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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Nov 15. 2020

'송곳'을 주제로 한 이주의 베스트

송곳, 마녀사냥

안녕하십니까, J.HAN입니다. 송곳을 주제로 한 이주의 베스트 시간이 되었습니다.

송곳은 예리한 공구로써, 보기만 해도 날카로운 인상을 심어주는 단어입니다. 나무판이나 플라스틱 판떼기에 구멍밖에 못낼것 같은 이 송곳에는 어떤 문학적 심상이 깃들수 있을까요?

송곳은 단순히 그저 뾰족하고 위험하기만 한 흉물은 아닙니다. 사람의 손에 어떻게 쥐어지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긍정적인 방향으로 쓰일 수 있죠. 공사판 노동자의 손에 들어가 공구 제작의 일부분을 담당하거나, 중학교 기술가정 시간의 수행평가 물품으로 팔려 순수한 학생의 수작업을 도울 수도 있겠죠.

정작 주의해야 할 송곳은 형태가 없는 송곳입니다. 사람의 혀나 발에 얹혀져 난폭한 말로써 다른 사람의 마음을 쑤시고, 자존심을 짓밟는 일은 모두 이 보이지 않는 송곳이 행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중에서 과연 우리는 어느 쪽 송곳을 더 많이 접했을까요? 전 전자라 여기고 싶지만... 후자에 눈이 더 가네요. 오히려 눈에 안 보이는 것이라 그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 이번주 베스트에 오른 글들을 같이 살펴봅시다.



1. sakgofbd님의 '창'

https://m.fmkorea.com/3179484588

///////

송곳을 삼켰다.

식도를 찌르고, 파고들어 위장의 벽을 꿰뚫었다.

송곳을 집어들었다. 

나의 가슴을 찔렀다.

심장에 닿을때까지, 집어 넣었다.

심장까지 작은 구멍이 생겼고, 그 구멍 사이로 피가 솟아 나왔다.

송곳을 하나, 하나, 계속 삼켰다.

그리고 송곳을 하나, 하나, 계속 집어들어

찌르고, 찔렀다.

당신이 내게 그러했듯이.

//////

시평: 남한테 정신적인 송곳을 많이 찔린 사람은 나중에 가면 스스로에게 송곳을 갖다댑니다. 송곳이 마치 약이라도 되는 양 입으로 꿀떡 삼키지요. 심장에 구멍이 뚫려 피가 흥건하게 몸을 적시고, 그 피가 쌓여 자신이 잠겨죽는 순간이 되어도 화자는 계속 자기 몸을 찌릅니다.

이 송곳은 다른 사람들에겐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서운 거지요. 일이 이렇게 된 원인을 화자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당신이 내게 그러했듯이', 이 행은 화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입니다. 찔린 상처로 만신창이가 된 나를 보고, '당신'이 조금이라도 마음 아파하길 비는 거죠.

잘 읽었습니다.


2. 레드벨벳웬디님의 '수술 후'

https://m.fmkorea.com/3183738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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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오래박혀있어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기억나지않는

너와의 이별이라는 

내 발의 송곳이


후회와 애증이라는 상처를 만들고

추억이라는 흉터를 남기며


내 발에서 드디어 사라졌다.

너가 송곳을 주며 

자기를 평생 기억해달라는

마지막 장면은 


이 수술과 함께 훌훌 날려버리리


/////////

시평: 아픔은 현재가 지나면 잊히고 상처를 남깁니다. 그러니 상처는 아파했던 순간의 포착이라 할 수 있죠. 그 상처는 잊힌 듯 했던 기억을 떠오르게 하고 흉터를 남깁니다. 흉터는 기억을 미련으로 포장하고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모습을 바꾸죠.

화자에게 영원히 기억으로 남고 싶어서 송곳을 박고 간 상대는 이뤄지지 못할 바램을 건네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거대한 송곳을 사람의 발에 박는다고 해도, 결국 돋아날 새살을 막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배어나오는 피가 멎고, 딱지가 앉고, 흉터가 진 곳에 새하얀 살이 덮히는 시간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찾아옵니다.

그리고 살 안에 박혀있던 송곳은 녹아 없어질겁니다. 화자는 밖에 튀어나온 나머지 부분을 수술로 뽑아내면 마침내 흉터마저 지워버릴테지요. 상대의 바람을 다른 바람에 태워 보내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3. 박뚜밤님의 '악플'

https://m.fmkorea.com/318473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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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롭게 한이 서린 송곳을 힘껏 붙잡는다.

분노에 차 있는 송곳이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듯 부르르 떤다.  


무엇이 그대들을 분노케 했는가, 무엇이 그들을 한탄케 했는가

종이를 뚫는 송곳은 이내 심장을 뚫는 비수가 되어 날아간다.

푹 

심장을 관통하는 소리가 허공을 가르고 사라진다.

다시금 







어디서 날아온지 모를 수십개 아니 수백 수만개의 송곳이 마구마구 날아온다.

얼어붙은 하얀 심장은 고슴도치가 되어 붉은 피로 물든다.

 

꽉 쥔 송곳이 뭉툭해진다. 

손아귀의 힘이 풀려 송곳이 툭 떨어진다.

나는 아니라는 듯 빈 손은 슥 하고 숨어버린다.   

 

////////

시평: 이 시에서 송곳은 개념만 있지 물리적인 실체를 가지고 있진 않습니다. 하지만 사소한 명분을 탄환으로 삼아 광기라는 총신을 격발하는 대중들에겐 그런 송곳도 충분한 무기가 됩니다. 이러면 형태가 없다는 점은 역으로 장점이 되어 송곳에 맞은 당사자를 완전범죄의 온상지, 하얗고 빨간 고슴도치로 만듭니다.

한번에 여러곳에서 날아와 흔적도 없이 꽂혔으니 이젠 나몰라라 하면 그만이지요. 방금전까지 미약하나마 맥동했던 심장은 움직임을 멈추고 남은 피를 밖으로 쏟아냅니다. 그 고슴도치를 보며 사람들은 한마디씩 입에 올립니다.

"이건 진짜 니들이 죽인거야."

"또 네티즌이 사람 죽였네."

"여자연예인 좀 가만히 냅둬라. 하여튼 여자들은 ㅉㅉ."

고슴도치를 추모하는 열기도 잠시, 다음 타깃을 찾는 투기장이 열립니다. 반대 진영을 욕하기 위해 방금 죽은 고슴도치조차 서슴없이 물건처럼 이용하는 모습은 흡사 피비린내나는 고대 사회를 방불케 합니다.

아마 이들은 다음 상대를 찾으면 또 한마리의 고슴도치를 만들 것입니다. 그런 뒤 또 반대를 욕하고, 새로운 떡밥을 물러 자리를 떠나겠죠. 현대사회가 낳은 역겨운 마녀사냥의 장을 열기 위해서.

잘 읽었습니다.

////////////

이번주 베스트도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내용의 글이 올라온 한 주가 되었네요. 예상을 하긴 했지만 실제로 보니 훨씬 예리한 칼날이었습니다.

다음주 베스트 시간의 주제는 바늘이 되겠네요. 바늘과 송곳. 비슷하지만 또 다른 매력이 있는 바늘의 베스트 시간도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다음주에 또 만나요.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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