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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의 가장 커다란 효과

만원의 가장 커다란 효과


 어느 날 모임에서 여행 작가를 꿈꾸는 친구를 만났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었다. 모두 작품을 칭찬하는데 그는 지나칠 정도로 부정을 했다. 겸손이 지나쳐, 왜 저럴까 싶을 정도였다. 낯가림이 심한 성격인지 저녁 먹는 내내 별 말이 없었다. 2차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 우연히 내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젊은 여자동생들이 ‘오빠도 이제 마흔이네요?’라고 묻자 자기는 아직 마흔이 아니라고 우겼다. 만으로 서른아홉이라고. 그렇게 나이 얘기를 하게 되고, 그는 7~8년 정도 마음껏 살다가 죽을 것이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나는 놀라서 물었다.“죽는다고? 왜?”살고 싶은 생각이 없단다. 자기가 죽어도 아무도 신경 쓸 사람도 없다고.  나는 농담이라도 죽어버리겠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자살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 꼭 짚고 넘어가야만 한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이 평생 얼마나 큰 짐을 지고 사는지도. 십년 전쯤 동생이 자살하고 나서 생긴 트라우마이다.


그에게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상담 아닌 상담을 해주게 되었다. 나중에 들으니 자기가 몇 년 더 살다가 죽을거라고 얘기해도 아무도 진지하게 듣지 않았단다. 그 말을 심각하게 들어주고 그건 아니라고 말한 사람이 내가 처음이었다고 했다. 두세 번 만나고 자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다행스러웠다.  작년 연말쯤 그가 우리 집에 놀러 오게 되었다. 대학교때부터 독립해서 혼자 살게 된 그 친구는 집에서 커튼도 열지 않고 어두운 방에서 종일 산다는 것이었다. 뭔가 찾을 일이 있으면 핸드폰을 조명 삼아 찾는 다고 했다.


 같이 만났던 다른 한 명은 강아지와 금붕어 한 마리를 키우는데 그에게 동물은 키우기 힘드니 금붕어라도 키워보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자의반 타의반 그도 동의 했고 나는 그 마음이 바뀔까봐 집에 있던 넓은 꽃병을 하나 주었다. 금붕어를 사서 그 안에 넣고 인증샷을 보내주기로 약속을 했다. 그러나 금붕어를 키우기로 한지 6개월이 넘었는데 그는 수족관을 못 찾았고, 금붕어 키우기 프로젝트는 계속 미뤄지고 있었다.  그러던 얼마전 나는 우연히 연남동을 지나다가 수족관을 발견했다. 커다랗고 빨간 금붕어는 한 마리에 이천원이고, 작고 귀여운 붕어는 오천원이었다. 손가락 반 만한 작은 놈을 두 마리 샀다. 비닐 봉투에 산소를 빵빵하게 넣어서 이틀은 두어도 괜찮다고 했다.다음날 그에게 연락을 해서 금붕어 두 마리를 전해 주었다. 당장 먹일 먹이도 함께.


  그 후 한 달 만에 만난 그는 달라보였다. 표정도 밝아지고 말도 많아졌다. 금붕어 때문에 불고 켜고 커튼도 조금씩 열어준다고 했다. 매일 물도 갈아주고. 물을 갈 때도 미리 수돗물을 받아놓았다가 지저분한 물을 살짝 따르고 금붕어들이 놀랄까봐 조심해서 새 물을 넣어 준단다. 먹이를 줄 때면 금붕어들이 자기를 알아보고 쪼르르 쫓아와서 자기와 눈을 맞춘다고 좋아했다. 이름도 지었다. 피망이와 자몽이. 빨간 애가 피망이고 조금 흐린 색 아이가 자몽이다. 외출 할 때 인사도 한단다.“아빠 다녀올게~”상상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금붕어한테 다정하게 손을 흔들며 나가는 모습을.


  요즘은 사람들을 만나면 농담 삼아 얘기 한다. 내가 자기 목숨을 살렸다고. 금붕어 얘기를 하며 즐거워하는 그를 보면 내가 아니라 금붕어가 그를 살게 하는 것 같다. 그 모습이 앞으로 어떻게 더 바뀔지 기대가 된다.  오천 원짜리 금붕어 두 마리가 내가 쓴 만원 중에 가장 값진 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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