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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화장(化粧)          

  소각장 문이 열리고 사각 관이 밀려들어간다. 파다닥 가스가 나오는 소리와 함께 불이 켜지고 눈앞에서 어둠이 툭 떨어진다. 옆 대기실에선 통곡 소리가 더 한층 절절하다. 보통 사람들은 장례 절차 중 관이 타 들어가는 순간이 가장 끔찍하다고 하는데 나는 그다지 힘들지도 애통하지도 않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이려니 싶다.     

  나는 그저 조용히 기다렸다. 이미 삼일장 동안 돌아가신 분을 위해 슬퍼도 하고 기도도 했다. 친척들은 내가 울지 않는 게 독하다 싶었는지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있는 듯 했다. 그래서인가 사촌 오빠가 거들어서 말했다. 

‘저렇게 서럽게 우는 건 돌아가신 분 때문이 아니라 자기 설움에 우는 거지’

고인을 핑계로 그 동안 쌓인 자기 안의 설움과 한을 한시에 풀어낸다. 소리 내어 통곡을 해도 누가 뭐라는 사람은 없다. 남자답지 못하게 울어도 다 용서가 되는 곳. 그곳에선 부끄러울 것도 없으니까. 남편한테 무시당해서 서러웠던 일도, 자식들에게 대접 못 받는 섭섭함도, 시집살이 고단함도 모두 눈물과 곡소리에 쓸어내려는 듯 한껏 목청 높여 운다. 어떤 때는 저 사람이 고인과 그렇게 가까운 사이였나 의아할 정도로 통곡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두 번의 장례식을 혼자 치렀다. 아버지와 동생은 하얗게 재가 되었다. 아버지는 산소에 모셨지만 동생은 그러지 않았다. 산화된 가루를 양평 어느 산에다 뿌렸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멋있게 강물에 뿌리는 것은 법에 어긋나는 일이란다. 양평 어느 절 주지 스님의 허락을 받고 절 뒷산 중턱에 뿌려주었다. 

  소각장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나무 상자 속의 하얀 골분은 생각했던 것보다 뜨거웠다. 장갑을 끼었는데도 뜨거워서 쉬엄쉬엄 뿌려야 했다. 짧은 생에 대한 열정이 남아서도 아닐 테고 남겨놓고 가는 사람들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도 아닐 텐데. 갑자기 머리 속이 멍해졌다. 어지럽고 몽롱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년 뒤, 어느 날 새벽 전화벨이 울렸다. 새벽에 전화벨이 울리면 몸이 화들짝 놀래며 먼저 반응을 한다. 엄마 전화였다. 동생이 죽었다고. 알아듣지 못했다.

 뭐라고, 무슨 소리야? 믿지 못 한 채로 친정으로 달려갔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경찰이 와서 상황을 수습하고 있었다. 사망신고를 하고 부고도 없이 혼자 장례를 치렀다. 

 그 후로 1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충격은 온 몸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근데 지나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옅어지지 않는 아픔도 있다. 가족이 자살을 하면 남은 가족을 유족이라 하지 않고 생존자라고 하는 이유이다. 아직도 동생에 대해서나 자살에 대해서 잘 이야기 하지 못한다.      

모든 상실에는 그 만큼의 애도가 필요하다. 동생의 죽음에는 슬픔보다 분노와 원망이 앞서서 애도를 하지 못했다. 몇 년 동안 회피하고 가슴 구석 어딘가에 묻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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