적어도 자기 마음을 대놓고 무시할 수는 없을 정도로는 머리가 컸나 봅니다. 그런데 화자로 추정되는 아이는 마지막에 망설였는지 '너도 장난이었을거야' 라며 이야기를 마무리 짓습니다. 서로 솔직했다면 절대 장난이라 말하진 않았을텐데요.

그래도 저런 풋풋함은 부끄러움과 솔직함이 둘 다 경계선을 넘지 못해 안절부절하는 시기 말고는 볼 수 없습니다. 지나간 추억이니 웃어넘길 수밖에요.

간만에 순진무구한 글을 읽은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이번주 베스트는 어떻게 잘 읽으셨나요?
이번 주는 주제가 가볍고 순수한 시어였다보니 깊은 의미가 담긴 시보단 단어 자체의 색깔을 살리려한 의도의 시가 많이 보였습니다. 내형보단 외형을 더 추구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훌륭한 한 주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다음주 베스트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작가의 이전글 염원을 주제로 한 시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