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제는 노래였습니다. 노래는 뭐 특별히 음악만을 칭하는 단어는 아닙니다. 악기로 하는 음악뿐만 아니라 흥얼거리는 콧소리, 본인도 모르는 새에 내뱉는 잠꼬대, 숲 속 나무에 부딪히는 바람소리도 노래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럼 노래는 왜 불리는 걸까요. 노래는 음성으로 이루어진 청각적 정보입니다. 시각적 정보로 남겨지는 텍스트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죠. 또 울려퍼지는 그 순간에만 존재할 수 있는 점도 노래의 특징이고요. 그래서인지 글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감성도 노래로 담아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노래를 듣다 보니 문득 가슴이 뭉클해진 적, 다들 한 두번은 있으실 겁니다.
문학에서는 여기서 더 나아가 특정한 소리를 '사물이 부르는 노래'로 포장해 의인화와 비슷한 표현을 만들기도 합니다. 앞에서 말한 노래의 포괄성과도 관계가 있는 부분이죠.
그럼 이번 주 베스트에 오른 글을 한번 살펴봅시다.
1. 팀베이비님의 '눈의 노래'
https://m.fmkorea.com/3323485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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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침묵한다.
하염없이 내려도 수북히 쌓여도 녹아 없어질때도 눈은 침묵한다.
짓밟혀야 비로소 울부짖는다.
짓밟히는 눈들의 절규가 한데 모여 노래를 이룬다. 차디찬 새벽 공기를 흔들며 노래는 아침을 연다.
눈은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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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수북하게 쌓인 눈길을 걸으면 발치에서 뽀드득 소리가 납니다. 시의 표현을 빌리면 발에 밟힌 눈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죠. 눈길에 난 발자국을 보며 사람들은 겨울의 정취를 만끽하지만, 눈 입장에선 새하얀 피부에 더러운 불순물이 침입하는 불쾌하고 아픈 경험일 뿐입니다.
화자는 눈의 희생으로 이뤄지는 겨울날의 상쾌한 아침을 역설적으로 조명했습니다. 눈의 노래로 시작하는 아침. 조용한 새벽과 눈들의 평화를 대가로 한 광경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2. 시간의돛단배님의 '인생'
https://m.fmkorea.com/3318689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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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노래 속에 끼어드는 불협화음
마음은 한 옥타브 위에 있는데
목은 그까지 따라가질 못한다
명곡을 완성시키고픈 마음은 굴뚝같으나
결국 현실과의 타협 끝에 나온 평범한 곡
작곡가의 아쉬움과는 상관없이
노래는 주목받지 못한 채
여느 다른 평범한 노래들처럼
세월의 흐름 속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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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직설적인 의미의 노래에 관한 시입니다. 위 글에서 말하는 옥타브는 음역대를 뜻하는 게 아니라 어떤 하나의 '경지'를 의미합니다.
작곡가에게 노래란 삶이고 현실과 싸우는 무기입니다. 그래서 그는 뛰어난 경지에 도달해서 세상을 놀라게 할 명곡을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현실의 고난은 그의 작곡활동을 방해하고, 결국 그가 현실과 타협해서 어중이 떠중이같은 노래를 내놓길 종용하지요.
일생을 노래 만드는 것으로 보낸 작곡가에겐 인생이 곧 노래였습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의 노래는 무수히 많은 전례와 함께 시간의 흐름에 던져지고 말았죠.
잘 읽었습니다.
3. 여명의새벽님의 '여명의 노래'
https://m.fmkorea.com/331869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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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창가에 기대어 작은 숨소리를 흘리듯 노래를 흥얼거리던 너
작은 네 노랫소리가 깨던 새벽의 고요함을 퍽 사랑했다
날이 밝아오면 잦아들던 숨소리와 노래와 푸르스름 느껴지던 여명의 기억
달빛에 잠기던 네 그림자와 잠들지 못해 슬피 뱉어내던 네 노랫소리를
나는 퍽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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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새벽에 듣는 노래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새벽의 공기, 밤의 흔적, 내일의 푸르름, 가슴팍에 남겨진 고민같은 것들이 말입니다.
그래서 화자는 노래를 들으면 새벽 그 자체가 떠오릅니다. 새벽과 함께 노래와 하나가 되었던 사랑. 그 사랑이 부른 노래와 내뱉은 숨, 잠자리에 들지 못해 내내 서성이던 그림자를 기억합니다.
사랑과 같이 있던 모든 것들을 퍽 사랑한 로맨티스트의 글이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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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베스트는 이렇게 끝입니다. 다들 잘 읽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주제글을 쓰면서 적잖은 분들이 머릿속으로 노래를 불렀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이번 주제는 풍부한 청각적 심상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