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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in‘ love

Rockin‘ love    


  볼만한 전시를 찾다가 패티 보이드의 사진전 광고를 보았다. 전시 제목은 <Rockin‘ Love> 사진작가로는 못 들어본 이름이었다. 세계적인 팝아티스트의 뮤즈였다는 문구가 내 관심을 끌었다. 

  전시장은 성수동 어느 뒷골목에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성수동에 트랜디한 카페와 문화 공간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는데 그 길은 아직도 자동차 공업사와 공장들이 많았다. 네비게이션이 ‘목적지에 도착 하였습니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으나 공장인지 창고인지 모를 건물들만 보였다. 차에서 내려 두리번거리는데 전시 입간판이 눈에 띄었다. 오래된 창고를 고친 전시장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가로막은 벽에 간단한 설명이 붙어 있었다. ‘Rockin’ love'란 한국어로 ’끝내주는 사랑이다‘라고. rockin이란 말은 rock’n roll에서 나온 말로 ’멋지다‘라는 뜻인데 왜 ’끝내주다‘라고 번역을 했을까. 자극적인 말로 관객을 끌려는 기획사의 숨은 의도가 내비치는 것 같았다. 어쨌든 rockin이라는 단어가 주는 강렬한 느낌이 좋았다. 사랑도 채 알지 못하는데 끝내주는 사랑이란 뭘까? 일단 안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방에는 그녀가 결혼 전 모델로 일할 때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유명 패션지의 멋진 화보들이었다. 미용실 원장의 추천으로 우연히 모델을 시작하게 된 그녀는 비틀즈와 화보 촬영을 하게 되었고, 조지 해리슨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벽을 타고 코너를 돌아가니 비틀즈와 찍은 사진들이 있었다. 조지 해리슨과 함께 있는 사진들은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 옆에 걸린 해드폰에서는 조지 해리슨의  ‘something'이 흘러 나왔다. 그녀에게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이라고 했다.    

그녀의 몸짓엔 특별한 것이 있어요

다른 사랑들과는 다르게 날 매혹시키죠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녀를 생각하는 것 뿐

내게 보여지는 그녀의 모든 것엔 무언가 있어요    

  세계적인 비틀즈 히트 곡 중의 하나다. 세상 사람들이 노래하는 주인공이 바로 ‘나’라면 기분이 어떨까. 

  그러나 그렇게 아름답던 사랑도 영원하지 않았다. 조지와의 사랑이 채 식기도전에 그녀는 에릭 클랩튼을 만났다. 어느 날, 헤어지자는 말도 없이 쪽지 한 장 달랑 남겨놓고 짐을 싸서 에릭 클랩턴의 집으로 가버렸다. 조지의 외도나 에릭과의 불화설도 있었지만 이번 전시는 패티 보이드의 입장에서 기획된 것이라 그들과 찍은 아름다운 추억들만 보여주었다. 

 후에 그녀는 말했다. 조지와의 사랑은 깊고 숭고한 것이었고, 에릭의 사랑은 매력적이고 자극적어서 스스로 통제 할 수가 없었다고. 영국이라서 가능 했을까?. 한국이라면 어림없는 일!

  대학교 때 많이 들었던 ‘Wonderful tonight'은 에릭 클랩턴이 그녀를 보고 만든 곡이란다. 80년대 초 유행하던 디스코 테크에 가면 쉬는 시간마다 가장 많이 나오는 곡이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블루스 곡이었는데 그런 노래의 주인공이라니 얼마나 대단한 여자였을까. 

  그런데 인생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지, 그녀는 세기의 스타들과 헤어진 후에야 자신을 찾을 수 있었다. 두 번 이혼하고 나서야 진정한 자신을 발견했고, 완전한 독립을 이뤘다고 했다. 결혼함으로써 사랑은 끝이 난다고 했던 어느 철학자의 말이 떠올랐다. 프로포즈를 받아들이는 순간 그들은 가족이 되고 남녀 간의 사랑은 없어진다는 주장. 

  결혼하는 순간부터는 사랑보다 책임과 의무가 더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나도 신혼 초에 ‘시집살이’를 했다. 남편은 회사 핑계로 매일 늦게 들어오고 나는 시부모님들과 저녁을 먹고 동네 산책을 하고 남편이 들어올 때까지 문간방에서 잠도 못자고 기다리던 시절. 지나갔다고 다 아름다운 추억은 아니지 싶다.

  전시 때문에 내한했을 때 패티에게 기자들이 삼각관계로 얼룩진 과거가 후회스럽지 않느냐고 물었다.

 “I'm me!"

 그녀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자신의 삶을 기꺼이 살았을 뿐이라고.

  전시장 마지막 벽에는 커다란 거울이 세워져 있었다. 그 거울 위쪽엔 ‘I’m me'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거울에 비친 나를 셀카로 찍었다. 그래, 나는 나다. 

  내 인생은 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은 패티 보이드와 같은데, 나는 끝내 끝내주는 사랑이 뭔지 찾지 못하고 전시장을 나섰다.

 사랑이란 정답이 없나보다. 전시를 보면서도, 이 글을 쓰면서도 여전히 나는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 내 마음속에 남은 것은 ‘물음표’ 뿐이었다. 

‘끝내주는 사랑은 뭘까?’

 계속 화두로 삼고 살아봐야 할 것 같다. 나도 그리고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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