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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Jan 17. 2021

'가짜'를 주제로 한 시들

진짜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가녀린 녀석들


안녕하십니까, J.HAN입니다. 가짜를 주제로 한 이주의 베스트 시간이네요.

여러분은 진실된 것이 선하다고 믿으시나요? 또 거짓된 것은 나쁘다고 생각하시나요? 딱 잘라 말할 순 없지만, 보통 진실은 착하고 거짓은 나쁘다는 이분법이 우리의 인식 속에 불문율처럼 깔려 있습니다. 가짜를 만들어내는 이유로 어딘가 찔리는 구석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가짜는 진짜를 숨기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가짜 혼자서 독립적으로, 주체적으로 개념을 정의할 수는 없지요. 진짜가 있어야 가짜가 생기고 진짜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가짜는 없습니다. 실제 모델을 24시간 동안 세워둘 수 없어서 마네킹을 쓰고, 영화 세트장에서 실제로 보석을 깨뜨릴 수가 없어서 모조품을 쓰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이렇듯 사물로서 존재하는 가짜는 생활 속에서 합리적으로 침투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가짜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서 가짜처럼 대하죠. 그러면 심리적인 측면에서 가짜는 어떨까요? 이 경우는 형태가 없어서 사람을 속이기가 쉽습니다. 애초에 만들어지는 이유도 진짜처럼 대하기 위해서니 속인다는 표현도 틀렸죠. 상처주지 않기 위해 하는 하얀 거짓말,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억지로 만드는 방어기제, 이런 것들은 당사자에겐 틀림없는 진실처럼 여겨집니다.

이런 가짜들을 보고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두 가지입니다. 함께 마음을 속여서 가짜의 달콤함에 빠지거나, 그건 아무리 진짜 같아도 가짜라며 현실을 알려주거나. 판단은 종이 위에 쓰여진 텍스트의 몫이지만요.

그럼 이번 주 베스트에 오른 작품들을 만나봅시다.


1. 끝없는갈증님의 '행여'

https://m.fmkorea.com/331676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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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한 모습에 멈칫하고
비슷한 목소리에 덜컥했다

가짜들도 이렇게나 아픈데
행여 널 보면 살아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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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가짜를 보고 반응하는 사람은 진짜를 만나기 두려워합니다. 명백히 다른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가슴이 덜컥한 것은 그만큼 신경이 민감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진짜'가 화자의 마음을 강하게 흔들고 떠나간 사람이라면, 반향은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가짜를 만나도 이렇게 동요하는데 혹시나 진짜를 만나버리면 어떡하지. 몹시도 현실적인 공포의 엄습이 되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2. 아떽띠해님의 'ㄱㅏㅈㅈㅏ'

https://m.fmkorea.com/3304334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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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장 사랑하는 사람은 너야

아 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자 신만을 바라보는 이 사람에게

자 못 진지한 고백을 한다

아 직은 들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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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재치있는 시도가 도입된 시입니다. 이분이 몇 주간 이 방식으로만 한 우물 파셨는데 드디어 빛을 보네요.

발상을 떠나 구성만 보면 평범한 오행시입니다. 그러나 부드럽게 흐르는 내용 전개와 마지막에 드러나는 시어의 주제 확립이 완성도를 높여줍니다.

겉으로 번지르르한 말을 내뱉으며 진지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때. 하지만 그런 상황에도 인간은 더러운 속내를 감출 수 있습니다. 가장 추악한 성질의 가짜가 이 시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3. 장필준님의 '조화'

https://m.fmkorea.com/330854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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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를 따라하는

가련한 가짜여


세월을 거스르려다

정작 향기를 잃어버린

천박함의 화신이자


조악한 자도 얻을 수 있는

손쉬운 이름이여


만들어진 아름다움이 뭐가 문제인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강가에서 코스모스 한 송이 꺽어

길바닥에서 민들레를 한 송이 꺽어

그대에게 건내 주어


향기를 맡보고

꽃잎을 만지작 거리고

생명을 느끼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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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유리상자의 노래 '그대 내게 묻는다면'이 생각나는 시였어요. 내용은 많이 다르지만요.

이 시는 가짜를 대하는 태도 중 후자를 택했습니다. 훌륭한 재현도로 진짜를 흉내내는 가짜에게 '결국 넌 가짜다'라며 일침을 놓는 형식이지요. 수명이 다하면 져버리는 꽃을 대신한 조화는 영원히 파릇파릇한 꽃잎을 내보입니다. 비록 향기는 없지만, 추해지지 않고 영원히 그 곳에 자리할 수 있죠. 박수칠 때 떠나지 않아도 되고요.

그러나 가짜는 결코 진짜가 될 수 없습니다. 꽃이 꽃으로서 가지는 정체성, 생화로 있을 수 있는 생명이 결여됐으니까요. 그 증거로 너에겐 향기가 없다. 강가의 코스모스를 굳이 언급하며 생명의 가치를 상기시킨 화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겁니다.

잘 읽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시의 줄 나눔에서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마법 주문같은 느낌을 받았네요. 슬레이어즈? 묵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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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베스트가 이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가짜의 존재를 의심하면서 진짜의 가치와 의미를 되돌아보는 한 주가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다음 주에도 훌륭한 작품들과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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