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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Nov 08. 2020

'비극'을 주제로 한 시들

비극, 찰리 채플린

안녕하십니까, 제이한입니다. 비극을 주제로 한 이주의 베스트 시간이 되었네요.

이번 주제는 비극이었죠. 비극은 문학 장르를 이를 때 말고도 관용적으로 많이 쓰이는 단어입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비극이다'와 같은 명언이나 도하의 비극, 마라카낭의 비극 등 실생활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사고를 칭할 때도 사용이 되죠.

이렇게 보면 오히려 현실에서 비극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문학적인 비극보다 더 비극의 정의에 부합해보이기도 합니다. 문학은 현실을 모방하니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걸까요.

제가 봤을 땐 실제로 일어난 비참한 일이 차라리 비극처럼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이길 바라는 사람의 바람이나 희망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리 잔혹하다고한들, 이게 참혹한 이야기이고 영화이고 드라마라면 객석에서 일어나 훌훌 털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그럼 비극은 의미와는 안 어울리게 밝은 뒷부분을 가진 시어가 되겠군요. 독특한 시세계를 떠올릴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이번 주 베스트에 오른 글들을 함께 살펴봅시다.



1. 신현빈님의 '라고요'

https://m.fmkorea.com/3168498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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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누군가가 내게 비극을 묻거든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힘든 날 보낸 아비가 집에 왔을 때

아픈 아이의 울음 대신 울리는

아내의 슬픈 곡소리가 비극이요,



치매라는 병에 갇힌 우리 어머니

손쓸 방도가 없어 바라만 보는

자식의 무능함이 비극이요,



떠나가신 부모님 생각이 날 때

내가 했던 모든 모진 말들을

다시금 주워 담지 못하는,

못난 아들의 흐느낌이 비극이다



라고요.

///////////

시평: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피 묻은 칼보다 더 잔인한 것은 밥풀 대신 침자국만 붙어있는 5살배기 자식의 숟가락이겠죠.

갑자기 닥친 비현실적인 시련보단 일상에 자연스레 녹아있어 언제든 삼켜질 수 있는 평범한 쓰라림. 자기도 모르게 범하고는 뒤늦게 깨닫고,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능력 밖의 일이라 도저히 손을 쓰지 못했던 일들이 바로 비극입니다.

이 시는 그런 내용을 만들어진 화자의 입을 빌려 시의 모양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저 위의 예시만 있었다면 그저 우중충한 문장에 그쳤을텐데, 뒤에 붙은 '라고요'가 괜히 애절함을 더해주는 듯합니다. 혹은 저 예시들이 화자가 과거에 겪은 일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드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2. 끝없는갈증님의 '무덤'

https://m.fmkorea.com/3170736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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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갈 집 찾는 세입자의 눈에

우연히 남의 집 구석진 방이 보였다


떨리는 손으로 열어준 방 안에는

먼지가 뿌옇게 쌓여 시간이 멈췄다


계절에 맞지도 않는 옷이 걸려있고

그게 무슨 부적이라도 되는냥

집주인 내외는 들어오지도 못 했다


돌아선 아낙네의 어깨는 들썩이고

급히 집을 파는 이유가 스며든다


슬픈 일 하나 없는 집 어딨겠냐마는

무덤 있는 집은 처음이다


무덤이었다

묻힌 무덤 아니라 묻은 무덤이었다

///////////

시평: 사람이 죽었을 때 아예 육체가 연기처럼 변해서 순식간에 사라졌다면 아마 지금처럼 죽음이 무거운 개념은 아니었을 겁니다.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지 기억이나 흔적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 말입니다. 그 사람이 살아왔던 흔적, 남기고 간 기억이 아직 살아있는 지인들의 가슴에 예리한 비수가 되어 날아듭니다.

그리고 기억은 물리적으로 덜어내지도 못합니다. 죽은 사람이 아직도 살아있는 것만 같고, 분명 그 몸이 불에 살라지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장면까지 봤건만 그 사람은 아직도 내 옆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미칠 노릇이죠. 주변 사람들은 내가 모르는 사실을 당연스레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지나면 다행히 그 착각은 대부분 꺼지지만 백 중에 한두개, 죽은 이와 둘이서 세상을 거니는 산 자가 있습니다. 그 모습을 절절하게 묘사한 것이 바로 이 시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3. meenoi님의 '비극'

https://m.fmkorea.com/3172615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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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변 누구도 달가워 하지 않는

바깥에 서 있었다


비 바람은 나를 맞추려 애를 쓰는 듯 하였고,

추위와 고통은 살갗을 뚫어 다시금 괴롭게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안으로 숨었다

그리고 평온을 가졌다

그리고 인정을 가졌다


그럼에도 창밖으로 

바라보는 것은 왜인가

저 창밖 우산도 없이 비맞는 사내를

부러워하며 그리워하는 이유는 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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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비극 중에서는 잔잔한 비극도 존재합니다. 등장인물의 8할 이상은 무조건 죽여야 했던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기절초풍하겠지만요.

잔잔한 비극은 여타 비극과 달리 현실성과 친근함을 무기로 삼습니다. 시를 보면 아시겠지만 위 시에서 화자가 겪는 시련은 보잘것 없는 수준입니다. 비 바람이 비유법으로 쓰였을지도 모르지만 비나 바람 좀 맞는다고 사람이 죽진 않잖아요? 단지 계속 거기 서 있으면 춥고 아플 뿐이지.

그래서 화자는 아예 발을 빼버립니다. 안으로 숨으니 몸도 따뜻하고 기분도 안정적입니다. 그런데도 뭔가 아쉬움이 남네요. 왜일까요? 바깥의 사내를 우수어린 눈으로 보는 이유는.

저는 이 시에서 비와 바람이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게 겪는 힘듦'이라 보았습니다. 화자는 그걸 견디지 못해서 사회와 단절되었고, 혼자 살고 있으니 몸은 편한 대신 사회의 압막을 견디며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있는 것이죠.

사회에 있는 대부분이 누리는 당연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 우리도 언제든지 그렇게 될 수 있기에 이 시는 비극입니다. 현실적이고 친근하죠.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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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베스트는 어떠셨나요. 시어가 워낙 활용도 높은 단어였다보니 구조적으로나 내용으로나 알찬 한 주가 되었네요.

비극은 문학적 소양과 소재를 파악하는 데 아주 탁월한 주제지만 사는 동안에는 그다지 친해지고 싶지 않은 개념입니다. 우리 서로 피차 책이나 영화에서만 만났으면 좋겠네요. 여러분도 그러시죠?

그럼 다음주 베스트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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