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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Oct 04. 2020

'약속'을 주제로 한 시들

서로간의 믿음, 신뢰


안녕하십니까, FCB9입니다.

즐거운 추석연휴 되셨나요, 창도갤러 여러분? 전 가게에서 대목의 무서움을 한껏 느껴보는 며칠이 되었습니다. 시국이 시국이라지만 역시 명절 땐 사람이 몰리는 법이군요.

이번주 주제는 약속이었습니다. 전 예전에 이 시어를 한번 한 것 같았는데 찾아보니까 없더라구요. 범용성도 넓고 담을 수 있는 함의도 많아보이는 '약속'을 이제서야 하게 되니 참 기분이 오묘하네요.

약속은 문학적으로 비슷한 뜻을 가지는 동의어가 꽤 많습니다. 예를 들면, 서로간의 믿음으로 인해 성립하는 것이니 약속은 '믿음'으로 바꿔 쓸 수 있습니다. 약속을 완성하기 위해선 둘 다 지켜야 하는 의리가 있어야 하니 '의리' 또한 약속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여기서 더 하면 그저 그런 말장난이 되니 그만하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약속이란 단어가 사람과 사람을 어떤 형태로 이어주고 있느냐는 겁니다. 약속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입니다. 구두로 정하든, 계약서를 써서 정하든간에 서로 몸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없다는 거죠. 하지만 그게 아무것도 아닌건 아닙니다. 분명히 약속은 둘을 믿음과 신뢰의 계약으로 묶어주었습니다. 계약인 이상 약속은 당연히 지켜야 하고 완수해야 할 미덕입니다. 이런 미덕은 어릴 때부터 다양한 창작물에서 강조됩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아 벌을 받는 악당이 나오는 동화나 그림책은 제목은 몰라도 내용은 어렴풋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이건 우리가 약속을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척도'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쉽게 약속을 저버리는 사람은 말 그대로 됨됨이가 덜 되었다는 뜻이죠. 어찌보면 조금 무거운 시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학에서도 약속은 취급이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무거워지면 무거워졌지. 약속을 지키는 것이 화자와 주인공의 동기나 목적이 되는 경우는 예사고 아예 작품의 메시지가 하나의 약속을 주제로 삼을 때도 있습니다. 위에서 범용성이 넓다는 말을 했었죠? 그게 이런 뜻입니다.

그럼 베스트에 오른 분들은 약속을 어떻게 다루셨는지, 같이 보도록 합시다.



1. 사형선고님의 '백지수표- 약속에 관하여'

https://m.fmkorea.com/3108603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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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 달 월급이 들어오기 무섭게 휴대폰 요금, 보험료, 국민연금, 대출금 이자 등과 같은 무서운 침략자 앞에 적나라한 통장의 나체 그대로의 모습을 내주어야 한다.

매번 동일한 상황을 겪다보면 정말 통장에 돈이 쌓이기는 하는 건지 의문이 든다. 생활비나 목돈 나갈 걱정에 빨래를 개키다가도 한숨을 푹푹 쉬는 와이프를 보다보면 가끔은 영화에서나 보던 것처럼 멋있게 백지수표를 내밀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사실 모두가 무한히 발행 할 수 있는 백지수표 발행기를 가슴에 품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도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백지수표를 발행한다.

"정말 오랜만이다! 오늘은 조금 바쁘구 나중에 만나면 꼭 한번 밥 한끼 먹어!" 그 백지수표에는 무엇을 먹을지 (금액), 언제 먹을지 (기한) 등과 같은 중요한 정보들이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 백지수표는 나중에 내가 값을 지불 할 수 있게 되면 본래의 값어치보다 2배 정도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받은 사람 조차도 그 값어치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생각치 못했던 돈이 생기는 기분이랄까.

내가 주로 인간 관계에서 누군가와 더 가까워지고 싶을 때 이러한 백지수표를 발행하고 잊을만 할 즈음에 값을 지불한다. 그 효과는 앞서 말한 것 처럼 항상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우리 모두 이번 주 주말은 평소 소원했던 친구에게 백지수표를 발행해보는 건 어떨까? 잊고 지냈던 철수에게 오랜 만에 전화를 걸어서 말이다.


"야 인마, 어떻게 지내? 다음에 시간되면 저녁에 삼겹살에 소주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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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오랜만에 시가 아닌 글이 베스트에 올랐네요. 읽고 나서 상당히 신선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애잔함과 유쾌함, 그리고 조금 쓸쓸한 현재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텍스트로 나타내면 이 글이 되지 않을까요.

