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오늘 저녁메뉴는 죽음입니다

”그리고 더는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가 없는 삶, 그건 어둠일 것이다. 그리고 침묵일 것이다“

엠마뉘엘 베르네임의 <다 잘된거야>라는 자전 소설의 구절이다.     


  한여름 어느 카페에서 이 책을 읽고 있다가’아버지가 없는 삶‘이라는 구절에서 눈물이 핑 돈다. 평생 한번도 엄마가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엄마가 시키는대로 결혼을 하고 결혼식 3일만에 미국으로 갔다. 낯선 남자와 낯선 곳에 버려진 느낌이 들 때도 엄마가 생각나진 않았다. 그런데 책을 보다 갑자기 이제 엄마가 이 세상에 없다는 실감이 난다. 돌아가시기 전 집에 누워계시던 모습이 생각나서 이제 그 모습도 볼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눈물이 흐르기 전에 카페 테이블을 정리하고 나와 얼른 차에 탔다. 내가 편하게 울 수 있는 곳은 차 안이다. 아무것에도 신경 쓰지 않고 혼자가 되는 공간. 20분 정도  운전을 하며 실컷 울었다. 마음이 조금 진정이 된다.

  봉정사라는 절에 도착했다. 나는 무교지만 엄마는 불교신자였다. 어릴 때는 엄마를 따라서 절에 자주 가곤했다. 요즘도 절에 가면 조용해서 마음이 편하다. 봉정사 대웅전에 가서 절을 하고 엄마에게 인사를 한 셈 친다. 

  2005년 돌아가신 아빠는 여전히 항상 보고 싶다. 아빠가 살아계셨으년 싶다.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그럴 수도 있고 아빠를 더 좋아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없어서 아쉬운 적이 없었으니까, 슬프지만 아빠 때처럼 힘들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엠마뉘엘 베르네임은 아버지가 뇌촐혈로 거동을 못하게 되자 어버지의 바람대로 안락사를 돕는다.     


아버지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끝내게 네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다.“

나는 얼어붙었다.     


  병상에 누운 아버지의 마지막 명령이자 부탁이다. 프랑스에서는 안락사가는 불법이다. 결국 스위스에 있는 안락사를 해주는 단체를 알아보고 몇 달에 걸쳐 준비를 한다. 마지막 스위스로 떠나기로 한 날 프랑스 경찰에게 소환된다. 누군가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다. 경찰을 피해서 첩보 작전을 하듯이 아버지는 앰블란스를 타고 스위스로 혼자 떠나게 되고 저자는 법적인 문제로 프랑스를 떠날 수 없게 된다. 마지막 장에 스위스 단체 담당자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아버지는 편하게 잘 떠나셨다고. 그렇게 끝이 난다.     

  훌쩍이며 눈물 콧물 닦으며 책을 읽고 나니 머리가 띵하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지나치게 감정이입이 됐다.


  낙천적이고 활동적인 작가의 아버지는 뇌출혈로 언어장애와 활동장애가 오자 더 이상 생명을 연장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느낀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그 생각에도 공감이 가지만 남은 사람들의 아픔도 절절하게 함께 느껴진다. 남의 일 같지 않다.

 나라면 어떨까? 나를 위한 선택이 아들에게 힘든 일이 된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연명치료는 하지 않기로 합의가 되어 있지만 세월이 지나 존엄사의 허용범위가 넓어져서 내 의지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아들도 과연 동의해 줄지 한번 얘기해 봐야겠다. 미리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일이다.


이전 20화 행복한 죽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