지키러 가면서 기분이 좋았던 약속을 잡았던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요. 우리는 하루에 크든 작든 여러 약속을 잡습니다. 취업준비생은 알바 면접 약속, 회사원은 타 회사 직원과의 미팅 약속, 소상공인은 물건 납품 일시 약속. 중간 중간 쉬는 시간에 친구한테 온 전화는 안 받는 게 다반사에 단톡방에서 심심하면 올라오는 주제인 '야 새끼들아 주말에 한잔 할래?'는 흐지부지 되고 맙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에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죠. 현재에 치이고 삶의 무게에 치이느라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바쁘니까요.

그러니 지금, 사람들은 여유를 환기해야 합니다. 잠깐 발을 멈추고 근처에 있는 포장마차에 들어가 그리운 면면을 둘러보아야 합니다. 물론 들어가기 전에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요. 그런 약속이 때로는 백지수표보다 더 값질 수도 있습니다. 고작 그런 종이쪼가리가 친구 얼굴이라도 보여준답니까.

잘 읽었습니다.



2. 조하트레블님의 '약'

https://m.fmkorea.com/3114543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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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후와 식전 30분 복용

이 글자들이 나의 생활처럼

오늘따라 낯선 이유는 뭘까

오늘은 꼭 약을 먹어야지

컵에 반쯤 물을 따르고

창으로 반쯤 햇볕이 깔린다

요즘 나는 약사들의

이유없는 친절함이 좋다

먹어버리면 그만인 약들이

어딘가엔 좋다는 말들

그 말들을 잊어버렸다

차가운 냉장고 속 어딘가

먹어버리면 그만이니까

약사의 말들을 먹어버렸다

그래도 약 속에는 약속이 있다

약을 삼키면

낫는 게 남는다는 그런

말들을 잊어도

아무렇지 않게 남는 것들

일 년 전에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내가

조금은

죽어있었다

병실 흰 벽의 난초는

항상 네 가닥으로 뻗고 있었다

재수없는 것들

나를 삼키게 하는 것들

앞에

아무것도 아닌

왜 나는 나에게

친절한 이들의 친절을

무시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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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땐 단순한 연관에 의지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직관적인 두 요소는 새로운 사유의 주춧돌이 되기도 하는 법이니까요. 의사들이 주는 약과 그 약 속에 든 무언가. 그리고 화자가 지키지 않은 약속. 이 약과 속들은 형태의 유사성 말고는 연관이 없습니다. 그냥 화자가 자기 생각으로 갖다붙이는 거죠. 그러나 읽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 단어들 속으로 몰입하게 됩니다.

사실 이 시는 약속을 중심적 시어로 삼진 않았습니다. 중요한 점은 화자의 내면이 어떻게 변화했느냐죠. 그러나 그 수단으로 쓰인 약속이 시어의 다각적 접근처럼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소고기집에서 물국수가 나왔는데 국수의 국물에서 진한 양지맛이 우러나온 느낌일까요.

어쨌든 전 재밌게 읽었습니다.

화자는 앞으로 긍정적인 사람이 되겠죠.



3. 원영이는맨유팬님의 '약속'

https://m.fmkorea.com/3103560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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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지키고 싶은 약속들을 가슴에 새기며

손가락을 걸었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것일까 수없이 생각했던 나다.

작은 손가락을 가진 그대에게 나의 거친 손가락을 걸고 징표를 새겼다.


늘 그대와 함께 있고 싶었던 작은 바람이 이제는 너무나도 큰 꿈이 되어 버렸다.

사랑하는 이와 약속을 하고 사랑하는 나 자신에게 다짐을 하며

다른 사람에게는 쉬운 이런 마음이 나에게는 너무 어려움을 느꼈다.


지키지 못할 작은 다짐이 아니라 너를 담보로 건 비겁한 약속을 해서라도

달라지기 위해 나아지기 위헤 약속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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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약속은 목표나 목적이 되어야 하지 방법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약속의 핵심은 그 약속을 지키려는 마음과 진정성에 있는데 그 곳에 다른 감정이 섞이면 안되죠.

그래도 화자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처음엔 해볼만 하다 느낀 약속이 이제보니 부담이었고, 또 그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약속을 잡는다. 사회초년생의 카드빚 돌려막기가 생각나는 사고방식입니다. 지금 이 사람에게 필요한건 위로가 아닐까요. 지금까지 미뤄왔던 믿음과 신뢰, 저버린 약속을 초기화 한 다음, 지친 심신을 충분히 위로받고 나서야 그는 재기할 수 있겠지요.

부디 재기한 화자가 하게 될 약속은 따뜻하고 가벼운 깃털같기를 빕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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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베스트도 이렇게 끝이 났네요. 연휴 마지막 날에 이런 시간이 나서 다행입니다. 하마터면 늦은 새벽에 급히 타자를 두드릴뻔 했네요.


절대 펑크를 낼 순 없습니다. 베스트는 저와 여러분들이 매주 정한 약속이니 말입니다. 뭐...댓글이 조금 더 달렸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그래도 읽어주시는 것만으로 전 만족합니다.

그럼 다음주 베스트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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